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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었을 때 제법 많은 레코드를 갖고 있었는데 거의 복사판이었다. 진품은 헤리 베라폰테Herry Berrafonte의 <카네기홀 공연실황> 음반과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haus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등 몇 곡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너희들이 음악을 아느냐.’ 면서 약간 뻐기고 다니며 이런저런 자리에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꽤 알은 척을 했다. 오디오도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할 형편이 못 돼 방송국 엔지니어에게 부탁해 세운상가에서 부품을 구입해 조립해 들었다. 테니스가 유행하던 시절, 나는 라켓부터 샀다. 그리고 서예를 배우기도 전에 벼루부터 장만했다.
이런 나의 천성을 두고 아내는 폼부터 잡는다고 흉을 봤다. 그런데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매달 10만원 정도의 책을 샀다. 지금은 별 돈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에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했다. 문학잡지 2권 정도는 정기 구독을 했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세계사상대전집>> 50권짜리도 월부로 샀다. 당시 빠듯한 살림에 무리가 가는 건 사실이었다. 아내는 읽지도 않는 책을 산다며, ‘선비도 아니면서 선비인 척하고, 학자도 아니면서 학자인 척하는 못 말리는 ‘폼생폼사’라고 비난했고, 이사할 때마다 책 좀 버리자고, 읽지도 않는 책들을 왜 끌고 다녀야 하느냐며 지청구를 주었다.
사이비라는 이야기이고 가짜라는 말이다. 나는 ‘진짜 같은 가짜’도 있고 ‘가짜 같은 진짜’도 있는 거라며 책은 당장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고 언젠가는 쓸데가 있는 거라며 기어이 끌고 다녔다. 그런데 느지막하게 그런 책들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책도 내고 대학 강의도 나가고 하니까 요즘 별 말이 없다.
내가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도 아내는 “허름한 잡문이나 쓰는 주제에 마치 대단한 작가인 양 폼 잡으며 하얀 모시적삼 입고 부채 들고 헛기침하며 거드름 피우려고 가려는 거지? 안 봐도 비디오야!” 하며 몹시 못마땅한 듯 비아냥거렸고, “노벨문학상만 못 받아봐라. 머리를 다 뜯어버릴 거야(필자는 대머리다).”하며 으르르 딱딱거렸다.
확실히 나는 폼 잡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시골로 이사 가서는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평소 좋아하는 그림 몇 점을 표구해 걸어놓았다. 진품이 몇 점 있긴 하지만 대개가 영인본이다. 오원吾園 정승업의 <호취도豪鷲圖>, 석파 石坡 대원군의 <묵난墨蘭>, 추사가 “압수 이동 以東에 이런 그림은 絶無” 하다고 칭찬한 소치小癡의 그림 등이다.
나는 그들 그림을 볼 때마다 무릎을 친다. 오원의 <호취도>에서는 그의 불우한 환경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호방한 기개를, 양광 洋狂의 파격에도 석파의 난은 오히려 고아高雅하다. 중국 작가 자유푸의 그림 <무제>에서는 우리네 인생을 본다. 깊은 산중, 해는 산중턱에 걸렸는데 한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내려온다.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화면 전체를 차지한 검은 사과 그 하단에 무거움 짐을 진 한 남자를 배치한 이 기이한 구도는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비는 오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이 적막할 때나, 바람 불어 그리운 이가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 나는 그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본다. ‘그렇구나. 우리네 삶이란 결국 해질녘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내려오는 거구나.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면서 위안을 받는다. 오원의 그림에서도 나의 불우한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서 그의 호방함을 배우고, 석파의 난에서는 젊은 시절에서도 지혜롭게 품격을 유지한 그의 인내를 배운다.
나는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 본다. 그것이 ‘진품이냐, 아니냐.’로 판단하지 않는다. 복사판으로 음악을 들었다 해서 그 음악이 편하되거나 손상되지 않듯이 그림 역시 그 안에 담겨진 뜻이 격조가 있으면 그만이지, 그것이 영인본이라 해서 그런 뜻이 왜곡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른바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림이나 수십억을 호가하는 그림에 대해서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라는 그림이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재벌가의 부인들이 운영하는 이름있는 화랑에서 그런 유의 그림들을 탈세나 치부의 목적으로 사 두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고 수십 억을 호가하는 그림값에 모두들 말을 잃었다. 그런 그림들이 값이 나갈지는 모르지만 나의 무식한 감상법으로 보면 그 가치에 회의한다.
그러나 나는 피카소나 뭉크, 그리고 고흐의 몇몇 그림에서는 다른 서양화와는 다른 무언가 가슴을 치는 메타포가 있다고 느낀다. 그림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름답다거나 뜻이 그렇듯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본 관객이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뭐가 아름다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새 울음소리는 아름답습니까.” “그렇죠.”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요?” “글쎄요.” “새소리가 아무 의미 없이 아름답듯이 그림도 그렇게 보면 됩니다.” 해석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보라는 것이다.
의미는 그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감상자의 가슴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나의 시골집을 방문한 한 지인이 오원의 그림을 보고 물었다.
“이거 진짜가?”
“진짜면 수십억은 될걸. 영인본이다.”
그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가짜구나.”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에게 그랬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라.”
그는 아무 대꾸도 안 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로 보아 가짜 그림을 걸어놓은 나를 ‘가짜’로 보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나는 폼만 잡는 ‘가짜’다. 나를 ‘가짜’라고 비웃는 그대는 ‘진짜’인가?”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봐라. 하늘이 갈대 구멍만 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