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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춘천 청평사 템플스테이
이영미 씨에게 춘천 청평사는 첫사랑 같은 절이다.
서울에서 엄마이자 아내, 직장여성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영미 씨는
스무 살, 성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청평사였다.
이제 40대의 영미 씨는 딸과 함께 청평사를 찾아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했다.
달콤한 주말아침의 늦잠을 포기하고 영미 씨와 딸 서윤이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며칠 전부터 계획한 청평사 템플스테이를 하러 가는 길, 모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지만 이번 여행에는 ‘처음’의 설렘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올해 청평사에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반가웠어요. 스무 살에 성년이 된 기념으로 청평사로 여행을 온 이후 몇 번 더 청평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1박 2일로 절에 머무르며 사찰문화를 경험해 본다고 생각하니 스무 살 때 혼자 처음으로 여행 떠나올 때처럼 설랬어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되어 천년이 넘은 세월동안 고려선원(高麗禪園)의 정취와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유명한 청평사. 서울에서 이곳 청평사로 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ITX청춘열차를 타고 남춘천역이나 춘천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거나, 유람선 대신 육로를 달리는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영미 씨는 빨리 가는 방법보다는 기차도 타고 유람선도 타며 즐거움이 배가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에게 여행의 기준은 속도나 편의가 아닌 낭만과 추억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인데 늦잠 자고 싶지 않았어요? 오기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초등학교 5학년 서윤이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처럼 저도 절 좋아해요!”
공주가 삼층석탑을 세운 까닭은?
선착장에서 청평사로 이어진 계곡 길을 20여분 걸어 올라와 템플스테이 숙소에 짐을 푼 모녀는 자연의 품안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숙소 옆 누각에 올라 나무도 바라보고 연못 속 물고기를 바라보기도 하며 일상으로 꽉 찼던 머릿속 생각들을 비웠다. 계곡을 따라 즐비한 돌탑에 작은 조약돌 하나 올리며 마음 속 소원 하나 빌어보기도 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서윤이는 숲에서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를 보자 환호성을 쳤고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 곁을 떠날 줄 모르기도 했다.
노년의 부부, 혼자 온 직장인 등 오늘 템플스테이 참가자라는 인연으로 만난 이들이 다 모인 오후, 청평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능관 스님께서 일행을 계곡 건너 환희령 언덕에 자리한 삼층석탑으로 안내했다.
“청평사에는 유명한 ‘공주와 상사뱀’ 전설이 있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당나라 때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스님은 청평사 창건 시기를 기준으로 설명하심)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는데 신분의 차를 넘어 평민 청년과 사랑에 빠졌지요. 이를 알게 된 왕은 크게 노해 청년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커다란 뱀으로 다시 태어나 공주의 몸을 칭칭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갔습니다. 한 스님이 고려의 이름 높은 절에 가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말을 했고 공주는 여러 절을 다니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지요. 공주는 아침을 여는 범종소리를 듣고 절에 가서 밥을 얻어오겠다며 뱀에게 잠시 풀어 달라고 했는데 웬일인지 뱀이 순순히 몸을 풀어주었지요. 시간이 지나도 공주가 오지 않자 공주를 찾아 나선 뱀이 청평사의 정문인 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벼락을 맞아 죽고 계곡물에 쓸려 내려갔습니다. 공주는 오랫동안 청평사에 머물며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여기 이 삼층석탑을 세우고 뱀이 다음 세상에서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빌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삼층석탑은 공주탑으로도 불립니다. 상사뱀은 사랑한다며 집착했지요. 우리도 사랑한다면서 집착하고 있지 않나요? 상대의 자유와 해탈을 기원하는 공주의 사랑이 참된 사랑이 아닐까요?”
스님의 질문에 동행한 이들과 미소를 나누는 참가자들의 얼굴에 가을볕이 일렁였다. 사랑은 쉽지 않다. 상대를 향해 점점 커가는 마음은 집착의 밧줄이 되어 상대를 옭아매고 힘들게 하기 십상이다. 세상 만물을 성숙하게 하는 저 가을볕처럼 사랑하는 이를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가 사랑일 터이다. 탑을 바라보던 영미씨는 딸에게 “오늘 엄마가 안 보이면 이곳으로 와!”라며 알 듯 말 듯한 말을 했다. 다만, 딸을 위해 공덕을 쌓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해보았는데 그 마음을 알았는지 서윤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모녀는 마음에 삼층탑 하나씩 만들고 청평사로 향했다.
보이는 풍경, 보이지 않는 풍경
물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과 주변의 경관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친다는 연못 영지(影池)에서 모녀는 서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친다는 연못 영지(影池)에서 모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임을 새삼스레 느꼈다. 상사뱀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회전문(廻轉門)을 지날 때도 느낌이 남달랐다. 회전문이란 이름은 불교용어인 윤회전생(輪廻前生)에서 비롯됐다. 윤회전생이란 수레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이 모든 생명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되는 것을 말하며 회전문은 큰 진리를 깨달아 윤회전생의 고통을 끊고 극락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불교 목조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경운루를 거쳐 대웅전에 이르렀을 때 능관 스님이 “부처님은 스스로를 극복한 영웅이십니다.”라고 하셨다. ‘스스로를 극복한’이라는 말씀이 긴 여운을 남겼다. 대웅전의 품에 안긴 듯한 나한전과 관음전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겨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에서는 800년 세월동안 변함없이 푸른 기상을 보여주고 있는 주목나무를 만났다.
“청평사에서 눈에 보이는 풍경뿐만 아니라 마음의 풍경 하나씩 가슴에 담고 가시길 바랍니다!”
능관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건너편 삼성각의 풍경소리가 은은히 들려왔고 소슬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아욱국의 기운으로 해내고만 108배
범종을 치며 뭇 생명의 안녕을 기원하고 나서 공양간을 향했다. 저녁공양으로 나온 구수한 팥밥에 아욱국, 각종 산채나물, 겉절이김치, 도토리묵 등은 어른들은 반색할 음식이나 초등학생인 서윤이에게는 어떨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아이는 “저는 나물반찬, 김치 좋아해요. 할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차려주신 음식이거든요. 할머니는 식당을 하고 계시고 우리 엄마는 학교 급식 조리사예요.
저도 꿈이 요리사예요. 오늘 저녁공양도 다 맛있었는데 특히 아욱국이 아주 맛있었어요!”라고 했다.
저녁공양 후 능관 스님은 청평사는 현재 사찰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 중심의 체험형 템플스테이가 아닌 휴식이 주를 이루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108배를 하며 염주 만들기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무릎이 아픈 어르신 대부분은 포기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서윤이가 해보겠다며 대견한 모습을 보였다.
“삶의 순간순간 여유 있게 웃을 수 있는 마음 가지길 바라며 절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절합니다…….”
극락전에서 잔잔히 울려 퍼지는 음악과 발원문에 맞춰 절을 하고 염주를 한 알씩 꿰어가던 서윤이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80배쯤엔 좀 힘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힘겹게 108배를 마치고 108염주를 완성한 서윤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해우소로 달려가며 언제부터 참았던 것이냐고 물었더니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50배부터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잊지 못할 추억하나를 만들고 숙소 앞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불멍의 시간도 가지며 첫날을 마무리지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이 기쁨
다음날 아침 모녀는 한층 높아진 가을하늘 아래 경내를 산책했다. 회전문에서 경운루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돌다리에 무리지어 핀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대웅전 부처님께 인사도 드렸다. 능관 스님께서 내어주신 맑은 차를 마시며 차향처럼 향기로운 말씀도 들었다.
“편히 쉬셨나요? 절이란 공간은 예로부터 수행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의 기도처였지요. 저는 그런 마음이 모인 공간이 자아내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믿어요. 두 분 모녀도 그런 기운 많이 담아가시길 바랍니다.
따님을 향한 엄마의 사랑은 참 아름답지요.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질 거라 믿으며 절합니다.’라는 어제 108배의 메시지에도 있듯이 자작자수(自作自受) 곧 따님의 복은 따님이 짓도록 길(방법)을 알려주세요.”
스님의 말씀에 영미씨가 공감을 표했다.
“좋은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는 절에 오면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기쁨을 느껴요. 스님들께서 해주시는 말씀도 참 좋고요.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나 할까요?”
차담을 마치고 나서 영미 씨는 앞으로 시간이 나면 좀 더 많은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 보니 전국에 템플스테이 사찰이 참 많아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고도 했다.
엄마와 함께 하겠냐는 질문에 서연이는 이심전심 빙그레 웃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부처님의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말씀의 여운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지금 헤어지지만 청평사는 천년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능관 스님과 청평사의 마스코트이자 스님의 그림자인견공 웅산이의 마중을 받으며 두 사람은 회전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