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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있다. 오래전 뉴질랜드 생활을 막 시작했을 당시 내 눈을 사로잡았던 뉴질랜드의 진풍경은 차량 통행이 잦은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시 아무 차에나 달려들어 차 유리창을 닦는 학생들이었다. 처음에는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겨울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미션베이에서 조깅하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매우 신기하게 바라봤던 광경이다.
한국에도 한국에만 있는 진풍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진풍경은 1년 중 딱 하루 ‘수능일’에만 볼 수 있다. 바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러 가는 시간대에 여기저기 배치돼 있는 순찰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구급차다. 이들의 임무는 수능시험에 지각할 것 같은 학생을 시험장까지 급히 태워다주거나 수험표를 깜박하고 집에 놓고 온 학생의 집에 가서 수험표를 가져다주거나 혹은 긴장으로 인한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등 어려움에 처한 수험생을 돕는 거다. 한국에 와서 이런 임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불필요한 거라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중 하나를 치르러 가는데 지각하는 학생들이 과연 있을까? 수험표를 집에 두고 시험장에 가는 학생이 과연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에서였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너무도 많았다. 올해 수능일에도 어김없이 곳곳에서 경찰 오토바이 뒤에 앉아 시험장으로 가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엔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유모차에 가만히 앉아 여유롭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강아지들이 귀엽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의 신분 상승(?)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과거에는 사람을 태운 썰매를 개가 끌었는데 이젠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를 사람이 끌고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신분 상승인가. 심지어 고퀄리티의 강아지 유모차는 100만 원대를 호가해 반려견을 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 브랜드의 강아지 유모차를 소유하는 것이 마치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유모차뿐 아니라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명품 강아지 패딩은 50만 원에 달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요즘이다. 개 호텔, 개 비타민, 개 홍삼, 개 스파실, 개 유치원, 개 마사지샵 등 없는 게 없다. 나도 현재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강아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길에서 유모차에 패딩을 입고 앉아 있는 강아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강아지는 ‘키워야 하는’ 존재이지, ‘모셔야 하는’ 존재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를 떠나 있는 지금은 가끔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진풍경이 그립다. 차를 타고 가다 잠시 신호등에 걸려 대기 중일 때 문득문득 뉴질랜드의 창문 닦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마도 언젠간 내가 한국을 떠나 살게 되면 패딩을 입은 강아지가 유모차에 앉아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수험생들을 뒤에 태우고 시험장까지 전력 질주하는 경찰 오토바이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