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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권 대웅
나무에게로 가리
해에게도 가지 않고 달에게도 가지 않고
한 그루 큰 말씀 같은 나무에게로 가리
깊고 고요한 잠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세상에서 나는 잊히고
땅밑을 흐르는 구름과 별들 양치식물들 눈뜨는
시간 속으로 뿌리 같은 손길 하나가 다가와 나를 깨우면
훅, 달의 뜨거운 호흡에 빨려드는 바닷물처럼
나는 푸른 나무의 바다로 들어가리
아득하여라 나무의 바다 속
바람 불고 봄이 오고 빗방울 떨어져
어떤 기운이 꽃봉오리 꼭 잠긴 몸속으로
나를 밀어내면 아, 나를 밀어내면
비로소 알게 되리
햇빛과 꽃잎과 만나 열리는 저 존재의 비밀을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하늘과 땅의 팔만대장경을
또다시 나뭇잎은 떨어지고
햇빛과 빗물과 추억은 날아가
살아남은 것들의 들숨이 되고 치유가 되어
이 세상 천지간 무소유로 선
나무에게로 가리
사람에게도 가지 않고
저 세월 속으로도 흐르지 않고
한 잎 피고 지는 것도 화엄인
나무에게로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