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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내와 함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1층 소재 메가박스에서 영화 <소풍>(러닝타임 114분)을 관람했다. 지난 2월 7일 개봉한 <소풍>은 80대를 주인공으로 한 노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은 영화로 친숙한 원로배우 나문희(1941년生), 김영옥(1937년生), 박근형(1940년生)이 출연한다. 특히 가수 임영웅의 자작곡(自作曲) ‘모래 알갱이’가 <소풍>의 삽입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문희와 김영옥 주연의 영화 <소풍>이 제44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의 스프링 쇼케이스에 상영한다. 하와이 국제영화제는 매년 가을 하와이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그동안 다양한 한국영화가 조청돼 주목받았다. 이번 스프링 쇼케이스는 하와이 국제영화제 개막 전 봄에 아시아와 북미 지역에서 두각을 보인 작품들을 쇼케이스(showcase) 형식으로 상영하는 자리다.
하와이 국제영화제 측은 “<소풍>은 우정과 가족 그리고 존엄사(尊嚴死)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로 세대를 아울러 깊은 울림을 주어 한국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며 “모든 나이대의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화 <소풍>의 줄거리는 60년 만에 찾아간 고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은심(나문희)은 최근 돌아가신 엄마를 꿈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온 오랜 친구이자 사돈 지간인 금순(김영옥)이가 은심에게 함께 고향 남해로 가자고 제안한다.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나 고향에서 은심은 우연히 예전에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나게 된다.
은심은 잊고 지내던 추억들을 하나둘씩 회상하게 된다. 이후 은심과 금순, 그리고 태호는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나누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은심과 태호는 서로에게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꺼야”라는 말을 하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오랜 친구들이 60년 만에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 16살의 추억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과 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들이 다시 만나 어린 시절의 우정을 여전히 간직한 소꿉친구로 등장하여 가슴이 뭉클함을 자아낸다. 또한 노년의 우정과 사랑, 인생의 회한(悔恨)을 넘어 죽음을 대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이야기다. 인간은 웰빙(well-being)을 추구하고, 웰다잉(well-dying)을 소망한다.
일본에서 태어난 천상병은 유년시절을 거의 일본에서 보냈다. 1945년 광복이 이루어지면서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마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통역관으로 근무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인 ‘처녀’지를 발간했다.
1967년 천상병은 독일 동(東)베를린 공작단 사건(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원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 사건은 천상병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말았다.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전기고문을 당하는 바람에 심신(心身)이 크게 병들었다. 당시의 후유증은 천상병을 평생 동안 괴롭혔다.
1970년,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시인이었던 김관식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김관식의 입관>을 발표했다. 또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 <귀천>이 ‘창작과비평’지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천상병은 유독 죽음을 소재로 하는 시를 많이 발표했는데, 동백림 사건 당시에 받았던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87세 배우 김영옥씨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소풍>이 존엄사(尊嚴死)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100세 시대’라지만 건강을 잃고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때의 불행은 대처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존엄사가 허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5일에 93세의 드리스 판 아흐트(Dries van Agt) 전 네덜란드 총리(제46대, 1977-1982)와 외제니 여사 부부의 동반 안락사(安樂死) 소식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자살을 금기시하는 가톨릭 신자였는데도 “너무 아팠다.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동반 안락사를 택하여 하늘나라로 떠났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락한 국가다. 2022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8720명이며, 이 가운데 58명이 동반 안락사를 했다.
판 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 행사에서 뇌졸중(腦卒中)으로 쓰러진 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판 아흐트 전 총리가 생전 설립한 ‘권리포럼연구소’는 학창 시절 만나 70년간 함께 산 동갑내기 부부가 자택에서 손을 잡은 채 숨졌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세 자녀가 있다. 네덜란드 왕실은 “그는 격동의 시기에 행정적 책임을 맡았고, 다양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미국 일부 주(州)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네덜란드는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치료의 가망이 없고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소망을 밝히는 등의 조건 아래에서 안락사를 실시하고 있다. 안락사를 뜻하는 유타나시아(euthanasia) 어원은 ‘좋다’라는 에우(eu)와 죽음을 뜻하는 타나토스(thanatos)가 결합하여 ‘좋은 죽음’(아름다운 죽음)을 뜻한다.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마지막을 맞겠다며 관련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은 300여 명이며, 이미 10여 명이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유례없는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와 맞물려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대학병원 윤영호 교수팀이 2021년 3-4월에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락사•의사조력자살 합법화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우 동의한다(61.9%), 동의한다(14.4%), 동의하지 않는다(21.7%),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2%)로 나타났다.
안락사•조력존엄사•존엄사의 주요 차이는 ‘안락사(安樂死)’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사망에 이르도록 약물 등을 투약하는 것이며,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란 의료진에게 약물 처방을 안내받은 후 환자 스스로 결정한다. 존엄사(尊嚴死)란 환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하는 것이다.
2018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 외래어 표기: well dying law)이 시행되고 만 6년이 지난 현재, 전국 200만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허용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미리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지 않았거나 동의할 가족이 없는 1인 가구와 무연고자는 뜻대로 죽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회에선 조력 존엄사, 즉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연명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죽음’을 뜻하는 안락사, 그러나 안락사 허용은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상속, 보험사기 등 범죄에 악용될 위험, 불치병에 대한 오진 가능성 등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이에 따른 차별이 적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서구 선진국의 안락사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즉 노인(혹은 장애인)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고,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안락사는 가족과 사회가 노인의 등을 떠미는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소풍>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Plan 75)’는 75세를 넘긴 노인의 안락사가 제도화된 초고령 사회의 디스토피아(dystopia, 유토피아의 반대말, anti-utopia)를 그렸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78세 미치는 생계수단을 잃고, 친구의 고독사(孤獨死)를 목격하고는 안락사를 신청한다. 사실상 강제된 죽음의 값은 준비금 명목의 100만원이 전부이다.
플랜75 영화 초반, 노인들을 무차별 살상한 청년은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현재 일본 사회가 맞닥뜨린 초고령 사회의 현실과 고민이 녹아 있어 섬뜩하게 느껴진다.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안락사는 결국 가난한 노인들에 대한 합법적 인구 말살(抹殺)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도 하다.
자신이 귀하게 생각했던 유품들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남겨질 의미가 없는 물건들은 소각 및 파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후(死後) 유족들이 유산으로 분쟁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므로 합당한 방식으로 분란이 없도록 유산 분배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유언서(遺言書)를 작성한다. 임종의 방식과 장례 방식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이상적이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삶은 허락했지만 죽음을 피할 능력은 주지 않았으므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살아온 여정은 다르지만 종국에는 누구나 절대 평등의 순간인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사람의 바람은 인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맞이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사람의 일생이다. 또한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즉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나의 삶에 무엇을 담으며 살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품위 있는 삶이 곧 품위 있는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