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새로 태어난 이후로 나는 새로운 인연들을 엮게 되었다. 두 딸들의 짝들과 그들의 부모님과의 소중한 만남이다. 사주에 늦복이 많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늦복이 자식 복이라고도 하던데 자식 덕분에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되었으니 자식 복 또한 많은 거 같아 보인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어디 좋고 나쁨을 따질 수가 있겠느냐 만은 화상 통화를 통한 첫째 짝의 부모님들과 직접 만나 뵌 둘째 짝의 부모님들 모두 다 내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품성의 소유자들이시니, ‘좋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수학 과외 선생을 하면서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접하면서 살아 왔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가르쳤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들 부모의 복사판들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보다 훨씬 낫기도 하지만, 그건 이 세상의 주인공이 그들이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큰애는 큰애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외모부터 여러모로 자신과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우주의 신비에 감탄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멋진 인연까지 엮어 주었으니 감탄을 넘어서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남남이 만나서 한 가족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도 많을 것이며 갈등 없이 산다는 것은 그저 바람일 뿐. 이런저런 사건 속에 컬러필름은 흑백필름으로 색이 바래갈 것이니 빛바랜 필름이 나름의 멋을 풍길 날이 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런 기대가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이만한 욕심은 부려봄직도 할 만하지 않은가.
“어머, 참 고우세요.” 어설픈 백발인 내 모습을 보고 귀염상의 예쁜 그녀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나이에 비하여 무척 젊어 보이는 부부와 달리 우리 부부는 백발이 성성하다. 유전적으로 80이 되기 전까지 흰머리가 전혀 없다는 집안의 남편분과 함께 그 부부는 60을 넘긴 나이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갑인 우리 부부보다 몇 달 전에 태어난 그 부부는 만으로는 모두 다 같은 나이였다. 그런 부분이 네 사람을 더욱더 친근하게 만들었겠지만, 오랜 객지생활 속에 나름대로 터득한 긍정적인 사고가 상대를 더 곱게 본 것도 같다.
큰애 짝의 부모님과 인터넷으로 상견례를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우주 끝에 떨어져 있어도 알아보게 되나 보다.
우리 부부를 배려해서 오클랜드에서 파미로 찾아와 상견례를 한 것도 고마운데, 우리 부부의 인상까지 좋게 봐주셨으니,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임에 틀림없다. 두 분 모두 다 한국에서 상담원 자격증을 취득한 분이시라니 자기완성에 대한 숙고가 남달랐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와 사돈지간이 될 분들이 모두 다 상담원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니, 이 또한 내 복이 아니던가? 자식들의 복인 건 당연한 일인 것이고.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아들과 내 딸한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조심성이 많은 말투셨다. 나도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니 여러모로 조심스러워지던데, 그 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도착한 고도원의 아침 편지, 고창영의 시집《등을 밀어 준 사람》에 실린 시 <자식과 부모 사이>를 읽으니 부모의 마음과 자식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거”
“됐어요.”
“가져가.”
“있어요.”
“그래도...”
“아유 참”
“뭐 사 먹어 객지에서 굶지 말고 자아”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독립해서 살아간다. 우리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 보니, 요즘 한국 추세도 비슷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니트족이 있다고 하지만 다양성의 세상에 뭔들 없겠는가.
내가 제 2의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성인이 된 자식들에 대한 부담감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니, 그 얼마나 좋은 세상이 온 것인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가 절로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들한테 더욱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좋지만, 누구에게나 다 돈이 풍족할 수는 없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보답을 제대로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힘들게 돈을 벌면서도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게 부모들.
그렇다고 자식에게 자신의 헌신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자식을 낳은 것도 그들의 선택이었으며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준 행복이 지대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자식은 그저 감사한 존재인 것이다. 전생의 원수가 현생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지난 시절의 대중의식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나 현대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생각을 현실로 보여준다. 이렇듯 좋은 세상의 주인공들은 자식들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덤으로 우리네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세상인 요즘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식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놓아 버리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것이 어떠리.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사는 것도 좋지만, 자식들의 사랑이 다리 되어 얻은 인연을 축복으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