사라져 간 것, 그러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사라져 간 것, 그러나....

0 개 1,329 오소영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7917_2737.jpg
 

초겨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이른 밤이었다. 어린 계집애는 따뜻한 요밑에 언발을 묻고 책가방을 끌어 당겼다. 숙제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얼었던 몸이 녹는가싶더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손에 쥐었던 연필을 떨군채 잠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귓청을 때리는 바람에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다닥 또다닥.... 또다닥 또다닥...”


바로 문 밖 대청 마루에서 들려오고 있었기에 발딱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와 언니가 마주 앉아서 신나게 다듬이질을 하고 있었다. 돌아앉은 언니의 곱게 땋아내린 긴 머리끝 댕기가 가볍게 리듬을 타고 팔랑거렸다. 그건 일이 아니고 재미나게 노는 놀이처럼 흥겹게 보였고 엄마와 짝을 잘 맞춰 하는 언니가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방망이 네개가 질서정연하게 박자를 맞추니 또다닥 또다닥 소리도 경쾌해서 즐거웠다.


저만치 물러앉지 않으면 방망이에 얻어맞는다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가까이에서 얼씬댔다. 해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배워서 엄마 언니에게 당당히 자랑하고 싶었다.


혼자서 집을 보던 어느 날이었다. 다듬잇돌 위에 얌전히 덮여있는 무명 보자기를 젖혔다. 가즈런히 접혀있는 빨래위에 방망이질을 했다. 뭔가 되는 것 같아 신이나서 팔이 아플때까지 두들겼다. 아니 힘껏 두들겨 팼다는게 더 맞는 말 일 것이다.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7950_9463.png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힘은 드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감쪽같이 덮어놓고 시침이를 떼었다.


저녁 설거질을 마친 엄마와 언니가 다듬이질을 하려고 옷 을 다시 손질하다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치셨다.


옷감이 터져버렸으니 이게 어쩐 일이냐며 난감해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면서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띄었다. 엄마가 은연중 눈치를 챘다.


밖으로 끌려나온 계집애는 얼마나 혼이날까? 겁에 질려있었다.


엄마의 나들이 모시치마가 칼로 벤것처럼 갈라져 있었다.(세상에 이럴수가...) 못쓰게 버려놓은 것이었다.


어쩐담. 크게 야단을 맞을줄 알았는데 엄마가 기가 막히다는 듯 츳츳 혀를 차며 차분히 웃기만 했다.


이담에 지겹도록 할 일인데 그렇게 하고 싶었어? 혼자소리로 말하며 다시 부드러워진 눈길로 어린 딸을 용서했다.


아무렇게나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불룩한 방망이 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엄마 나드리 옷을 못쓰게 버린게 너무나 미안했다. 커서 돈벌면 엄마 옷부터 해 드려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50년대 후반, 남자들도 쉽게 입을 수 없었던 제일모직 라벨이 찍힌 순모(純毛)로 어머니에게 두루마기를 해 드렸다. 기쁨에 들떠서 옷자랑 딸자랑을 했지만 아마도 십여년전 어린딸의 마음속 과제였음을 짐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달빛고운 초 겨울밤, 어디선가 또다닥 또다닥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댓돌밑에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져 청아한 메아리로 언제나 마음을 흔들었다.


어느때는 슬프게 또 어느때는 경쾌하게... 답을 알 수 없는 마력의 음율이었다.


시집살이 고되었던 옛 여인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다듬이질로 풀었을 것만 같다. 사나운 시어머니, 미운 시누이 옷들은 더 모질게 때리면서 서러움을 달래지 않았을까?.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낮 일은 바쁘기 때문에 다듬이질은 주로 밤에 많이했다.


검푸른 달빛속에 마주앉은 두 여인의 다듬이질 모습과 청아한 소리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며 예술이었다.


누가봐도 멋드러진 서정시가 한편 써 질것만 같은 한국적인 정서였다.


명주나 비단같은 고급 옷감은 홍두깨에 감아올려서 돌려가며 다듬었다. 더욱 곱게 살을 입히는 예사롭지 않은 지혜였다. 단단한 박달나무 홍두깨 소리는 더 가볍고 경쾌해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까지 느끼게 했다.


우리 여인들의 애환의 숨결이 담겨 대대로 이어져온 아릿함, 그러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음율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종전 후, 귀환치 못한 피난지에서의 일이었다. 우리의 생계는 어머니의 바느질로 시작되었다.


염색솥에서 바로 건져 검은 물이 줄줄 흐르는 마대를 한짐씩 지고와서 마루에 풀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더운김이 남아있는 그것을 빨랫줄에 널어 대충 말려서 축축할 때 손질을 해야했다.


꺼칠하고 투박한 마대가 다듬이돌 위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나면 제법 천 구실을 했다. 그 다듬이질 몫이 언니와 나 였다. 지어입을 옷감도, 사서 입을 옷도, 있을리 없는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그 천으로 마름개질을 해서 손틀로 몸빼바지를 수도없이 박아냈다. 수공업 몸빼바지 공장구실을 한거였다.

집 안은 온통 검은 물이 들었고 여자들 손이 몽땅 까매져서 밥하기가 민망했다. 그러나 깡수수밥 먹기도 어려운 때에 식구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렸을 적 고운 정서로 들었던 다듬이질의 청아한 음악은 거친 세파에 휘둘려 잊혀졌다. 그리도 하고 싶었던 일이 오직 팔 아프고 지치는 고달픈 작업일 뿐이었다.


다듬잇돌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건 지금까지 숙제로 남아있다. 아마 재수가 좋아 그 집 어딘가에서 찾아낸 거였을 것이다. 우리는 남유달리 반질하게 얌전한 제품을 만들수가 있어서 환영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언제나 일이 많아서 시샘을 받기도 했다.


등이 젖도록 물건을 져날랐던 뫼산이 아저씨는 돈을 알뜰히 모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북 평양에서 피난 내려온 홀아비가 큰 집을 사서 괜찮은 여인과 폼나게 결혼도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성공인가.

 

세태가 바뀌고 변해서 이제 다듬이질은 한낱 옛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들 세대가 그걸 경험한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리듬과 청아한 소리는 영원히 우리곁에서 사라질리가 없다.


그럼 그렇지, 예술로 승화해서 공연까지 하는 단체가 여러지역에 있는 것을 알게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여인들 수십명이 어우러져 다듬이질을 하는데 노동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정말로 예술적인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멋진 공연이었다. 우리만의 독특한 타악기로서의 손색없는 음율이 참으로 자랑할만 했다. 가슴이 뭉클하다.


다알리아 꽃이 고개숙이고 달빛 곱게 창틈으로 빗겨드는 초저녁, 어디선가 청아한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 귀를 기우려본다.


그러나 내 지난 시절을 몰고온 회오리 바람일 뿐, 그것은 한자락 추억이었다.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8014_3749.jpg
 


라이프 리엔지니어링

댓글 0 | 조회 1,344 | 2021.03.09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Business Reengineering)이라는 개념은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 박사가 1990년 ‘Harvard Busin… 더보기

지치고 힘들때 위로가 되는 음악과 요가

댓글 0 | 조회 1,077 | 2021.03.09
불안, 우울, 외로움..안녕하세요. 몬트리올 Yogafulness Life 요가강사이자 유튜버(YOGA SONG - HAYEON)의 송하연입니다.BTS의 BLUE… 더보기

시선, “낯선” (2)

댓글 0 | 조회 1,118 | 2021.03.09
“2,000년 전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왜 세상의 중심 밖 한 켠으로 밀려난 갈릴리를 그 사역의 중심으로 삼으셨을까?”이 단순한 호기심은 나로 하여금 그 시간을 거… 더보기

대추 이야기

댓글 0 | 조회 1,359 | 2021.03.06
대추(棗)는 설, 추석 등 명절 차례상과 조상님 제사를 모실 때 빠짐없이 올라가는 상차림 중 하나다. 또한 대추는 수천년 동안 한방(韓方)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 더보기

꿈꾸는 소녀 니무냐의 신나는 글 읽기

댓글 0 | 조회 2,362 | 2021.03.04
“교실에 책상이 넉넉히 놓여져 있는 걸 보고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더 이상 땅바닥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까요!”아프리카 잠비아에 사는 니무냐(Nchimuny… 더보기

나의 젊은날의 초상(1부)

댓글 0 | 조회 1,713 | 2021.03.01
누구나 자기인생을 뒤돌아 볼 때가 찾아온다.막상 기억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들 그리고 가슴 속에서 몽우리져 있는 이그러진 꿈들이… 더보기

이민법무사와 이민부가 보는 비자 심사의 속도

댓글 0 | 조회 4,024 | 2021.02.24
20년 넘게 이민컨설팅을 해온 저는 “이민은 real time” 이라는 것을 고객들에게 늘 주지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리얼 타임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지금, … 더보기

영웅은 없다

댓글 0 | 조회 1,121 | 2021.02.24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의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결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의… 더보기

내가 못하는 건 상대방도 할 수 없다

댓글 0 | 조회 1,665 | 2021.02.24
어느 형태의 관계에서 던지 적용해야 하는 것이 평등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이라도 상대방에게 기대를 건다 던지 요구를 하게 되고 그것을 해내… 더보기

지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요?

댓글 0 | 조회 1,289 | 2021.02.24
선생님,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6권에 보면“지금 지구가 제 방향대로 가고 있다” 이런 말씀이 있는데 맞는 것인가요?지금 지구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 더보기

보약 보다는 해독

댓글 0 | 조회 1,479 | 2021.02.24
각종 성인병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의 증상들은 환경호르몬, 중금속, 음주, 흡연, 인스턴트 식품, 스트레스 등의 다양한 외부 독소들과 인체 대사의 산물들인 내… 더보기

겨울 폭포

댓글 0 | 조회 1,210 | 2021.02.24
나이에 맞게 살 수 없다거나시대와 불화를 일으킬 때마다.난 얼어붙은 겨울 폭포를 찾는다.한때 안팎의 경계를 지웠던 이 폭포는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여전히 공포에… 더보기

템플스테이란?

댓글 0 | 조회 1,324 | 2021.02.24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는 해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는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산사에 머물며 수행자의 고… 더보기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

댓글 0 | 조회 3,083 | 2021.02.24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마스크문화가 정착화됐고, 재택근무가 뉴노멀로 자리잡았으며, 음식점 및 상점은 시간제 운영을… 더보기

바다뱀과 지빠귀부리왕 3편

댓글 0 | 조회 1,156 | 2021.02.24
지빠귀부리 왕(독일)한 왕에게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너무도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찾아오는 구혼자들에게 모두 퇴짜를 놓았고, 그들의 약점을… 더보기

시선, “낯선” (1)

댓글 0 | 조회 1,630 | 2021.02.24
“Where from?” (“어디서 왔다고?”)“dunno… been here since last week.”(“몰라, 지난주부터 보이던데.”)낯선 동양인에 대한… 더보기

상팔자가 따로 없네

댓글 0 | 조회 1,664 | 2021.02.24
기다리고 기다렸던 친구가 드디어 한국을 떠나 파미로 왔다. 코비드의 영향으로 보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면서 어렵사리 파미에 도착했다.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참 경… 더보기

댓글 0 | 조회 1,145 | 2021.02.24
사람들에게 물었어무엇이 가장 그립냐고아기가 대답했지엄마 품이요신나게 놀아줄 친구요소년들이 주먹 쥐며 대답했어인형에 옷 입히던 시절이요아이 키우는데 바쁜 새댁이 말… 더보기

볼륨있고 건강한 애플힙을 위한 힙.쭉.빵. 운동

댓글 0 | 조회 1,400 | 2021.02.24
“하체 비만형이라 하체 운동하기가 겁나요..”“엉덩이가 쳐져 고민이에요..”안녕하세요. 몬트리올 요가강사이자 유튜버(YOGA SONG - HAYEON)의 송하연입… 더보기
Now

현재 사라져 간 것, 그러나....

댓글 0 | 조회 1,330 | 2021.02.23
초겨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이른 밤이었다. 어린 계집애는 따뜻한 요밑에 언발을 묻고 책가방을 끌어 당겼다. 숙제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얼었던 몸이 녹는가싶더니 … 더보기

가족, 그 고귀한 선물을

댓글 0 | 조회 1,719 | 2021.02.23
지역의 한 방송에서 설날에 나갈 멘트를 해 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감히 영광이라고 했다. 독후감처럼, 감명 받은 책의 구절을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할 말을 덧붙이라… 더보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옵시고..

댓글 0 | 조회 1,432 | 2021.02.23
며칠간의 반짝 Lockdown은 제가 그동안 얼마나 이 세계적인 대재앙에 대해 무디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게 했습니다. 불과 몇 개월전인 작년 말만 하더라도 Cov… 더보기

360도 뷰가 아름다운 혹스베이의 Te Mata Peak

댓글 0 | 조회 1,923 | 2021.02.23
노후에 오클랜드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한달 살기” 하고픈 도시들을 추천한다면 그 중 으뜸인 곳이오클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6시간거리에 있는 네피어 근방의 Have… 더보기

친구에게 때가 한참 지난 사과를 하면서

댓글 0 | 조회 1,534 | 2021.02.23
현직 기업체컨설턴트와 코칭 전문가로 맹활약중인 고등학교 절친 중 한 명으로부터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책이 탈고를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른 친구가 … 더보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lockdown과 최저임금

댓글 0 | 조회 2,918 | 2021.02.23
오클랜드 지역이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로 인해 2021년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삼일간 세 번째 lockdown에 들어가면서 lockdown기간 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