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간 것, 그러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사라져 간 것, 그러나....

0 개 1,546 오소영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7917_2737.jpg
 

초겨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이른 밤이었다. 어린 계집애는 따뜻한 요밑에 언발을 묻고 책가방을 끌어 당겼다. 숙제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얼었던 몸이 녹는가싶더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손에 쥐었던 연필을 떨군채 잠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귓청을 때리는 바람에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다닥 또다닥.... 또다닥 또다닥...”


바로 문 밖 대청 마루에서 들려오고 있었기에 발딱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와 언니가 마주 앉아서 신나게 다듬이질을 하고 있었다. 돌아앉은 언니의 곱게 땋아내린 긴 머리끝 댕기가 가볍게 리듬을 타고 팔랑거렸다. 그건 일이 아니고 재미나게 노는 놀이처럼 흥겹게 보였고 엄마와 짝을 잘 맞춰 하는 언니가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방망이 네개가 질서정연하게 박자를 맞추니 또다닥 또다닥 소리도 경쾌해서 즐거웠다.


저만치 물러앉지 않으면 방망이에 얻어맞는다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가까이에서 얼씬댔다. 해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배워서 엄마 언니에게 당당히 자랑하고 싶었다.


혼자서 집을 보던 어느 날이었다. 다듬잇돌 위에 얌전히 덮여있는 무명 보자기를 젖혔다. 가즈런히 접혀있는 빨래위에 방망이질을 했다. 뭔가 되는 것 같아 신이나서 팔이 아플때까지 두들겼다. 아니 힘껏 두들겨 팼다는게 더 맞는 말 일 것이다.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7950_9463.png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힘은 드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감쪽같이 덮어놓고 시침이를 떼었다.


저녁 설거질을 마친 엄마와 언니가 다듬이질을 하려고 옷 을 다시 손질하다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치셨다.


옷감이 터져버렸으니 이게 어쩐 일이냐며 난감해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면서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띄었다. 엄마가 은연중 눈치를 챘다.


밖으로 끌려나온 계집애는 얼마나 혼이날까? 겁에 질려있었다.


엄마의 나들이 모시치마가 칼로 벤것처럼 갈라져 있었다.(세상에 이럴수가...) 못쓰게 버려놓은 것이었다.


어쩐담. 크게 야단을 맞을줄 알았는데 엄마가 기가 막히다는 듯 츳츳 혀를 차며 차분히 웃기만 했다.


이담에 지겹도록 할 일인데 그렇게 하고 싶었어? 혼자소리로 말하며 다시 부드러워진 눈길로 어린 딸을 용서했다.


아무렇게나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불룩한 방망이 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엄마 나드리 옷을 못쓰게 버린게 너무나 미안했다. 커서 돈벌면 엄마 옷부터 해 드려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50년대 후반, 남자들도 쉽게 입을 수 없었던 제일모직 라벨이 찍힌 순모(純毛)로 어머니에게 두루마기를 해 드렸다. 기쁨에 들떠서 옷자랑 딸자랑을 했지만 아마도 십여년전 어린딸의 마음속 과제였음을 짐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달빛고운 초 겨울밤, 어디선가 또다닥 또다닥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댓돌밑에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져 청아한 메아리로 언제나 마음을 흔들었다.


어느때는 슬프게 또 어느때는 경쾌하게... 답을 알 수 없는 마력의 음율이었다.


시집살이 고되었던 옛 여인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다듬이질로 풀었을 것만 같다. 사나운 시어머니, 미운 시누이 옷들은 더 모질게 때리면서 서러움을 달래지 않았을까?.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낮 일은 바쁘기 때문에 다듬이질은 주로 밤에 많이했다.


검푸른 달빛속에 마주앉은 두 여인의 다듬이질 모습과 청아한 소리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며 예술이었다.


누가봐도 멋드러진 서정시가 한편 써 질것만 같은 한국적인 정서였다.


명주나 비단같은 고급 옷감은 홍두깨에 감아올려서 돌려가며 다듬었다. 더욱 곱게 살을 입히는 예사롭지 않은 지혜였다. 단단한 박달나무 홍두깨 소리는 더 가볍고 경쾌해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까지 느끼게 했다.


우리 여인들의 애환의 숨결이 담겨 대대로 이어져온 아릿함, 그러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음율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종전 후, 귀환치 못한 피난지에서의 일이었다. 우리의 생계는 어머니의 바느질로 시작되었다.


염색솥에서 바로 건져 검은 물이 줄줄 흐르는 마대를 한짐씩 지고와서 마루에 풀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더운김이 남아있는 그것을 빨랫줄에 널어 대충 말려서 축축할 때 손질을 해야했다.


꺼칠하고 투박한 마대가 다듬이돌 위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나면 제법 천 구실을 했다. 그 다듬이질 몫이 언니와 나 였다. 지어입을 옷감도, 사서 입을 옷도, 있을리 없는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그 천으로 마름개질을 해서 손틀로 몸빼바지를 수도없이 박아냈다. 수공업 몸빼바지 공장구실을 한거였다.

집 안은 온통 검은 물이 들었고 여자들 손이 몽땅 까매져서 밥하기가 민망했다. 그러나 깡수수밥 먹기도 어려운 때에 식구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렸을 적 고운 정서로 들었던 다듬이질의 청아한 음악은 거친 세파에 휘둘려 잊혀졌다. 그리도 하고 싶었던 일이 오직 팔 아프고 지치는 고달픈 작업일 뿐이었다.


다듬잇돌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건 지금까지 숙제로 남아있다. 아마 재수가 좋아 그 집 어딘가에서 찾아낸 거였을 것이다. 우리는 남유달리 반질하게 얌전한 제품을 만들수가 있어서 환영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언제나 일이 많아서 시샘을 받기도 했다.


등이 젖도록 물건을 져날랐던 뫼산이 아저씨는 돈을 알뜰히 모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북 평양에서 피난 내려온 홀아비가 큰 집을 사서 괜찮은 여인과 폼나게 결혼도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성공인가.

 

세태가 바뀌고 변해서 이제 다듬이질은 한낱 옛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들 세대가 그걸 경험한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리듬과 청아한 소리는 영원히 우리곁에서 사라질리가 없다.


그럼 그렇지, 예술로 승화해서 공연까지 하는 단체가 여러지역에 있는 것을 알게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여인들 수십명이 어우러져 다듬이질을 하는데 노동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정말로 예술적인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멋진 공연이었다. 우리만의 독특한 타악기로서의 손색없는 음율이 참으로 자랑할만 했다. 가슴이 뭉클하다.


다알리아 꽃이 고개숙이고 달빛 곱게 창틈으로 빗겨드는 초저녁, 어디선가 청아한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 귀를 기우려본다.


그러나 내 지난 시절을 몰고온 회오리 바람일 뿐, 그것은 한자락 추억이었다.


52959c1d908944a628ea8b58615a72c3_1614048014_3749.jpg
 


리커넥트 향초 자활 프로젝트 - “걱정 말아요, 저는 향기롭답니다”

댓글 0 | 조회 1,085 | 2021.08.10
향초 자활 프로젝트의 배경 - 빈민층과 사회 문제빈부격차 및 빈곤율의 증가는 가정폭력, 마약중독, 범죄율의 증가 등 많은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2015 기… 더보기

결국, ‘절실함’

댓글 0 | 조회 1,666 | 2021.08.10
요즘은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나 모두 올림픽 얘기뿐이다. 나 역시도 밤마다 감자칩과 맥주를 끼고 텔레비전 앞에서 올림픽을 관전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리고 다음… 더보기

한국은 좌측통행, 뉴질랜드는 우측통행 왜 나라마다 다를까요?

댓글 0 | 조회 3,065 | 2021.08.10
자동차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나라마다 자동차 운적석의 위치와 통행방향이 왜 다를까 라는 궁금증을 한번쯤은 가져 보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 궁… 더보기

계절, 시간과 관련된 오행 불균형

댓글 0 | 조회 1,277 | 2021.08.10
오행의 불균형에 따라, 계절과 시간에 따른 몸의 반응 또한 달라집니다.사시사철 계절을 보면 오행이 각각 지배하는 계절이 있습니다.봄은 목 기운이 지배하는 계절이고… 더보기

구강관리(口腔管理)

댓글 0 | 조회 1,870 | 2021.08.07
옛적에 할아버지가 사랑채에 계실 때는 저녁에 취침하시기 전에 며느리가 물 한 대접은 머리맡에 두고, 발치 쪽 방구석에는 요강(놋쇠, 양은, 사기 따위로 만든 작은… 더보기

레이저 거리 측정기의 사용

댓글 0 | 조회 1,976 | 2021.07.28
거리 측정기 이슈가 있고 저는 거리 측정기를 적극 추천합니다.예전에 기술이 없을 때는 눈으로 보고 쳤지만 지금은 다양한 거리측정용 광학 기기들이 나오면서 PGA투… 더보기

대동강 247킬로미터

댓글 0 | 조회 1,225 | 2021.07.28
시인 이문재1.4 후퇴 때 내려온평양고보 동창생 예닐곱한달에 한번 을지로우래옥에서 만나 냉면에 찬 소주그날따라대동강 을밀대 몰놀이고보 시절 얘기가 뜨거워져논어 도… 더보기

세대 간의 갈등

댓글 0 | 조회 1,524 | 2021.07.28
요즘 ‘라떼는’ 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여지는데 아마도 조선시대에도 전 세대는 앞 선 세대를 보면서 나 때는 안그랬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쯧쯧… 이라는 말을 했… 더보기

Study less, Study Smart -2편

댓글 0 | 조회 1,269 | 2021.07.28
지난 컬럼에서는 Marty 교수님의 학습지침 8계명 중 처음의 4가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최대한 간략하고 정확하게 교수님의 의중을 전달하려 했는데 얼마나 … 더보기

날씨와 관련된 오행 불균형

댓글 0 | 조회 1,172 | 2021.07.28
오행의 불균형에 따라, 날씨에 따른 몸의 반응도 달라집니다.심장이 항진된 분은 더운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여름이면 아주 질색을 하죠. 더울 때는 아예 아무것도 못… 더보기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댓글 0 | 조회 1,577 | 2021.07.28
둘째 산바라지를 위해 오클랜드에 온 덕분에 오클랜드의 유명한 명소들을 관광하게 되었다. 코리아 포스트 편집장과 사돈들 덕분에 제대로 오클랜드를 여행하게 되었으며,… 더보기

‘호의’라 쓰고 ‘오지랖’이라 읽는다

댓글 0 | 조회 1,479 | 2021.07.28
속상한 일이 생겼다.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남매의 어머니와 작은(?) 마찰이 생겨 수업을 중단하고 환불을 해준 것. 시작의 발단은 어머니가 내게 다른 학생을 소개… 더보기

북섬 최고의 등대 Castle point Lighthouse

댓글 0 | 조회 1,517 | 2021.07.28
162M 높이의 성벽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캐슬포인트는북섬 남부의 마스터톤에서 동해안으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아름다운 등대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더보기

콩 심은데 콩 나고

댓글 0 | 조회 1,412 | 2021.07.28
■ 반 숙자미명(未明)이다. 가만히 뜨락을 내려 밭으로 나선다. 우리집 과수원은 뽀얀 안개 숲을 헤엄쳐 나오느라 수런수런하고 있다. 가슴을 펴고 폐부 깊숙이 싱그… 더보기

구불구불 재촉하지 않는 길, 불갑사

댓글 0 | 조회 1,046 | 2021.07.28
▲ 불갑사 꽃무릇영광 칠산갯길 5코스에 있는 불갑사의 생태 탐방로는 빼어난 풍광을 자아낸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고 세운 절로 부처 불(佛)… 더보기

자동차 교통사고 보험처리에 대하여 잘못 알려진 상식!

댓글 0 | 조회 3,178 | 2021.07.28
이번회에는 많은 운전자가 교통사고 발생시 있을 수 있는 자동차 보험처리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알아보겠습니다. 교통사고는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미리 사고처리 상식… 더보기

매일 편안하게 누워서 15분 요가, 꿀잠 보장!

댓글 0 | 조회 1,219 | 2021.07.28
요가는 하루 중 언제하면 가장 좋을까요? 라고 물어보시면 저의 대답은 주저없이 ‘지금’ 입니다.내 몸이 힐링을 원할 때 요가가 떠오르고 그때그때 바로 몸을 가볍게… 더보기

사랑을 줄 때 사랑을 받는다

댓글 0 | 조회 1,241 | 2021.07.27
리커넥트는 2019년도에 라누이 방과 후 프로그램을 Ranui Library에서 시작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진행하였고, 현재 2021…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4)

댓글 0 | 조회 1,544 | 2021.07.27
다양성은 어디에?이번 역사교육 커리큘럼 초안에 대한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전문가 어드바이스 패널 중에 유일하게 아시안으로 참가한 … 더보기

당신의 세상은 공정하십니까?

댓글 0 | 조회 1,223 | 2021.07.27
한국에서는 요즘 “공정” 이라는 단어가 뜨겁다. 고도화 된 자본주의가 잉태한 심화된 불평등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필연적으로 갈망 할 수 밖에 없는 “공정한 세상… 더보기

어려운 시기 여러분의 자금 운용을 견실하게 유지

댓글 0 | 조회 1,407 | 2021.07.27
COVID가 여러분 비지니스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소규모 비지니스는 어려운 경제 시기에 특히 더 취약합니다. 건강한 자금 운용을 위한 전략은 여러분의 비지니스… 더보기

빈혈 때문에 자주 어지러우신 가요?

댓글 0 | 조회 1,515 | 2021.07.27
인체내의 혈액량이 부족했을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질병이 빈혈이다. 대체적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쉽게 피로 해지거나 핑 도는 듯한 어지러움이 수시로 나타난다. 특히… 더보기

꿈을 향해 걷는 해질녁 사람들

댓글 0 | 조회 1,367 | 2021.07.27
이 축축하고 음산한 겨울철에 배 나들이를 하려는 사람이 몇 사람들이나 있을까? 배가 텅텅비어 아마 심심할지도 모를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일찍이 가봐야 바닷바람에 … 더보기

식은 수제비를 먹고

댓글 0 | 조회 1,273 | 2021.07.27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저녁으로 먹고 남아밤새 식은 수제비를데운다는 아내를 말려아침으로 먹는다식어가는 알갱이들은이제는 헤어지지 말자밤새 찬 몸 서로 안고 있었을 거… 더보기

7.16 개정에 따른 워크비자신청 가이드

댓글 0 | 조회 4,399 | 2021.07.21
코로나-19(이하, 코로나)의 영향은 마치 뉴질랜드의 겨울날씨 같아요. 햇볕이 쨍하게 나오는 듯 하다가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집니다. 그냥, 이 계절의 날씨가 그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