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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얼룩진 경자년(庚子年)을 보내며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은 근대 중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소설가, 문명 비평가로서 국제적인 인물로 꼽힌다. 상해의 세인트 존스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대학에서 언어학 석사를 하고 독일로 건너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북경과 상해에서 교수로서 후진을 양성했고 『논어』라는 잡지를 발행하였으며 중국의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여 중국문화를 외국에 소개했다. 1935년부터 31년 동안 미국에 살면서 유네스코 예술부장, UN총회 중국대표를 역임했고 타이완으로 이주 후 대표저서 『생활의 발견』(원제목: 살아 있음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living)에서 생활 속의 철학을 풀이하기도 하였다. 한적(閑寂)한 생활을 기본으로 생활에 대한 자세와 참된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삶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어떤 이는 “현명하고 명랑한 노인이 되라, 경우에 맞게 처신하라”라는 두 마디로 요약해서 풀이하기도 하였다.
2020년은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체험을 겪게 되고 여기에 따른 반성과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계기로 고난의 세월을 보낸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우주를 개척하겠다고 위성을 띄워 보내고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발명하여 편안한 생활을 도모하며 첨단 무기들을 개발하여 인간 생활을 해친다고 생각되는 온갖 다른 생물들을 퇴치해오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인 코로나 19이라는 병원균에 인간 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특히 세계 최 부강국(富强國)으로 자처하며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듯이 설쳐대던 미국이 코로나 앞에 가장 약하고 가장 문제가 많은 나라로 그 민낯을 보여준 금년은 새로운 발견 이었다. 이태리,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도 그 허구성을 전 세계에 노출하고 말았다.
16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류문명의 중심은 동방이었고 문명의 발상지도 마찬가지였다. 종이, 나침판, 화약, 금속활자 등 이기들도 동방에서 먼저 활용되어 왔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일컫는 공자, 석가 등도 예수보다 500여년 전에 활동하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이후 이어진 대항해 시대의 도래와 산업혁명의 물결에 뒤쳐진 동방은 세력이 쇠퇴하여, 근대에 이르러 문명의 주도권이 서방세계로 흘러가고 역사는 그들 중심으로 쓰여 지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동양적인 사상체계와 생활방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을 느낀다.
코로나19로 인한 경보 1단계-4단계를 경험하면서 생활의 발견을 체험하게 되었다. 1단계에서는 약간의 주의사항만 지키면 되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2단계-4단계로 진전이 되고 강도에 따라 각종 모임이 취소되고 출입이 제한되고 종국에는 집에만 갇혀 지내야 되는 지경에 까지 몰리게 되었다. 신체적 자유까지 훼손당해야 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에 물든 현대인은 극심한 불편을 맛보게 된다. 매주 20회의 정기적인 또는 비정기적인 회합에 참여했던 생활이 점점 축소되어 가더니만 가족과 집에만 있어야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파자마 맨으로 전락하여 하루 종일 거실과 안방을 서성이며 TV만 보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의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점점 외로워지기 마련이고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외로운 처지를 창조적인 고독으로 승화하여 생활의 발견을 시도하면 어떨까?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고산 윤선도 등은 외로운 처지에 처했을 때 오히려 많은 업적을 남겼다. 코로나 경보 3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은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악기를 연마한다던지, 그림 그리기나 붓글씨를 연마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개발하여 체력 단련도 하면서 즐거움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모처럼 집에서 자유시간에 그동안 수집했던 스크랩-북을 들춰보고 신문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도 다시 읽어봤다. 지난날의 앨범을 뒤적이며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 개인의 주요 사건들을 연월(年月)별로 정리하여 기록해봤다. 이들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바다가 좋아 질 땐 누군가 사랑하는 거래요. 가을밤에 달이 보고 싶을 땐 첫 사랑을 시작하는 거래요. 가을밤에 달을 보면서 바닷가를 걷고 싶을 땐 누군가와 첫 사랑을 재현하는 거래요.” 집에만 있으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경보 3단계에서 산책은 가능하다고 했다. 집에서 왕복 2시간 소요되는 밀포드 비치를 매일 아내와 함께 걸었다. 록다운(Lock down) 기간 동안에 이혼율이 증가했다고 하던데 결혼 51년 만에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같이 행동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묘기를 발휘하여 우리를 반겨준다. 바다와 가을밤이 어우러져 바다에 비친 달, 하늘에 떠 있는 달, 마음속에 있는 달을 보며 걷고 있을 땐, 첫 사랑을 재현해보는 감흥을 맛보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베푸는 선물로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