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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을 통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고,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느림의 미학을 지닌 뉴질랜드에서 살다 왔다면 한국의 이런 빨리빨리 문화가 더욱 낯설지만, 그에 따른 편리함도 상당히 크다. 은행에서 계좌 하나를 개설하려고 해도 뉴질랜드는 은행과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등 넉넉잡고 2주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직접 은행에 가지 않고도 비대면 거래로 핸드폰 버튼 하나만 누르면 10분 이내에 뚝딱 계좌가 하나 생긴다.
한국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당일, 혹은 다음 날에 도착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계산 완료와 동시에 주문한 음료가 나온다. 인터넷도 빠르고, 사람들의 움직임, 그들의 말과 성미도 빠르며, 모든 서비스나 마케팅도 스피드로 승부를 건다. 이렇다 보니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한국은 빠르고 뉴질랜드는 느리다”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백화점 식품관에서 깔라마리를 판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드디어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뒤처지는 점을 발견했다.
▲ 오클랜드에서 먹은 깔라마리
한국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 어떤 나라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십 년 전부터 뉴질랜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던 깔라마리가 이제서야 한국에 들어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는 아보카도 소스 과카몰리 역시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설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부터 뉴질랜드를 포함한 여러 다른 나라에서 흔히 먹을 수 있던 깔라만씨, 크로플, 맥앤치즈, 에그인헬 등 모두 한국에서는 한박자 늦게 유행을 타고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에 있어, 한국인의 이런 특성은 음식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다른 나라 또는 문화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배타적이다. 이런 배타성이 얼마나 심하면 중국인 다음으로 세계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정착에 실패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있을까. 한국인들은 이를 “단일민족”이라고 일컬으며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지만 사실 이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문화적 이질감을 극대화시키며, 다양한 유형의 문화적 갈등과 차별을 발생시킨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에만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또 지역을 나눠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도 심하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자신과 고향이 다르면 일단 거리를 두고 본다.
한국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지만, 그 변화에 대한 적응은 상당히 느린 나라다. 뉴질랜드는 반대의 경우다. 변화는 매우 더디지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히 오픈마인드다. 외신기사에서 뉴질랜드를 괜히 “multicultural nation”이라고 칭하는 게 아니다.
퇴근길 우연히 들른 백화점에서 깔라마리를 파는 것을 보고 너무 반가워 “왜 이제서야 한국에 들어왔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오늘도 난 기어이 뉴질랜드가 한국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과 아울러 한국의 문제점을 집어낸다. 어쩌면 이 칼럼을 다 쓴 후, 백화점에서 사 온 깔라마리를 먹으면서 오클랜드에서 파는 깔라마리 맛보다 못하다며 또 다른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