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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는 이야기
이미 너무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나 역시 ‘길들이다’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이야기다.
풀 위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던 어린왕자는 여우가 나타나자 매우 슬프다며 놀아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놀아줄 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요즘엔 많이 잊힌 일이지만 그건 ‘사이좋게 된다’는 말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내게 있어서 너는, 십만이나 되는 다른 많은 사내아이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아이다. 따라서 나는 네가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 너 역시 내가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야. 네게 있어서 나는, 십만이나 되는 다른 여우와 똑같을 거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너는 내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
여우의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그러나 남녀가 만나 서로를 길들이며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는 꽤나 치열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일부를 버리거나 깨부수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 대한 눈을 낮추고 오히려 상대방을 높여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도 또 극복해야만 할 난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한 난관은 당장 두 사람의 문제뿐 아니라 연결된 가족 또는 자식으로 확대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톨스토이의 소설 <결혼>은 욕망과 질투심 때문에 아내를 죽인 포즈드느이셰프의 이야기를 통해 부부관계의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소설로 치부하며 좌시할 수 없는 이유는 톨스토이가 던지고 있는 부부관계의 갈등과 역설적인 질문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다룰 옛이야기는 ‘바다뱀’과 ‘지빠귀부리왕’이다.
인디언의 옛이야기 ‘바다뱀’에서는 심각한 결벽증을 가진 족장의 딸이 등장하고, 독일의 옛이야기 ‘지빠귀부리왕’에서는 매우 오만방자한 공주가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 여성들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지 그들의 두 배우자들을 통해 길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