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한국에서 소포가 날아왔다. 그 안에는 책들이 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글자들로 엮어진 책들이 세 권이나 된다. 코로나 사태로 힘겹게 여행을 한 세 권의 책들이 얌전하게 들어 있는 박스를 열면서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작년에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여인이 갑상선 암 수술을 마치고 휴양을 위해 파미에 왔는데, 영어공부에 재미를 붙여서 골프도 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하다가 갔다.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었는데, 어제 그 책들이 도착했다.
하늘 길이 열리니 책들도 날개를 달았다.
몇 달 전에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나서부터 한국 드라마에 중독이 되었었다. 오래 전에 한국 드라마 보기를 끊었었던 지라 그저 짧은 영화들만 보려고 했었는데,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시간만 나면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더 킹덤’부터 시작해서 없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드라마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자제를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드라마들이 나를 꼬시고 있던지, 그 꼬임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부터 한 달이 걸려 나에게 도착한 다섯 권의 책 덕분에 드라마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만 해도 서점에서 한국 책을 입맛대로 다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늦어도 열흘이면 도착한다던 책이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도착하지 않아서 실종신고까지 했다던데, 직접 올 수가 없어서 일본을 거쳐서 오느라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나 보다.
어쨌건 그 책들 덕분에 드라마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세 권의 책이 더 도착한 것이다.
갑자기 책 풍년이 났다. 오늘 동생과의 카카오 톡 중에 이번에 도착한 책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도 한 권을 보내겠단다.
갑자기 이게 웬 횡재인지 모르겠다. 내가 읽고 싶은 책들마다 이렇게들 다 보내주고 있으니....... 이것뿐인가? 10월 중에 출판을 할 친구의 시집도 기다리고 있다. 그 시집은 언니와 딸의 그림과 사진작품들이 함께 실려 편집이 된 특별한 시집으로 기대가 되는 책이다.
이렇듯 책 풍년이 들었지만 예전처럼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기가 힘이 든다. 안경을 새로 맞춰야만 할 거 같다. 5년 전에 한국에서 맞춘 안경인데 그동안 시력이 좀 달라진 것만 같다.
고도근시인 내 눈은 아주 비싼 눈이다. 하지만 돈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좋은 세월 만나서 당달봉사로 지내지 않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그저 지금 이 시대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참 운이 좋다. 그만큼 복도 많다. 딸만 셋인 엄마에, 튼튼한 며느리도 아니니, 옛날 같았으면 벌써 소박맞았을 거다. 시대를 잘 타고 나서 소박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다닐 팔자가 되었으니, 그 얼마나 복이 많은가?
더군다나 영어권의 나라에 살면서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실컷 볼 수 있고, 한글로 된 책을 마음껏 읽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요즘 난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한국어를 잘하니 부끄럽지 않다. 한글이 우리나라 언어라는 것 또한 무척 자랑스럽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월 9일 힌글날이구나! 세종대왕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파머스톤노스 한글학교가 세워진 때가 생각이 난다. 우리 가족이 파미에 온지 3년 될 무렵이었는데, 그때 우리 부부는 런치바를 운영하느라 아이들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막내의 한국어 발음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기도 전에 뉴질랜드로 왔는데, 엄마와 대화를 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다가, 언니들이 있다고 해도 부모가 없을 땐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었으니 한국어를 빠르게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한글학교가 세워져서 아이를 입학 시키게 되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나 나 또한 한글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한글 공부에 힘썼다. 그러나 3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3년의 휴교가 있었지만, 다시 문을 열게 되어 지금껏 잘 운영되고 있기에 도움을 못주면서도 그저 바라보는 마음이 흡족하기만 하다.
총명한 사람은 반나절에 한글을 깨우칠 것이고 어리석은 자도 일주일 이내에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세종대왕의 말씀과 달리, 영어권에서 사는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3년이란 기간의 공부가 헛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한글학교는 그저 열의만으로 버텨왔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막내는 한글을 배울 수가 있었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한글을 사용하면서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지낸다.
몇 년 전에 막내가 둘째와 함께 한국 방문을 하여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고궁과 사찰들에 마음이 꽂혔었나 보다. 한국 사찰 탐사 여행을 하려고 1년 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를 해두었었는데, 그만 코로나 사태가 터져버렸으니.......
죽어도 간다고 고집을 부리는 막내의 마음을 돌리느라 많이 힘들었다. 늘 귀엽게만 생각하여 자신의 뜻대로 해주었던 엄마의 반대가 막내에게는 충격이었던 거 같다. 결국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두었는데, 여러모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코로나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고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급작스럽게 늘어가고 있다.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한 한국. 선진국대열에 선 한국. 한국이 이렇게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덴, 한글의 힘이 크다고 본다. 글을 못 읽는 국민이 전체의 1%밖에 안 된다고 하니, 한글이 과학적인 언어이면서도 익히기에 얼마나 쉬운 글이던가?
모든 국민이 글을 읽을 줄 아니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로 세계로 뻗어나가니 빠르게 발전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육열이 지나칠 정도로 높은 한국 부모들이지만 책을 가까이하지는 않는 거 같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꼴찌에 가깝다고 하니, 한글의 위대성을 인정하는 만큼 자식들이 책을 통해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런 말 하는 나 역시도 힘든 외국 생활 핑계로 막내를 너무 방치하면서 키운 것은 아닐지 반성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막내 스스로 한국 책 읽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미안해, 늦둥이 막내야! 하지만 늦지 않았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