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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
여기까지 와서 돌아보니 내가 지닌 능력에 비해 이렇게까지 나를 높여 주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 아들로 태어나 늙으신 부친께서 기뻐한 교회에서 나를 목회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나를 강제로 떠밀어 세우셔서 나 조차도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순전히 내 능력 밖의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논산훈련소로 입대한 날, 추운 전방 어디쯤에서 소총수로 군생활 할 것으로 마음 다지며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느닷없이 서슬퍼런 5공시절의 국군보안사로 보내어 군복무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조직의 권위에 기생한 알량한 거드름을 입도선매로 맛보게 한 후 3년으로 충분하니 목사가 되서는 권위부리는 자리는 절대 탐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선수 친 배려였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당당하되 교만치 말고 겸손하되 비굴치 말라는 힘차고 따뜻한 일생의 지침을 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내가 주로 타는 칠 벗겨진 오래된 자동차를 내 손으로 칠했습니다. 반짝거리지도 않고 투박합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칠이 벗겨진 것 보다 백 배 더 좋다며 나보다 더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도 아내가 좀 투박하게 일 처리 한 것이 있거든 잘 했다고 칭찬 아끼지 말라시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결혼서약의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거기에 아껴진 자동차 도색 값 천 불은 덤으로 주신 기쁨이었고 내가 전용으로 타는 더 오래된 차 한 대가 우리 집에 또 있다는 것에 아랍부호가 된 듯한 기분까지 두 번째 덤으로 주셨습니다.
아직 둘 만의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 없는 제 엄마와 나에게 지금 가진 것을 자신들에게 줄 생각 마시고 끝까지 다 사용하라는 아들내외의 말에 현혹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둘이서 은퇴 후 첫 세계여행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꾸며 아내와 나를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그때 첫 세계여행 만큼이나 천국 향한 마지막여행도 설레는 마음 갖고 살면 안되겠니 하시며 땅 만큼 천국도 아름다우니 설레어도 좋을 거라며 모퉁이길 돌아가면 무엇이 있는지조차 훤히 아시는 분이 내 인생여행 길 가이드 하나님이셨습니다.
목사가 된지 오래인데 성지순례를 가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안 듭니다. 장사 잘 되기를 기도하며 매일 아침 가게문을 여는 교우, 미래의 자신을 위해 책상에서 밤세우는 어린학생, 일터에서 가족을 위해서라면 비굴함도 감수하는 교우, 투병중에 너무 아파 삶의 기대감을 놓아버리고 싶은 교우의 병석, 그곳이 네가 순례하며 기도해야 하는 성지가 아니겠냐고 하십니다.
태어난 지 이 천년도 더 넘었기에 변해도 너무 변했을 내 고향을 지금 내가 찾아가 본들 나도 무슨 수로 찾겠냐시며 굳이 돈 쓰면서 가지말라 하십니다. 그리고는 네가 나를 품고 살아가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 성지이니 안 가봐도 된다고 성지순례 의무출석의 면죄부를 주십니다.
부모님을 떠 밀어 보내지 아니하셨다면 지금도 추운 겨울이면 압록강가에 나가 얼음을 깨고 아내는 얼음물로 손 빨래하고 나는 물지게로 먹을 물을 길어 오는 신의주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내가 너를 찬물 더운물이 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대한민국 백성 되게 한 것이 네가 잘 나서 그랬겠냐며 너도 북한에서 태어나 고난의 행군에 운좋게 살아남아 죽을 고비 넘기고 대한민국에 왔다면 흰 쌀밥 한 그릇에도 감사해 하는 자가 되었을 텐데 하시며 감사를 잃고 사는 나를 쯧쯧 혀를 차시며 여기까지 참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내 능력에 비해 훨씬 더 잘된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기획자이시며 지배자이시고 인도자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후로 내 인생에 또 한번 더 부어져 빛날 은혜의 자리가 어떻게, 어디까지일지까가 더 기대가 되어 또 다시 기대게 되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