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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많이 걷고는 출출한데 뭘 먹을까로 걱정하다가 생각난 곳이 돌솥밥집이었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고 나는 돌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생각하며 밥은 적게 먹었다. 껍질이 딱딱하지 않은 작은 꽃게 양념무침을 씹어서 달보드레한 살을 빨아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이 식당이 내 발길을 끄는 것은 살 뜨물 숭늉 때문이다. 그걸 돌솥에 부어 뚜껑을 덮어두면 보드레한 누룽지가 된다. 이 뜨물 누룽지를 마시고 씹노라면 고소하다가 달보드레해 진다. 작은 행복은 어디에나 있고 찾기 나름이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줄여서 빈 필) 신년음악회가 2022년 1월 1일 오전 11시 11분(오스트리아 현지시간으로 실은 11시 15분), 빈(Wien, Vienna)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1869년에 완공되었다는 이 홀은 3층 높이의 천정이지만 5층집은 될 것 같고 벽에서 내려다보는 황금동상의 여인들과 눈을 마주치려 애써본다. 누구의 얼굴을 보고 만들었을까?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은 1941년부터 매년 새해 첫 날, 빈 필 오케스트라가 열리는 곳이다. 이를 세계 여러 나라에 생중계 해 주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연말에, 눈이 온다는 산간벽지로 무작정 떠날까 하다가 이 음악회 때문에 주저앉았다. 폭설에 나뭇가지가 처지고 길이 막히며 발이 빠져 오도 가도 못하면 어느 집 온돌방 구들막에서 마른 오징어에 쏘주라도 한 잔 할까 생각했던 것이었다. 세상 마지막 길에 같이 떠날 사람은 애초에 없는 것이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려 했던 것이다.
2022년, 제82회를 맞은 빈 필 신년음악회는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를 맡았다. 바렌보임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 음악 감독이다. 1956년 처음 피아니스트로 빈 필에 출연하고는 2009년과 2014년 이후 세 번째로 지휘를 맡은 것이다. 연미복이 아닌 검은색 더블 상의는 무통(뒤가 터지지 않았다는)이다. 짙은 회색바지와 실버 스털링 넥타이가 흰 와이셔츠와 조화를 이룬다. 내 나이쯤에서 보니 적당하게 연세 드신 어르신이다. 80세, 그 연세에 나는 무얼 하지? 그렇게 건강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는지.....
신년음악회엔 전통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많이 받는 ‘천일야화’, ‘플레더마우스 서곡’ 등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명곡들과 함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라데츠키’ 등이 연주되었다. 귀에 익은 흥겨운 라데츠키 행진곡은 마지막으로 연주되었고 지휘자는 연주전에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하였다. 특히나 이 어려운 시기,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인류의 재난에서, 그럼에도 인간적으로 돕고 유대를 강화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같다. 시청하는 세상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었고 연주 중간에는 관객들의 손뼉을 유도하였으며 관객들은 호응하였다. 예술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눈에 뜨이는 연주자는 맨 뒷줄에 자리한 콘트라베이스 주자 6인 중의 한 사람인 여성, 버거워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느라 그런지 몹시도 힘들어 보인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부터 한 겨울밤의 찬 달빛 같다. 얼음장 같은 냉랭한 표정이라 자꾸 눈이 간다. 즐거워하면 좋겠는데...... 칠이 많이 벗겨진, 그 큰 베이스를 보면서 락카(lacquer) 칠이라도 해 줄까 싶었다. 그녀에 비해,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을 것 같은 하피스트(harpist)는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천상에서 잠시 왔나보다 했었고.
이번 음악회는 팬데믹 후 2년 만에 관객과 함께하였다. 음악회에, 운동경기에, 어떤 모임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청중은 대단한 것이다. 연극의 3요소를 새삼 들출 필요는 없겠지만 관객(시청자)은 크디큰 힘이다. 호응을 하고 격려를 하고 평가를 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여전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1,000명을 입장 하게했다. 1년 전, 빈 필은 관중 없이 진행했었다. 팬데믹으로 그동안 문을 닫았던 유럽 내의 여러 콘서트는 지난 여름 부터 재개되었다. 그렇다. 더불어 사는 세상,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는 5월에는 콘코르디아 연주회가 열린단다. 6월 18일에는 빈의 쉔부른 궁정정원에서 빈 필 여름 음악회를 계획한다. 바이러스가 가라앉으면 가보고 싶다. 저기 연주홀에 한 번 가서 들을 수 있을까? 꿈이라도 꾸자. 객석과 연주단을 구분한 것은 꽃으로 장식한 난간이다. 이 겨울에 백합이 가득하다. 장미도 있고 서너 달을 묵묵히 피워주고 있는 내 방의 노오란 호접란도 거기 보인다.
활짝 피고는 시들어 버릴까봐 나는 점퍼에 목도리를 한 채 시린 발을 참을 정도의 난방을 하고 있다. 그녀를 위해 매일 몇 방울의 물을 준다. 마르면 꽃잎 시들고 젖으면 잎이 썩는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게 상부상조일까? 큰 도시마다 한두 군데 메가박스에서 생중계하였는데 이런 귀한 연주회에 빈자리가 많을 줄은 몰랐다. 바이러스 때문이겠지, 그놈의 오미크론 바이러스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