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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 야구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의 말이다.
야구에서는 특별히 잘 들어맞는다.
당신이 응원하는 팀의 9회 말 마지막 공격. 2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 기대했던 4번 5번 타자가 삼진과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시합이 끝나면 한꺼번에 몰려 나갈 관중들로 인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이 혼잡해진다. 혼잡해 지기 전에 지하철을 타려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당신이 야구장 출구를 막 나온 뒤에 야구장에서 함성이 터진다. 이어서 계속되는 함성. 당신은 ‘뭔가?’ 궁금하지만, 별 것 아니겠거니, ‘그러다가 말겠지’, 하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향한다. 아직 널찍한 지하철의 빈자리에 엉덩이를 내려 놓고 자신의 신속한 판단을 칭찬하며 주머니에서 핸펀을 꺼낸 순간, 카톡에 올라와 있는 수 많은 톡들을 본다. ‘이게 뭐지?’하고 열어보면 당신이 금방 떠나 온 야구장에서 일어났던 대 역전 드라마를 전하는 톡으로 당신이 가입한 모든 단톡방들이 넘쳐나고 있다.
당신이 야구장을 벗어날 때 들었던 함성은 6번 타자가 친 평범한 내야 땅볼이 유격수의 악송구로 타자를 2루까지 보낼 때 난 것이었다. 이어서 7번 타자의 내야 안타, 그리고 그 다음 타석에 들어선 대타가 우중간을 넘기는 홈런으로, 당신이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이 야구장에서는 3대 2 대 역전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날 일찍 회사를 퇴근하고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난 1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 희망으로 저녁 내내 야구장에 앉아 있었던 당신은 정작 당신 팀이 승리를 거두는 그 중요한 시간에는 실망감과 우울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1달러 짜리 와이셔츠를 미국에 갖다파는 것으로 시작해서 세계 곳곳에 대우 깃발을 휘날린 기업 제국을 건설했던 분이다. 지금도 뉴질랜드 가전제품 상점에는 동남아인지, 동유럽인지, 대우가 세우거나 합병해서 대우 이름을 달아줬던 현지 기업체가 만들어 내는 가전제품이 팔리고 있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와이셔츠 제조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던 대우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고 김우중 회장의 특출한 경영 능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대우가 수출하는 물품의 선적을 위해서 부산에 내려가는 직원에게 김우중 회장이 꼭 지시하는 사항이 하나 있었다. ‘우리 물품이 배에 실렸다고 일이 끝난 줄 알고 그 자리를 떠나면 안된다. 그 배가 출항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라.’ 이게 무슨 대단한 경영 노하우냐고?
70년대 대한민국은 수출 물량은 늘어나는데 해운 화물 수송 능력은 그에 맞춰서 늘어나지 못했던 때였다. 그래서 해운 운임이 지금과 같았다. 대졸 신입 사원 월급이 지금의 20분의 1에 불과했을 때였는데, 해운 운임이 지금과 같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무지하게 비쌌다는 말이다. 그 당시 해운 회사 직원들은 매일 저녁 고급 술집에서 회식을 했다는 것이 그 업계의 전설이다. 그 해운 회사 직원들이 고급 술집 회식을 하는 비용은 회사 돈도 있었지만, 수출 물량을 긴급하게 운송해야 하는 수출품 제조업체의 직원들이 찔러 준 돈도 있었다. 수출업체 직원들은 항구에 늦게 도착한 자기 회사의 수출품을 빨리 실어 보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썼다. 가장 빠른 방법은 내일 아침에 떠나는 배에 싣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배에는 이미 수출품이 가득 실려있다. 어떻게 하면 그 배에 오늘 저녁에 부산에 도착한 자기 회사 물품을 실을 수 있을까? 선적 한도를 넘어서 과적하는 것은 해운회사가 동의하지 않는다. 사고 위험이 높을 뿐 아니라, 만약 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할 수 있다. 해운회사는 그런 위험을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 화물이 갈 곳은 자기 회사 밖에 없다. 이 배에 태워주지 않으면 다음 배를 타겠지. 그러니 해운회사가 갑이고 수출회사는 을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수출회사의 선적 담당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만 하더라도 비싼 요금을 물리는 장거리 시외전화로 본사에 전화해서, ‘이미 늦었다. 다음 배를 타야한다. 미국 바이어에게 TT로 알려라’고 보고하고 자갈치 시장에 회나 먹으러 가야할까? 그랬다가는 당장 목이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혹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불이익 감수’라고 하면 점잖게 들린다. 문명적으로 들린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의 기업 세계는 그렇게 점잖고 문명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그룹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에게 구둣발로 무릎 조인트를 날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선적에 실패한 일개 수출 담당직원이 겪게 될 고난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상에 맡긴다.
그런 고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는 선적 담당 직원이 내일 아침 출발하는 배가 만선인 사실을 알고 조용히 물러나거나 포기하겠는가?
대한민국은 ‘안되면 되게하라’의 나라,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였다. 적어도 20세기에는. 21세기도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나라에서 성장하는 수출기업체의 선적 담당 직원이 내일 아침 출항하는 배에 자기 회사 짐을 실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포기하겠는가? 유능한 직원에게 그런 상황은 그냥 상수다. 변수도 아니고, 항상 존재하는 상수인 것이다. 정복하려는 산 정상 바로 밑에는 언제나 깔딱고개가 있는 것처럼.
그 상황을 유능한 선적담당 직원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미 실려있는 다른 회사의 짐을 도로 내리게하고, 그렇게 해서 비운 공간에 자기 회사의 짐을 싣는 것이다. 물론 기다렸다가 다음 배에 싣는 것보다 돈은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렇게 더 들어가는 돈은 상품이 미국 도착 기일을 놓쳐서 회사가 입게 되는 손해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다. 다른 회사의 짐을 내리고 자기 회사의 짐을 실으려면 거기에 소요되는 인건비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해운회사의 직원들은 매일 저녁 고급 식당과 술집에서 회식을 하느라고 건강을 해쳐야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김우중 회장은 부산으로 출장가는 직원에게, 자기 회사 화물이 배에 선적된 것으로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짐이 한 밤중에 도로 내려지는 일이 없도록 배가 떠날 때까지 부두에서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세상 많은 일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본론인 2부는 다음 주에 게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