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Where from?” (“어디서 왔다고?”)
“dunno… been here since last week.”(“몰라, 지난주부터 보이던데.”)
낯선 동양인에 대한 시선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낯선 시선의 무게를 7년 전 무턱대고 찾아간 첫 방문 이후로도 한동안이나 지속적으로 느끼곤 했는데, 이것은 그 동안 경험했었던 오타후후와 타카니니 등 타 지역 캐라반 빌리지에서는 그리 강하게 느껴보지 못했던 특이한 경험 이었다.
도시의 이면으로 저만치 물러나 겨우 등을 붙이고 누울 정도의 잠자리를 찾는 빈민들이 도착하는 캐라반 빌리지들은 대부분 오클랜드 외곽에 위치해 있다. 그 특이한 주거형태의 시작이 뉴질랜드 전역에 위치해 다양한 곳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휴양시설이 되어주는 홀리데이 파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지나치게 역설적인 것일까? 도시의 빈민들이 자신의 주거지를 잃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거처를 찾게 되고, 그 과정이 지속적인 사회현상으로 고착되며 부득이 그 용도가 임시주거시설로 바뀌어 버린 캐라반 빌리지는 이제 더 이상 여행객을 받지 않는다. 이 왜곡된 주거 형태의 운영 주체는 여전히 그 땅을 가진 사업주 이지만 그 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더 이상 휴가지를 찾는 여행객이 아닌 도심의 집 한 칸이 없어 헤매는 가난한 이웃들의 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유래를 모르고 이 곳을 방문한 외지인들은 이러한 대단위 숙박 시설이 국가에서 운영하지 않는 개인 사업이라는 것에 공통적으로 놀라움을 표시하곤 한다.
▲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 식사를 나누기 전에 함께 기도 하고 있다
그 중 이곳 라누이 (Ranui)에 있는 캐라반 빌리지는 오클랜드 서부 산자락 밑 기차의 마지막 종착역인 스완슨 (Swanson)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느 중간인가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이제 유명한 피하 비치 (Piha Beach)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와이타케레 산림 보호지역 (Waitakere Regional Park)의 어느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도시의 끝자락 어느 한구석에 위치한 라누이는 그렇기에 이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외견상 크게 구분 되지 못하지만, 아일랜더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클랜드 남쪽 지역과는 다르게 이곳 라누이는 마오리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그들이 살던 땅의 주인이었으나 18-19세기 서구 열강의 지속된 영토확장으로 그 땅의 주권을 넘겨 주게 된 많은 식민지 토착민들에게 남겨진 것은 열등과 가난 이었다. 시대를 이끄는 주도적 문화의 주체가 바뀌면 기존의 토착 문화는 하위문화 혹은 전시문화로 전락되곤 하는데,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민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땅 마오리들의 삶도 그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만 것일까? 이 땅의 가난을 경험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마오리 인 것은 그렇기에 그들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듯 아슬해 보인다.
처음 이곳 캐라반 빌리지에 들어와 그들의 공동체 식사를 함께 도우며 시작된 나의 어색한 동거가 그들의 낯선 시선과 함께였다는 것은 생각 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오랜 시간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그들의 삶에 초대 받지 않은 한 동양인의 손길은 이렇게 그들의 어색한 관심과 함께 시작 되었다. 이것은 예고 없는 이방인의 출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데 익숙했던 그 마을의 준비되지 않은 소통의 시작 때문 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계속)
■ 낮은마음 이야기는 나눔공동체 낮은 마음이 서부 오클랜드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 이웃들과 함께 나눈 사역을 정리해 엮은 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