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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척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난 늘 뉴질랜드에 대한 향수병을 달고 산다. 뉴질랜드에 관련된 것이 예능 프로그램 등의 방송에라도 나오면 반드시 본방을 챙겨보고, 뉴질랜드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뜨면 반드시 클릭해서 읽어본다. 특히 요즘은 뉴질랜드가 코로나 종식 선언을 코앞에 뒀다는 뉴스가 열일 한국에서 보도되고 있는데 참 반갑고 자랑스럽다. 이뿐 아니라 잠실에 “뉴질랜드스토리”라는 유명 샌드위치 전문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걸음에 달려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주인아주머니께 혹시 뉴질랜드에서 살다 오셨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심지어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과 특성상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학회가 종종 있었는데, 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그 후에는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는 형식이었다. 영어학 전공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학회였던 만큼 참석자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고, 다들 열띤 토론을 하는 동안 난 여느 때와 같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나?’ 라는 생각에 시계만 보고 있었다. 그때 발표자를 향한 한 여성의 질문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질문이 너무 훌륭해서도 아니고, 나 역시 궁금해 했던 것을 물어봐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영어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녀의 영어 발음과 영어 악센트 때문이었다. 내게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뉴질랜드 영어였다. 너무 넓은 공간에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도 학회가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한국에서 뉴질랜드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이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뉴질랜드인이죠? 뉴질랜드 영어를 쓰시길래 바로 알았어요. 저도 뉴질랜드에 살다 왔어요. 한국에는 언제, 무슨 이유로 왔어요? 저는 뉴질랜드에 살 때 OOO 동네에 살았어요. 거기 아세요? 뉴질랜드에는 언제 다시 돌아가세요?”
단지 내가 아는 뉴질랜드 영어로 고작 몇 마디 나누는 게 다지만 어떤 형태로든 뉴질랜드를 접하면 한동안은 향수병이 조금은 사그라든다.
사실 나만 향수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그 나라에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과 한국에 와서도 종종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는데, 이들도 하나같이 뉴질랜드를 그리워한다. 아마 우리가 자주 어울리는 이유 또한 이런 향수병을 달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에 가본 적도 없고, 심지어 뉴질랜드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친구를 붙잡고 주구장창 뉴질랜드에 대한 얘기를 쏟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뉴질랜드를 잘 알고, 나만큼이나 그곳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그때 그 음식점은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그 선생님은 아직 그 학교에 계실까?”, “거기 풍경 진짜 멋졌는데...” 등의 수다를 떨고 나면 그리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그런데 나와 함께 뉴질랜드 향수병을 제일 심하게 앓던 친구가 결혼 후, 육아전쟁에 뛰어들면서 우리의 만남도 예전보다 좀 뜸해질 무렵, 이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의 아기한테 뉴질랜드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며 뉴질랜드에서 제조한 분유의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대형마트에서 원산지 뉴질랜드라고 써진 분유를 발견하고는 바로 구매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내 요즘 근황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보내줬다. “나 요즘 뉴질랜드 앵커버터로 만든 빵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는 글과 함께.
우리는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법대로 뉴질랜드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