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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병철
하늘 우체국에 가본 적 있다
구름이 치는 전보 속에서는
깨알빛 새들이 시옷자 날개를 펴고
텅 빈 서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우체국을 품고 있는 산맥의 품에서
연필심 냄새가 수런수런 피어올랐다
만년설 아래에도 흑연이 숨어 있을까
나는 투명한 결정들이 지면을 이룬
거대한 엽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 깜빡이듯 낮과 밤이 바뀌는 동안
사람과 산양들이 서툰 글씨로
저마다의 사연을 기록해둔 곳
잉크 자국조차 가물가물한 설원엔
펜 혹을 닮은 바위들만 솟아 있었다
나는 손바닥만 한 알프스를 사서는
그 뒷면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마을까지 퍼지지 못하고
바람에 증발되는 목동의 노래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일까
눈 삼키다 멈춰선 제설차의 기침을
옮겨 적을 수 없었다, 그때
해발 3,500미터의 쓸쓸한 우체국에서
네가 있는 서울 반지하 주택까지의 거리가
크레바스보다 더 움푹 팬 흉터로 아려왔다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엽서 위에
긴 문장을 적듯 천천히 우표를 붙였다
유리창에는 서리가 적어 놓은 주소가
소리 없이 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