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휘바휘바~’
혹시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한국의 한 제과회사가 만드는 껌 광고에 등장하는 핀란드어인데, 그 뜻은 ‘좋아좋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혹시 나중에 핀란드 여행을 가시게 된다면 좋은 일 있을때 ‘Good!’ 대신 ‘휘바!’ 한마디로 외국어 능력치를 한계단 상승시키실 수 있겠습니다.
광고에 녹색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는데 코카콜라가 빨간색으로 왜곡하기 이전의 원조 산타할아버지를 등장시킨 것만 봐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기획한 광고인듯합니다. 그런데 이 껌 광고엔 산타할아버지 외에도 우리에게 꽤 친숙한 아이템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바로 자작나무입니다. 이젠 전국민이 알고있는 이름, ‘자일리톨’의 원료라며 자작나무를 등장시키는데요.. 사실 자일리톨은 그저 설탕을 대신하는 합성 감미료일뿐 자작나무에서 추출하는 천연물질은 아닙니다.
다만 ‘자일로스’라 불리우는 원료가 수액속에 조금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더구나 이 자일로스는 대부분의 식물에 거의 비슷한 양으로 함유되어 있으니.. 굳이 광고에 자작나무를 등장시킨 기획사는 아마 희고 곧고 매끈하고 가로줄무늬가 단정한 자작나무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빌리고 싶어했던것 같습니다.
자작나무는 한대성 활엽수입니다.
성상이 곧고 매끈한데다가 한대수림의 특징인 곱고 단단한 나뭇결을 가지고 있어서 건축이나 가구제작, 생활소품등에 골고루 사용되는 만능자재입니다. 게다가 목재가 가지고 있는 우월한 특성에 버금가는 하얀색의 예쁜외모로도 한 몫합니다. 주변의 자잘한 잡풀들을 제거하는 피톤치드를 대량으로 방출하기 때문에 자작나무숲에는 키작은 관목이나 어지러운 잡초들이 자랄수 없고, 그래서 하얀 나무들이 얼기설기 모여있는 한적한 자작나무숲은 녹푸르기보다는 희고, 활기차기보다는 차분합니다. 드문드문 눈발이 섞인 북유럽의 메마른 겨울바람을 받아 거르며 쉬이~쉬이~ 노래하는 자작나무숲은 너무도 한적하고 신비로워서 요정과 님프들이 당장 튀어나온다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자작나무가 쭉쭉 곧게 뻣어 위로만 자라는데에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옆으로 자라난 가지들이 뚝뚝 잘 부러진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특히 둥치와 맞붙은 자리는 손가락만 스쳐도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똑 부러집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바람에도 말이지요. 아마 햇볕이 적은 한대기후에서 더 많은 햇빛을 확보하기 위해 위쪽으로만 자라야할 필요성 때문에 그리된듯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가지가 부러져 나가면 나무는 아픕니다. 또한 다른 잡균들이 부러진 자리로 침입해 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천연항생제를 부러진 자리에 뿜어내어 병균을 막고 동시에 서둘러서 상처를 치료합니다. 그리고 이 상처는 나중에 뒤집어진 ‘V’자 모양의 검은색 흉터로 남게 되는데요.. 자작나무 둥치에 군데군데 퍼져있는 이 말굽모양의 검은 반점이 바로 나뭇가지가 붙어있던 장소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말쑥한 외모에 흠집을 낸듯해서 마뜩치 않은 이 검은 흉터들..
하얗게 맑은 매끈한 피부에 점점이 앉아 미모를 격하시키는 감점요인들..
그러나 세상엔 흉터가 많은 자작나무만을 찾아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예술가구 제작자들입니다.
▲ Birch tree wood burl
나무가 상처를 입은 후 그것을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둥글게 부풀어 올라 굳어진 부위를 Wood burl (우드벌 : 옹이)이라고 합니다. 자작나무의 검은색 흉터 또한 옹이의 한 종류이고 그래서 때로는 아이 머리만하게 자라나기도 합니다. 곧고 매끈하고 새하얀 나무에 매달려있는 검갈색 우드벌은 겉보기 만으로도 흉물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마치 말벌집이나 웅크린 나무늘보같이 생긴 모양도 볼품없지만 표면의 징그러운 요철무늬는 경기가 날 지경입니다. 그런데 예술가구 제작자들이 그런 옹이박힌 나무들을 찾아다닌다구요?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그 볼품없이 징그러운 옹이 안에 어떠한 아름다움이 숨겨져있는지 이미 경험하여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적당하게 옹이가 박힌 나무를 찾아낸 뒤 그것을 잘 잘라냅니다. 표면의 거칠고 껄끄러운 껍질을 벗겨내고서 수박을 가르듯 짜악 갈라주면... 마치 이 세상것이 아닌듯 한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나뭇결의 문양을 얻을수 있습니다. 때로는 소용돌이 치는 울돌목의 회오리같기도 하고 때로는 초원을 뛰노는 어린양의 꼬불꼬불한 솜털 같기도 한 꿈틀대는 문양..
하지만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겉모양만으로 그 안에 어떤 아름다움이 숨기워져 있는지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나무가 다르고, 상처의 이유가 다르고, 그것을 치료한 과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작나무의 Wood burl에 내제하는 문양은 그것의 모양에 관계없이 모두 아름답다는 것 뿐입니다.
Wood burl은 자작나무의 눈물이 굳은 흔적입니다.
잘려나간 가지를 아쉬워하며, 이제는 비어버린 제 삶의 일부를 아파하며, 어찌해서든 꾸려나갔던 재활의 시간이 구체화된 형상입니다. 입 틀어막고 끅끅대며 울어야했던 꼬이고 꿈틀대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Wood burl은 둘째가기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예술 가구의 장식부품이나 귀한 목기를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구하기가 어려운만큼 가치가 높은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한 최선의 몸부림이 남긴 내면의 아름다운 변화와 성숙, 인격의 진보를 상징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젠 뉴질랜드의 결혼 적령기를 살짝 웃돌아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할 나이의 예전 학생입니다. 그가 아직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시절, 우리는 잠시 같이 공부를 했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의 청바지를 입었었고 그는 지금보다 훨씬 수염이 적었습니다. 며칠전 우연히 마주친 그의 모습으로는 도무지 그 시절의 앳된 얼굴을 떠 올릴수 없을듯 했지만, 다행히 천진난만해 보이는 미소만은 여전해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그는 키가 작습니다.
어려서부터 뼈에 관련된 병을 앓았었고 그래서 다른이들처럼 키가 쑥쑥 자랄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 그를 만났을 때, 유전적인 왜소증이 아니어서 그런지, 키가 좀 작은것 말고는 크게 외견상의 차이점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크게 고통스러운 병은 아니었나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나중에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나니, 세상에 만상에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인생도 없을듯 했습니다. 너무 뼈가 약해서 어디 툭 부딪히기만 해도 부러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일년의 반은 몸 어딘가에 깁스를 하고서 병원에 누워서 보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다리가 부러져서 입원을 하고는 한달동안 그 약하디 약한 뼈를 겨우겨우 조심스레 붙여서 퇴원을 했는데, 집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차를 돌려 병원으로 돌아간적도 있었다 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마당에 그냥 맨정신으로 듣기에는 마음이 쓰려서 견딜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그토록 지극했던 부모님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요? 10대 중반에 들어서며 그의 증세는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고 10대 후반이 되어서는 불치병이라던 그 병이 완치되었습니다.
행여나 부러질까, 행여나 꺽어질까, 허구헛날 노심초사하던 부모님께는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 행복한 날이 도래했지만 정작 그에겐 한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픈 몸을 하고서도 어찌되었든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었지만 몸이 점차 건강해지자 스스로의 욕심이 커진 것입니다. 욕심이 커지자 현재의 성적이 불만족스러웠고 그 불만은 곧 걱정과 스트레스로 이어졌습니다. 행여나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다시 악화되면 어쩌나 부모님들은 염려하셨지만 천만다행히 그는 성적표를 붙들고 신세한탄만 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습니다. 11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그는 철저한 건강관리와 함께 철저한 성적관리를 병행했습니다. 많은 시간을 책상 머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기에 사교육은 최소한으로 줄여 진행했고 학교 선생님이 주도하시는 수업에 최대한 의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그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질문 공세를 퍼 부었고 선생님들은 그의 열정에 감탄하며 성심껏 지도해 주셨다 합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그는 욕심내던 대학교의 바로 그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이전엔 찾아볼수 없었던 온화하면서도 강인하고 침착하면서도 추진력있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신사와도 같고 용사와도 같은 자세를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냈고 결국엔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 학생 공동체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칭찬을 잘 합니다.
그의 칭찬은 그저 입에 발린 공치사가 아닙니다. 매우 진지하고 구체적이며 건설적입니다. 한번은 대학생이었던 그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중 예전에 제가 잘 다루었던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물이 아니라 열물, 백물이 지난터라서 웬만한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그래도 꽤 잘 다루었다고 말하자 그의 칭찬이 이랬습니다.
“와.. 선생님은 머리속에 논리가 아주 정확하신가 봐요. 지금은 프로그램들이 점점 인간친화적으로 변해서 머리속으로 논리회로를 그릴 필요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머리속을 컴퓨터처럼 만들어야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고 배웠거든요. 아마 컴퓨터가 더 똑똑해지면서 사용하는 사람들 머리는 점점 더 나빠지는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 옛날에 프로그램을 하셨으니 참 대단하세요.”
칭찬이 이 정도면 과찬이라며 손사래치면서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분명한 근거를 들이대며 칭찬을 하는데에야 무슨 수로 ‘에이~ 별거 아니야~’를 시전하겠습니까? 비난의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기는 쉽지만 칭찬의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법인데 그 어려운 걸 너끈히 해내곤 했으니 학생회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도 해낼수 있는 친구인 것은 사실인듯 합니다.
그는 또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길을 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앞에 놓고 며칠간 고민하는가 싶더니만 어느 순간 칼로 자르듯 미련없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절대로 후회하거나 뒤돌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와 대화하던 중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예전의 유약하던 모습에서는 지금의 열정적이고 야수와도 같은 추진력을 상상할 수가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변화가 시작된 것일까...
머뭇거리는 저의 질문에 그는 예의 그 천진난만한 미소에 잔주름까지 얹어 건네며 말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땐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운동을 할 수도, 남들 앞에서 호기롭게 연설을 할 수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생각만 했어요. 몸이 건강해지만 하면, 그런날이 오기만 하면, 지금 그려보는 그 모습 그대로 살아야 겠다.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어떤 직업이나 타이틀이 아니라 어떤 ‘자세’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책을 좀 읽었었는데 그 영향도 있는 것 같구요. 뭐.. 다들 그렇잖아요. ㅎㅎ”
그랬습니다. 그는 이미 이런 사람이었던 겁니다. 단지 그 열정과 소망이 육체의 고통속에 오롯이 갇혀 정제되고 순화되고 다듬어지며 성숙하다가 십대 후반의 적당한 어느 날 오래된 자물쇠를 열고 세상에 드러났던 것 뿐입니다. 마치 볼품없는 자작나무 Wood burl 안에 기가막힌 보물이 숨겨져 있듯 병들고 왜소했던 그의 내면에는 냉철한 지성과 뜨거운 열정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고통을 지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밤송이를 품은 듯 심장이 뜨끔거리고 숯불을 삼킨듯 속이 화닥댑니다.
시간, 관계, 건강, 재산, 기회 그리고 ‘성적’의 상실은 부러진 자작나무 가지처럼 속절없어서 도무지 되돌릴 가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상하고 눈물짓고 절망하고... 그러다가 결국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적당한 때가 되었을때 우리의 고통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서러웠던 상실의 진정한 유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왜 내게 이런 아픔이 있는가?’가 아니라 ‘이 아픔의 종국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기다리는가?’를 궁금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까지, 비록 고통은 고통이요 슬픔은 슬픔이겠으나, 그 안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문양을 꿈꾸며 마음 아픈 Wood burl을 참고 견디어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