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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했었던 바이러스가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었었고, 인터넷 기사는 온통 코로나로 가득 찼었다. 그로부터 1년이 된 지금까지도 코로나는 여전히 전 세계인들을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올해 1월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고 그 다음 달인 2월에는 뉴질랜드에도 코로나가 발을 들여 놓았다. 다행히 뉴질랜드는 강력한 퇴치 전략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코로나 청정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경제와 국민들의 생활에 많은 지장과 변화를 주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 중에 구조조정으로 직업을 바꾼 지인도 있고, 사업에 차질이 생긴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두들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내 사촌의 가족은 모두 다 코로나에 걸렸었다. 다행히 모두들 완치를 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데, 부디 후유증이 없기만을 바란다.
얼마 전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았다. ‘응답하라 1988’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방영된 드라마로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라고 한다. 넷플릭스 덕분에 나도 시청을 하게 되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았다.
1988년으로부터 2015년까지 27년이란 세월 동안의 쌍문동 한 골목의 이웃들과 가족 간의 사랑을 그렸는데, 한국 서민의 애환과 부모의 교육열과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자식들의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한국 경제의 발전 또한 그들의 성장에 발맞춰서 나아갔다.
‘응답하라 1988’은 1987년에 결혼한 나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떠오르게 한 작품이다. 자잘한 소품들 하나하나와 수많은 삽입곡들이 지나간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코믹한 장면들에 큰소리로 웃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숨어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그 추억들 중에는 너무 아파서 아름답게 포장 되어진 것들도 많으리라. 인생살이가 힘들고 처절하기에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면서 잘 살아보겠다고 기 쓰면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여기까지 왔겠지만, 지나온 곳들이 늘 정거장과도 같았다. 잠시 머물다 지나치는 그런 곳. 수 많은 인연 역시 짧은 스침들 뿐이었다.
그 인연들 속에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들부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인연들이 있다. 철이 없어서 잘못했었던 일들도 많았고, 그땐 맞았었지만 지금은 아닌 일들도 많았다.
나는 그 27년 중 13년만 한국에서 살았다.
내가 뉴질랜드로 온 이후 처음으로 한국 방문을 한 것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기 1년 전 즈음이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 도착하여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하철부터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크게 발전을 해서 내가 떠나올 때의 한국이 전혀 아니었다. 내 동생이 공항으로 나와서 나를 마중하지 않았었더라면 거리의 미아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영종도 국제공항부터 시작해서 한국은 완전히 별천지가 되어 있었다. 조용한 파미에서만 살았었던 나로서는 급변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변화의 속도감이 없는 파미에서 머무르고 있는 동안 한국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해 나간 것이다. 대단한 나라에 위대한 국민들이다.
지금 한국의 ‘빨리빨리’는 세계 곳곳에서 높게 평가를 하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육 방침에 대한 관심도도 무척 크다.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다른 나라에서는 높은 교육열과 ‘빨리빨리’로 보고 있는 것 같다.
2020년의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방역도 한국의 ‘빨리빨리’가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모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믿으며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낸다.
코로나 청정국으로 불렸던 뉴질랜드도 다시금 코로나 확진자의 유입으로 경보 1단계를 유지하면서 방역에 대한 긴장을 바짝 땅기고 있다.
매사에 느긋하고 ‘천천히’ 가는 뉴질랜드가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에는 강력하고 신속하게 대처를 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 방역은 정말 대단했다. 느긋할 때 느긋할 줄 알고 신속할 때 신속하게 움직일 줄 아는 뉴질랜드. 다시금 뉴질랜드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과 뉴질랜드가 내 고국이며 내가 서 있는 땅인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한국의 ‘빨리빨리’와 뉴질랜드의 ‘천천히’가 합주곡이 되어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아울러 모든 자연이 하나의 화음이 되어, 자연 앞에 고개 숙인 나를 다독여주었다.
“괜찮다. 다 괜찮다.”
2020년의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나의 2020년도 함께 뒤돌아본다.
전 세계의 2020년,
한국의 2020년, 뉴질랜드의 2020년,
그리고 나의 2020년이 모두 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돈의 세상이 되어 버린 2020년이
지구의 모든 인류에게 응답과 더불어 질문을 던지는
특별한 해인 것은 확실하다.
2020년의 질문에 대한 2021년의 응답이
현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연말연시를 보내려 한다.
그런데 2020년의 응답이 응징으로 여겨지는 건,
단지 나만의 생각일까?
2021년의 응답이 응징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