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저녁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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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저녁에 관한 기록

0 개 1,471 오클랜드 문학회

시인 고 영민


노을이 붉다. 

무엇에 대한 간곡한 답례인가. 

둑방에 메인 염소 울음소리가 하늘 끝까지 들렸다. 

배롱나무 가지엔 꽃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백일동안 붉게 핀다는 이꽃은 언제 처음 이 가지 끝에 달렸을까. 

문간에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고 

가늘게 눈을 찌부리며 꽃의 처음을 생각했다. 

저 꽃은 자신의 진분홍이 내내 설랬을까. 

아마도 잠들지 못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끝물의 꽃은 처연하면서 아름답다. 

하지만 그 기억도 이젠 곧 희미해질 테지.

파밭 사이로 그때나 지금이나 

지루한 몇채의 함석집이 놓여 있고 

미루나무가 서 있고 둑방 너머의 갯벌 한쪽 염전에는 

삐그덕, 수차를 돌리는 검은 씰루엣이 보일 뿐이다.

더 어두워지면 그도 저 둥근 

쳇바퀴를 내려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에게도 오늘 이 하루 

등뒤에 고스란히 남는 것은 흰 소금꽃 뿐

또 백일을 고스란히 살아버린 꽃이 

저녁 바람 속에 한 숭어리로 진다. 

그리고 풍경의 어떤 것도 

그 떨어진 꽃을 다시 줍지는 않는다. 

울음소리로 보아 멀리 논에서 놀던 오리들이 

이젠 제집으로 가고 있다


■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aucklandliterary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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