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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언니와 조카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한국에 계속 사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나을지, 그리고 만일 다시 돌아간다면 조카가 몇 살 때 가는 것이 바람직할지 등이 주된 내용이다.
나는 “뉴질랜드”에 관한 문제라면 조금 객관적 판단을 잃는 단점이 있다. 무조건 뉴질랜드는 덮어놓고 좋다고 하니. 이런 내가 오늘은 언니한테 한 방 먹었다.
▲ 국민당 William Wood 후보
최근 교육 환경을 둘러싼 우리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의 시작은 불과 일주일 전에 치러진 뉴질랜드의 총선이었다. 비록 선거는 노동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선거에 출마한 국민당의 William Wood 후보였다. 당락과 상관없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도전을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뉴질랜드이기에 그런 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대학입학 대신 선거 출마를 선택한 그의 용기도 대단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도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나라가 내겐 더 대단했다.
한국은 무조건 대학을 나온 후에야 어떤 것이라도 해볼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환경이다. 한국만큼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자신을 PR하는 가장 효과 좋은 수단이자, 연봉협상에서도 업무 능력과는 상관없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다. 그 종이 쪼가리(?)를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학원에 다니며 대학을 나오면 적당히 회사에 취업하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요즘 어린아이들의 꿈은 공무원이나 건물주다. 난 적어도 내 조카가 ‘공무원이 꿈인 나라’에서 틀에 박힌 교육코스를 밞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므로 내 결론은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자유롭게 꿈꿔볼 수 있는 뉴질랜드에서 교육을 받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교육 환경” 때문에 언니는 너무 이른 뉴질랜드행은 지양하고 싶어 한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남들과는 너무 다른 꿈을 꾸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의 아이는 한국의 교육열에 너무 치이진 않으면서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은 갔으면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아닐까. 대학을 나와야지만 남들에게 무시 안 당하고 산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언니는 따져 묻는다.
“그러는 넌 왜 한국에 나와서 가장 먼저 대학 편입을 알아봤고, 대학에 들어가서 기어코 졸업장을 땄니?”
말문이 막혔다. 이번 열띤 토론은 내 패배였다. 아마도 난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견이 없을 정도의 외국 사상과 정작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수라고 여길 정도의 한국 정서를 모두 갖췄나 보다.
항상 뉴질랜드는 아이들 교육을 위한 최적의 나라고, 한국 교육은 나중에 남는 거 없는 주입식 교육이 전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 나 역시도 두 나라의 교육을 받았고, 분명 한국 교육의 좋은 영향도 받았을 텐데 말이다.
언니도 나도 뉴질랜드 정서와 한국 정서를 모두 가지고 있다 보니 아마 조카는 조금 피곤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뉴질랜드 교육의 좋은 점과 한국 교육의 좋은 점을 선별해 조카에게 강요할 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