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은 많이 달라요. 성격만 봐도 벰은 외향적이고 저는 내향적이에요.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관점도 다르고요. 그래서 둘이 있을 때 우린 더 좋아져요!”
‘달이 쉬고 있는 집’이란 뜻의 용문사 휴월당 앞 잔디밭에 앉아 고양이들과 놀던 타냐가 들
려준 이야기에 벰의 눈빛이 반짝였다. 행복한 공감의 눈빛이었다. 서로의 ‘다름’이 ‘틀림’
으로 분열하지 않고 성장의 견인차가 되는 관계, 둘 사이에서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땐 웃음이 절반이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는 쪽은 사이사이 웃음을 터뜨렸고 이야기를 마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경쾌한 웃음소리로 함께 공간을 가득 채웠다. 더욱이 낱말 하나하나에 노래의 음표처럼 5개의 성조가 있다는 태국어로 나누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합창처럼 들렸다.
너와 이야기할 땐 웃음이 반이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숙소 앞에 펼쳐진 너른 잔디밭에서 설렘 가득한 얼굴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무엇이 그리 웃음짓게 하느냐고 묻자 “그냥요. 친구를 만나면 즐겁잖아요! 우리 둘은 오랜 친구 사이라 더 좋아요. ‘오늘 날씨 특히 파란 한국의 가을 하늘이 참 예쁘다, 용문사가 아늑하다, 절에 고양이가 있다니 신선하다, 템플스테이 유니폼이 아주 귀엽다’는 얘기 나눴어요. 하하!”라고 수줍게 웃으며 타냐가 대답해주었다.
22살의 타냐(Thanyatorn Kanjanakantika)와 23살의 벰(Walaiphan Khamhom)은 둘의 모국인 태국에서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함께 한국의 이화여대에서 유학했다. 오롯이 10년의 학창시절을, 이제껏 살아온 인생의 절반쯤을 함께 해온 것이다.
“타냐는 참 똑똑한 친구예요. 중학교 때 제게 공부를 가르쳐줬죠. 저는 10대 때 한국의 화장품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이대에서 전공으로 생명과학을,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타냐는 기계 및 생물의공학을 전공했고요. 이대에는 태국에서 온 유학생이 60여 명 있는데 입학하고 기숙사 배정 받는 날 깜짝 놀랐어요. 타냐와 제가 같은 방을 배정 받은 거예요! 정말 놀라웠어요.”
2017년부터 한국에서 유학해온 두 친구는 올해 상반기에 모든 학기를 마쳤고 9월 말 태국으로 돌아간다. 그 간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한국어를 익히고 공부해온 날들은 긴장의 연속이어서 하루 하루를 촘촘히 쪼개서 바쁘게 달려도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가을, 유학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한 두 사람은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의 휴식은 쉼 없이 달려온 스스로에게, 또한 서로에게 주는 졸업선물 같은 것이었다.
천년의 벗,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용문사 은행나무
짐을 푼 두 사람은 템플스테이 사무실에서 즉석카메라를 빌렸다. 사무실 앞에는 아담한 독서공간과 함께 108염주 만들기, 돌탑 쌓기 등 용문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담긴 팸플릿과 함께 대여할 수 있는 즉석카메라 등이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공간이 있었다. 경내 산책에 나선 둘은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 가을볕이 쏟아지는 범종루 옆 코스모스 군락에서 첫 번째 사진을 찍었다. 범종루의 오색단청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청춘의 웃음은 눈부시게 어우러졌다. 대웅전, 지장전, 관음전 등 아늑한 엄마 품 같은 전각들을 둘러보고 심검당 옆 계곡의 상쾌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마음도 정갈하게 씻었다. “용문사는 자연의 일부인 것 같아요!”라는 타냐의 말처럼 자연과 사찰이 자아내는 조화미가 한결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은행나무 앞에서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은행나무와 용문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벗 같았다. 함께 해온 시간이 자그마치 천년이 넘는 것이다! 용문사 일대가 화마에 휩쓸렸을 때도 유일하게 해를 입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는 은행나무는 변함없는 우정의 화신 같다. 십 년의 우정을 이어온 두 사람은 천 년의 우정을 가늠해보는 듯했다.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그대에게
산책을 마치고 숙소가 마련된 수월당으로 돌아오니 용문사템플스테이를 이끌고 있는 진각스님께서 잔디밭의 잡초를 골라내고 계셨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잡초 제거에 합류했다. 초보자들에게 잡초와 잔디를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아보였지만 담박한 집중의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스님은 “때를 놓치면 그땐 정말 처치할 수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며 열심히 바오밥나무 싹을 정리하던 어린 왕자처럼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잔디밭이 유난히 싱그러운 이유였다.
때깔 좋고 쿠션 좋은 잔디밭의 최대 수혜자는 용문사의 네 마리 고양이 선재, 선녀, 솜털, 아리였다. 쏜살같이 잔디밭을 달리며 놀다가 때론 살금살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오는 네 마리 고양이들은 금세 두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심으로 돌아가 고양이들과 잔디밭을 뒹굴며 놀다가 가을해가 지는 줄도 모르는 것! 용문사에서 누릴 만한 시간이었다.
밤, 해는 졌지만 별빛이 총총히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고 잔디밭 한가운데 모닥불이 일렁였다. 진각스님을 비롯해 오늘 함께 템플스테이를 온 분들과 도란도란 모여앉아 감자를 구워먹으며 살아온 얘기, 살아갈 얘기를 나누었다. 벰은 “제 전공인 생명과학을 토대로 한 물리 치료 등으로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태국에 있을 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가져온 생각이에요.”라며 오랫동안 간직한 꿈을 들려주었다. 타냐의 꿈도 친구와 닮아 있었다.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의료와 접목해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공부의 목적이 아픈 이들을 돕는 것이라는 말은 좌중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공감하는 미소를 짓던 진각스님은 “참 훌륭한 꿈입니다! 다만 여러분의 꿈속에는 여러분 자신의 행복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행복! 꿈은 그것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두 사람의 상기된 얼굴은 모닥불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아름다운 마음, 그 마음에 지혜의 꽃이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참가자 모두 생명력을 잃지 않는 지속 가능한 꿈의 뿌리는 바로 ‘나의 행복’이라는 지혜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서로의 본래 빛깔로 어우러지는 단풍처럼
이튿날 새벽 4시, 새벽 별빛을 따라 대웅전으로 가서 새벽 예불에 참가한 두 사람은 범종루 옆 산책길을 따라 올라 정지국사(正智國師) 부도에서 해돋이를 봤다. 가을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청신한 기운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일주문 방향으로 산책길을 내려와 휴월당에 이르니 진각스님께서 요가를 준비하고 계셨다. 바른 자세를 점검하는 요가부터 시작해 다양한 호흡법 등을 가르치시는 스님의 말씀에 “굿!”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오랜 수제자처럼 두 사람은 요가를 아주 잘했다. 그동안 공부에 매진해왔고 대학원 진학 등을 계획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배려해서 스님은 정뇌호흡법 곧, 뇌를 맑게 해주는 호흡법을 강조해 가르쳐주셨다. 스님은 “자, 요가를 마쳤으니 은행나무 곁에서 참선을 해봅시다!”라며 은행나무로 이끄셨다.
높이 42m, 둘레 15m의 웅장한 은행나무 아래 산새소리, 소슬바람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세 사람은 맑고 고요한 참선의 시간을 가졌다. 초록빛으로만 보였던 은행나뭇잎은 찬찬히 보니 테두리에 실금처럼 가늘게 노란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은행나무는 노란빛으로 물들 것이고 주위의 나무들도 저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할 터이다. 단풍의 빛깔은 같은 것이 없다. 나무마다 단풍색이 다른 까닭은 나뭇잎이 각각 지니고 있던 본래의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 되면 엽록소가 적어지게 되어서 그동안 엽록소가 내는 초록빛에 가려져 있던 나뭇잎의 본래 색소들이 자신의 ‘진짜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서로의 다른 빛깔을 존중하며, 서로 다른 벗이 있어 스스로가 더욱 성장한다고 얘기하는 두 친구. 타샤와 벰의 우정은 저마다 다른 본래의 빛깔로 어우러지는 단풍처럼 닮아있다.
■ 용문사(楊平 龍門寺) 템플스테이는?
가을빛 찬란한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 그 한없는 아늑함을 더욱 충전하고 싶다면 양평 용문사를 추천한다. 용문사 입구에 있는 추정 수령 1,100년 이상의 천연기념물 30호 은행나무가 자아내는 노란빛은 탄성을 자아낸다. 천년고찰 용문사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기운을 자아낸다. 곳곳에 살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용문사는 템플스테이 또한 아기자기한 재미와 따스한 배려심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휴식형 프로그램인 ‘나를 쉬다’와 주말을 이용해 명상, 요가, 염주 만들기, 소원지 쓰기, 스님과 모닥불 피우며 차담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나를 챙기다’를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사무실 앞에는 그동안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후기, 사진 등으로 구성된 공간과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독서공간이 있다. 아울러 저렴한 비용으로 빌려 쓸 수 있는 즉석카메라를 비롯해 텀블러, 우산, 수건 등을 구입할 수도 있어 편리하다.
용문사 포행코스는 가을의 낭만을 더해준다. 관음전 → 정지국사 부도 → 일주문에 이르는 30분가량의 포행코스는 누구나 해볼 수 있을 만큼 쉬운 산책길로 해돋이 및 단풍과 가을들꽃을 즐기기에 좋다. 일주문 → 해탈교의 30분 포행코스 또한 노약자도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안하다. 용문산 계곡 물길 따라 맨발로 걸으며 사색에 잠겨볼 만하다. 용문사 → 절고개 → 상원사에 이르는 1시간 30분의 포행코스는 상원계곡 일대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 들으며 물처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010-5342-5797 I yongmunsa.templestay.com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