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법과 일상생활 – 부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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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법과 일상생활 – 부부관계

0 개 1,233 강승민

이번 칼럼을 비롯하여 앞으로 서너번에 걸쳐 뉴질랜드법이 특정 인간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 일상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부부관계로 정했습니다. 아무리 1인가족이 늘어나는 현대사회라고 해도 뉴질랜드에 사시면서 부부관계 혹은 그 비슷한 관계를 한번이라도 맺어보셨거나 맺게 되실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자를 신청해보신 분들도 ‘genuine and stable relationship’ 증명 관련해서 어느정도 법적 요건을 경험해보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 법이 부부관계를 바라보는 특징을 (특히 한국 법과 비교하여)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많이들 아시다시피 뉴질랜드에서는 이성간의 결혼 뿐만 아니라 동성간의 결혼 (civil union), 그리고 3년 이상된 이성/동성 구분 없는 사실혼 (de facto relationship)까지 동등하게 인정을 합니다. 심지어는 최근에는 재산분할 관련하여 ‘삼각관계’ 까지 (일부다처제처럼 한 남자와 두 여자가 같이 산 관계) 해당이 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삼각관계 그 자체를 동등하게 인정한건 아니지만 두명씩 세번으로 나눠서 재산분할이 가능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즉 이 칼럼에서 계속 ‘부부관계’라는 표현을 써 왔지만 이것은 딱히 우리말로 위 모든 관계들을 적절히 포괄하면서도 친숙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 뿐이라, 제가 부부라고 지칭해도 위 관계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쓴다고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도 최근에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관련)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는 것을 떠나 세계적인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둘째, 부부관계 성립 및 해제가 쉽습니다. 관계 성립에 있어서 아직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며 결혼식을 올리고 (혹은 결혼식은 생략하고) 정식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동거를 시작함으로써 사실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동거 없이도, 혹은 사실혼을 시작 의도 없이도 법원에서는 여러가지 요인을 검토해서 사실혼이 이미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사실혼을 집중조명하는 칼럼에서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해제도 성립만큼 쉽습니다. 결혼의 경우, 별거를 2년만 하면 이혼명령 신청이 가능합니다. 한국과 달리 상대배우자가 이혼 반대를 한다고 해도 위 요건만 맞으면 이혼 승인이 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사실혼의 경우 보통 별거 시점에서 관계가 해제되구요.


셋째, 위와 관련하여 ‘유책사유’라는게 없고 ‘no fault’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즉 바람을 피우던 기타 문제행동을 하던 이혼이나 양육권이나 (아동 이해에 영향이 가지 않는 한) 재산분할에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예를들어 내가 바람을 피운 배우자를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해도 상대배우자가 집을 나가 별거상태가 되고 2년만 지나면 이혼신청 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을겁니다. 


바람피우는 것 자체도 아동이해에 딱히 영향을 간다고 본 판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즉 ‘너는 바람피웠으니까 애 볼 생각하지마’ 이런 드라마의 대사는 뉴질랜드에서 통하지 않겠고, 그냥 양쪽배우자가 별 문제가 없고 둘 다 양육을 원하면 기본적으로는 반반 나눠지게 될겁니다.


재산분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너는 바람피웠으니까 이 집은 내가 가져간다’ 혹은 ‘위자료 내라’ 이런 것도 없겠습니다. 상간남/상간녀 소송이랄 것도 당연히 없구요. (뉴질랜드에서 바람을 피웠더라도 한국법원에서 속인주의로 소송이 가능한지 등은 한국변호사와 상담을 해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넷째,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요, 뉴질랜드 법에서는 위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 자체를 동등하게  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하는 기여도까지도 모두 동등하다고 보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사실혼이나 3년 이상이 되면 살던 집 (family home) 과 그 집안의 기물(family chattels, 차량 포함) 그리고 관계시작 이후 발생한 재산에 대해서 ‘반띵’ 분할이 기본입니다.



즉 극단적인 예를들어, 한 사람이 열심히 돈을 모아서 ‘본인 명의로만’ 집을 산 후에 결혼을 하고 그 집에서 신혼생활을 했는데 3년만에 별거를 했다, 그래도 상대배우자한테 절반을 나눠줘야 하는게 ‘기본 입장’ 입니다. 그 배우자가 ‘정의실현에 혐오감을 주는 경우’ (repugnant to justice)라는 난도 높은 주장을 펼치고 그걸 법원이 받아들여야 겨우 55:45, 60:40, 70:30 혹은 80:20 등의 분할이 낮은 확률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주장이 성립되지 않고 단순히 불합리하다고만 해봤자, 판사들은 소위 누칼협 (누가 칼들고 협박했냐) 같은 입장으로 “그 집에 살게한 것은 니 결정이니 그에 대한 감수도 니가 해라” 라고 말할겁니다.


또한 재정적 활동을 하는 배우자와 비재정적 (양육, 집안일 등) 활동을 하는 배우자의 기여도 부분도 보통은 동등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 해서 번 내 돈인데 왜 집에서 놀던 저사람하고 나눠야 하느냐’ 같은 80년대 드라마같은 대사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판례에서 “상대배우자가 양육/집안일 등의 비재정적 활동을 하면서 너를 재정활동에 집중하도록 해주지 않았으면 너도 그 돈 못 벌었어” 라는 이유도 종종 쓰입니다.


한국과 많이 다른 위 법들이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는데, 재산분할 사건들을 다루면 다룰수록 다른법에 비해 ‘예측 가능하다’라는 장점이 크게 눈에 띕니다. 결혼한 기간이 긴 부부들은 그냥 다 반띵 (공동명의이던 아니던). 사실혼이었어도 기간도 길고 애도 낳고 누가봐도 사실혼이라고 여겨지면 거의 다 반띵. 


그래서 사실혼인지 아닌지 애매한 사건들, 혹은 한쪽 배우자가 Family Trust 나 회사 등에 재산을 빼돌린 사건들이 아니면 재판까지 가는 일은 드물고, 당사자간의 합의로 끝나는 일이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법을 피하기 인해 혼전계약서 (prenup) 및 혼중/혼후 계약서를 통칭하는 “contracting out agreement”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한 부분이지만 이것도 ‘무적’의 계약서가 아니라서 심각하게 불합리한 경우 가정법원에서 무효화하는게 가능합니다. 이 부분도 추후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이러한 뉴질랜드 법의 특징들을 미리 알아두시면서 좀 더 예측 가능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법률적인 자문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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