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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작가가 2021년 7월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 반수연의 단편소설 ‘조각들’(‘문학인’ 2024년 여름호)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작품은 밴쿠버에 가까스로 뿌리를 내린 이민자 주인공이 이민 생활과 정착 과정에서 겪는 애환과 스산한 마음, 미묘한 인종차별 체험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주인공과 딸 지니를 둘러싼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세대 차와 문화적 감각의 차이도 이 작품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소설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살수록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단 하나 안다고 믿었던 건 내 아이였다”는 환상이 산산이 깨지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 끝에 등장하는 “다만 알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공간을 한 뼘쯤 벌려두고 싶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은 딸이라는 자신과 가까운 존재는 물론이려니와, 나아가 노숙자나 성소수자 등의 타자에 대한 편견에서 탈피하겠다는 다짐을 상징한다. ‘조각들’ 곳곳에서 한국어로 표현되는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마음의 결을 만날 수 있다. 캐나다에서 고단한 이민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한국문학 책을 꾸준히 읽고, 한국어 문장을 끊임없이 가다듬었기에 가능한 결실이다.
최근 급격한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해외 한인들의 역이민(귀국)을 유도하는 정책이 회자되곤 한다. 늘 조국을 그리며 이국에서 한국어(문학)의 아름다움을 위해 헌신했던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학나눔 철회 같은 상처를 겪은 작가에게 과연 조국에 기꺼이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존재할까?
도종환 시인은 이즈음 출간된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에서 “여전히 푸르게 다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복수다”라고 읊었다. 반수연 작가는 한국 문화계의 편협한 기준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배제되는 과정을 통과하면서도 ‘조각들’이라는 여전히 아름답고 뜻깊은 작품을 펼쳐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깊은 문학적인 복수가 아닌가.
이제 한국 사회는 세계 곳곳의 해외 한인들을 비롯해, 외국 국적의 다양한 이주민과 유학생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태어날 때부터 모어가 한국어가 아니었던 사람들, 즉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사람들과 유학생이 쓴 한국어 문학작품이 대폭 늘어나지 않을까.
다행히 최근에 올려진 올해 문학나눔 공지사항을 보니, 자격 조건에 ‘한국 국적’이라는 문구가 빠졌다. 이제 해외 한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작품도 전국의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반수연이라는 작가가 지닌 문학적 역량도 제도의 뜻깊은 변화를 이끈 요인의 하나일 테다. 하지만 문학나눔 지원 대상 종수의 대폭 축소라는 개악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이런 문화정책의 퇴행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