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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용장골 ~ 연화대좌 순례
용장골에서
설잠 스님(매월당 김시습)
용장골 골 깊으니 茸長山洞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不見有人來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細雨移溪竹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斜風護野梅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小窓眠共鹿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枯椅坐同灰
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不覺茅簷畔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庭花落又開
경주 남산 깊은 골짜기,
굽이굽이 이어진 숲길 따라 발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과 맞닿은 듯 그 속살을 드러내는 공간이 있습니다.
천년 세월 뭇 중생을 품어온 곳, 용장사입니다.
무수한 세월이 흘러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원형 자연석을 기단 삼아 우뚝 선 삼층석탑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암벽에 새겨진 마애부처님은 변함없이 인자한 미소로
중생의 마음들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문인 매월당 김시습이
설잠 스님이 되어 7년 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고요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벗 삼아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했습니다.
그가 깃든 시기 용장사는 ‘금오산실’로 지칭되기도 했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나긴 세월, 이 자비로운 공간에
마음 기댄 이가 비단 설잠 스님뿐이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복잡하고 혼곤한 세상과 달리
부처님 법향 품은 용장골 깊은 골짜기는
담박하고 자유롭고 또 자비로웠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