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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렸던 친구가 드디어 한국을 떠나 파미로 왔다. 코비드의 영향으로 보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면서 어렵사리 파미에 도착했다.
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참 경이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로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늘 베짱이라고 말하지만, 베짱이처럼 앉아서 노래나 부르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비즈니스적인 두뇌로 능률적으로 일을 한다. 멀티플레이어가 따로 없다. 컴퓨터도 잘 다루며 정보 수집에도 빠르며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력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능수능란하다. 가수처럼 노래도 아주 잘 부르고 드라마도 즐겨 보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아무튼 그녀는 파미에 도착하기 직전에 파미 바로 옆에 있는 안식교 학교인 LAC에 취직이 되었다. 환갑이 몇 달 남지 않은 그녀를 채용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화상 채팅으로 인터뷰를 하고 당당히 취업이 된 것이다.
학교 식당의 주방장으로 취직이 된 그녀는 파미에 도착하자마자 이삿짐을 제대로 풀지도 못한 상태에서 학교에 나가야했다. 예정보다 일주일 먼저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주방장의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서 죽음을 맞이했기에, 인수인계를 할 겨를도 없었다.
주방 보조 두 명 중 한 명은 주방장의 딸이었다. 갑자기 일꾼 두 명이 장례식 때문에 주방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친구가 급하게 투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수인계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친구는 50여명이나 되는 기숙학생들을 흡족하게 만들었고, 사감 선생님들까지 매일매일 그녀의 음식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새로운 주방장이 오니 뭐 그렇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은지, 그 많은 요구조건들을 들어주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거 같다만, 일일이 다 해주려 노력하는 친구를 보면서 타고난 주방장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그녀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느냐면, 친구를 돕는다고 주방에서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느린 손이지만 손 하나라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주면서 있었다.
선생들까지 합하여 거의 6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의 식사를 매일 장만한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구입하고, 배달 올 물건들을 주문하고, 그 모든 식재료들을 창고와 냉장실과 냉동실에 각각 집어넣어야 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워낙 모든 일에 있어서 해결능력이 뛰어난 친구지만,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학교식당 주방장 일을, 그것도 낯선 기구들을 사용하면서 척척 해내고 있는 걸 보니, 거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통한 영어실력에 다재다능한 재주를 갖고 있는 그녀는 이 일이 아니더라도 할 일들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 그녀는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닌 몸을 쓰는 일을 선택했다. 사실, 그 선택도 되면 되고 말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뉴질랜드로 오기 며칠 전에 LAC 식당 주방장 구직 소식을 듣고, 무조건 이력서를 내고 화상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전혀 계획에 없는 일이었지만, 뉴질랜드에 가면 써먹기 위해서 여러 자격증들을 취득해 놓은 상태라서 과감히 시도를 했었던 거 같다.
준비 되어 있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하더니만, 환갑을 눈앞에 둔 여인에게 이렇게 큰 행운이 올 줄이야!
친구의 행운에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나서 그녀를 돕겠다고 나섰는데, 며칠도 못가서 난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카이로와 한방 요법으로 몸을 제법 추스른 뒤였는데도, 몸살이 나서 열이 나고 온 몸이 쑤셔서 진통제를 먹으면서 며칠을 끙끙 앓았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치료를 좀 받고나서야 오늘 겨우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등짝과 목과 팔이 많이 쑤신다. 오십견 재활치료 중인 내 몸의 상태도 모르고 마음만 앞서서 친구를 돕겠다고 설쳤던 거 같다.
친구는 나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괜히 친구 돕는다면서 오히려 친구 마음을 힘들게 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내 몸이 이정도로 약한지 친구는 몰랐다고 한다. 나도 몰랐다. 하지만 알았다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선 친구를 도우려 설쳤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친구이며, 친구 일이라면 내 일과 같은데, 내가 몸을 사렸겠는가?
이번 일로 몸살이 나서 앓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친구를 도왔기에 기분은 좋다. 왕년에 런치바를 했었던 가락으로 만든 디저트들이 학생들한테 많은 인기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친구한테 작은 보탬을 준 것 같아서 흡족하다.
어제까지 끙끙 앓느라 남편이 사놓은 꽃들을 양동이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꽃을 꽂을 정신도 아니었고, 꽃 앞에 갔다가도 그냥 침대에 누워버리곤 했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꽃꽂이부터 시작을 했다. 꽃꽂이 해 놓았던 꽃들을 뽑아서 조만간 시들어버릴 것 같은 꽃들끼리 화병에 옮겨 꽂고, 새 꽃으로 꽃꽂이를 해 놓았다. 집안이 다 환해진 느낌이었으나, 꽃들이 여느 때와는 달리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많이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친구한테 혹여 오클랜드에 산바라지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둘째한테도 전화를 했다. 둘째는 이미 내가 일주일 만에 병이 날 거 같아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었단다.
하지만 주위에서 산바라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코로나로 오클랜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니, 그때 상황이 되는대로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국에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엊그제 갑자기 핸드폰에 경보 알람이 울려 크게 놀랐었는데, 전쟁이 따로 없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전쟁인 것이다.
이런 전쟁 통에 태어날 아기인 영혼이는 다행히 뱃속에서 아주 활달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다 활동량이 커서 초음파 사진을 찍을 때도 힘들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성별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을까?
내 대학친구의 오빠는 6.25 전쟁 때 피난 가던 중에 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통에 태어나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라 본다. 그저 뱃속에서처럼 태어나서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기만을 바란다. 상팔자로.
이번에 파미에 온 내 친구나 나나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내 가족들을 봐도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시기에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각자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고 보면 팔자라는 것이 있긴 한가 보다.
다이아몬드수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있는 것을 보면 과거나 현재나 팔자를 타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팔자소관을 운운하면서 살아가나 보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그래도 자기 팔자가 상팔자야.”란 친구의 말에 “그래, 내 팔자가 상팔자다.”라고 대답하면서 웃었지만, 딸의 산바라지도 제대로 못할 거 같은 내 체력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또한 팔자소관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