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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장례 예배는 끝났다.
90을 살다 가셨으니 호상이라고 누구 한사람 서러워 하는 이도 없다.
인생의 허무랄까 알수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정신이 몽롱했다. 남들따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어느 여인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자기를 모르겠느냐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하는 내게 울산에서 나를 만나보았다고 재차 말했다. 울산? . . . 아 ‘배 ㅇㅇ’씨군요. 얼굴은 몰라도 이름이 예뻐서 오래전에 기억해둔 이름. 그녀는 바로 고인의 며느님이었다. 어느새 가족들 장정 세 사람이 나를 에워싸듯 둘러서서 인사를 했다.
문득 아득한 옛날 15~6년 전의 그 날이 생각났다. 우리는 서로를 반겼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자랑하던 장손은 어른이 되었고 작은 손주도 성인이 되어 누가 형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뚝 떨어져 멀리 사는 자녀들보다 오랜지기인 내가 더 가까이에서 지낸 세월이 많으니 아버님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묻는게 많았다. 당연히 그럴이라 믿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누우니 오랜지기로 지냈던 떠난분과의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울산에 내려가던 날의 그림이 스크린을 펼친듯 선명했다.
이상기온 때문일까? 11월의 매서운 한파가 갑자기 몰아닥쳤다.
여행자의 가방에는 이런 추위에 대비할만한 옷가지들이 없었다. 엄마같은 내 언니가 여름을 살다가 온 동생을 재빠르게 챙겼다. 두툼한 내복을 사들고 한달음에 달려와 입혀주고 가시니 견딜만 했다.
여행도 막바지, 마음이 많이 바빴다. 그런중에도 C여사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야하니 시내로 나갔다. 뽀얗게 피어나오는 입김을 뿜으며 카페에 들어서는 나를 어김없이 먼저 와 기다려준 그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 시간가는 걸 깨닫지 못한다. 가까이 있을 때도 그랬는데 멀리 떨어져 살면서 오랜만에 만나니 오죽이나 할 이야기가 많은가. 타국에 나와 사는 내가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아도 그녀와 만나면 나는 늘 들어주는 형편이 되고만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는 좋은 친구 만나 노후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무원인 남편의 박봉에 수완 없는 정직성을 늘 불만했다. 대한민국 청렴결백한 공무원 상 주어야 한다고 슬쩍 어깃장을 놓으면 어이없다는듯 그냥 깔깔 웃고만다. 속내를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는 허물없는 친구, 어떤 말 을 해도 오해가 있을 수 없는 우리는 그래서 서로를 좋아하는가보다.
특히 여행 코드가 잘 맞아 유럽을 비롯해 여기저기 많이도 함께했다. 한번도 낯 붉혀 본 일 없이 오늘까지 변할줄 모르는 우정으로 만나면 그저 즐거울 뿐이다. 어언 40여년 오랜지기가 되었다.
그녀는 평범한 전업주부가 아니다. 살림 틈틈이 글을 쓰며 2권의 책도 펴냈다. 속물로 늙지 말자고 약속했던 그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의지의 여인이다.
책을 손에서 놓지않으니 아는 것도 많아 나는 그에게 배우는게 많다. 철부지 아이처럼 실없는 말을 툭툭던져 헤픈것 같아도 오직 내 앞에서만 이라는걸 알기에 쾌히 받아 넘긴다.
인생 살면서 왜 어려운 일이 없겠는가. 내가 산전수전 다 겪을 때도 그는 곁에서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다. 이제 호젓이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내가 부럽다고 투정이다. 한 평생 남편과 시소게임을 하듯 살아가는 우리시대 옛날 여인의 한 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녀는 만나자마자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일본 북해도 패키지여행’ 티켓이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따끈따끈한 온천물에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며 눈빛을 반짝였다.
서울에만 오면 만남의 비용은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늘 달콤한 유혹을 보내오던 그녀, 넉넉한 삶도 아니면서 나를 위해선 아낌이 없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만만한게 아니잖은가. 그는 늘 그렇게 센스있는 감동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친구중에 목욕 같이하는 사이가 제일 허물이 없다고 했던가. 예전에 우리의 겨울만남은 주로 온천탐방이었다. 차가운 식혜로 땀을 식히며 점심은 뜨끈한 미역국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이힐 신고 내 키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너스레로 웃기며 흐르는 땀을 닦는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너무도 천진 서러웠다.
무릎위로 껑충한 후두달린 코트까지 얻어입고 북해도 눈세상을 누볐다. 몸이 노글노글 해질만큼 4박 5일간의 온천 호강을 즐기고 인천 공항에 내렸다. 캄캄한 새벽이었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여독이 풀리는지 아침잠이 몹시도 달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딸 아이가 쪽지를 내밀었다. 낯선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엄마 친구 뉴질랜드 할아버지가 울산에 와 계시다고 전했다. 내 집 열쇠를 그분에게 맡기고 왔는데 어찌 오셨을까? 출국날짜가 임박해서 마음이 바빴다. 열쇠를 받으러 울산으로 내려오라는 말의 속뜻을 알기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 분과 친구되어 함께한 세월이 벌써 몇해째인가. 배드민턴으로 시작해서 골프 파트너로 거의 매일을 만난 사이이니 미운정 고운정에 외로움을 잊고 살았다.
인생의 단맛 쓴맛 다 경험하고 어린애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만난 늙은 친구는 계산같은게 없어서 좋았다. 서로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가. 몰랐던 새로운 정보도 교환하고 세상속에 동참해 가니 나태하지않고 당당하게 늙을수가 있었다.
혼자 보내는 한달도 견디기 힘들어 서둘러 왔을 그 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아침 한술을 뜨고 급히 고속버스 터미널로 나갔다. 5시간 반을 달려 울산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만나 열쇠를 받아들고 곧바로 올라오려는 계획이었다. 또 다른 장소에서 오랜만에 만나뵈니 색다르게 반가웠다. 시아버님을 모시고 나온 며느리가 인사를 해왔다. 먼길 와서 그냥 가면 안된다고 남편이 꼭 집으로 모셔오라고 했단다. 극구 사양을 하다가 밤 11시 심야버스를 예약하고 마지못해 따라들어갔다.
너무도 많이 들어온 자녀가족들 이야기로 첫 대면에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저녁은 미리 예약을 해 놓았는지 얼마간 떨어진 한적한 곳에 황태구이 전문 식당이었다. 입맛없을 때 황태구이 먹고싶다고 많이도 쫑알 댔는데 친구가 기억해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자녀분 가족 네 식구와 서먹한 분위기에도 정말 맛있게 울산의 명물 황태구이를 먹었다. 잠깐동안 그렇게라도 얼굴보면 마음이 편해졌을까?오랜지기가 되어가는 과정의 한 페이지였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심야버스를 처음 타본 경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소하지만 자연스럽게 지나간 일들이 오랜 추억으로 남게되는지 새삼스럽다.
부부만큼이나 진한 인연으로 맺어지는게 오랜지기가 되는가보다. 그리움이 남아 눈 못 감으셨었나? 내가 뵙고온게 마지막 고별 인사가 될줄이야 . . . 바로 한시간 뒤에 임종하셨다는 부음을 전해 들었다.
이제 늦가을 낙엽처럼 한 잎 두 잎 어느 곳을 향해 가는지 떠나간다. 주변이 허전하고 썰렁하다.
정성스럽게 마지막 화환 하나 영전에 바치며 이제 오랜지기는 끝났다. 사반세기 세월이 하루아침 이슬같은 것을 . . . .
‘가신이여 부디 천국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