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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어딨겠냐만 나는 개인적으로 뉴질랜드에서 알게 돼 현재까지 이어 온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전생에 나와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태어난 한국에서는 서로 모르고 지내다 낯선 뉴질랜드라는 곳에서 만나 인연을 쌓고, 또 한국에 와서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에서다. 분명 보통 인연은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갑절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이 있다.
뉴질랜드에서 살 때, 우리집 역시 다른 많은 교민들이 그랬듯 홈스테이 학생들을 데리고 있었다. 당시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대만 출신의 두 자매였다. 이민 초기, 아는 영어라고는 고작 영어로 내 소개하기가 다였을 Form2 때,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만 아이들을 우리집에 데리고 온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당시의 내 영어 실력을 고려했을 때. 아마도 “You can homestay my house.”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무모했지만 그들은 대체 날 뭘 믿고,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우리집에 살러 들어 왔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든 시작되려고 일이 그렇게 됐던 거 같다. 초반에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기도 너무 두려웠다. 손에는 꼭 전자사전을 들고 밥을 먹었다. 어쩌다 의견이 안 맞아 그들과 말다툼을 할 때도 난 입보다 늘 전자사전으로 영어 단어를 찾느라 손이 바빴고, 전자사전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의사소통의 한계를 느낄 때면 한자사전도 찾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며, 같은 학교에 다녔고, 일요일에는 같이 한인 교회도 나갔다. 나와 내내 붙어 있으면서 자매 중 동생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한국 음식, 한국 노래, 한국 드라마, 한국 문화, 한국 언어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면서 배우자로 한국 남성을 만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고 어느덧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며 그 두 자매는 집을 렌트해서 나갔다. 그 후 세월이 더 지나 난 한국에, 그리고 그 친구는 대만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그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한국 남자와 천안에서...
그 친구는 이제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한다. 정말 우린 어떤 인연이었을까? 서로 한국, 그리고 대만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서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고, 다시 한국이라는 곳에서 그 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친구와 내가 뉴질랜드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 친구가 우리집에 들어와 살라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그 친구가 나와 사는 동안에도 한국 문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의 인연은 아마 각자 고국으로 돌아간 뒤 시들해졌을지도 모른다.
코로나를 이유로 다른 여러 결혼식에는 참석을 못 했지만 이 친구의 결혼식은 꼭 가야 했다. 가족도 없이 타국인 한국에서 올리는 결혼식, 나라도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주말이어서 교통체증이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왕복 5시간이 걸렸다.
대만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제 한국에서 천안댁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내 친구와 앞으로도 이어질 인연이 기대된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니, 역시 뉴질랜드에 가서 살기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