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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길영
오늘자 토요판 종이신문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기획 기사를 읽었다.(기사는 댓글) 시의성 있는 기획이다. 토요판이 알차진 느낌이다. 중요대목을 옮겨둔다.
각자는 자기의 입장에서 사태를 판단한다. 섹슈얼리티, 성적 관계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나’는 옳고 ‘너’는 선험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진리는 자임하는 게 아니라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론도 마찬가지다. 판단하기 전에 상대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군 복무를 마친 집의 두 청년과 가끔 얘기를 나눠봐도 아래 기사와 비슷한 견해를 내놓는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진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건 얘기를 서로 들어보고 상대방의 입장과 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사라진 모습인데, 젠더 쪽도 마찬가지다. 내가 싫어하는 건 어떤 사안에서든 자기만이 옳다고 믿는 태도다. 어떤 누구도 옳음을 선험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자기 입장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 기성세대가 이해하는 페미니즘과 다른, 이 단어가 나오면 격분하는 20대의 ‘그 페미니즘’이 뭔지를 찾아내는 게 ‘갈등 해소의 열쇠’라고 말했다.
-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을 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대체로 20대 여성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가령 ‘남성의 육아를 수용한다’ 의견이 20대 남성은 3.97(5점 만점)로, 20대 여성(4.17)보단 낮았지만 30대 여성(3.80)보다 오히려 높았다. ‘여성 직장상사 수용’, ‘여성의 주도’와 같은 항목에서도 20대 남성은 20대 여성보단 점수가 낮았지만, 30대 여성보단 높거나 비슷한 수용도를 보였다.
-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앞에선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대학생 ㅈ(25)씨는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로, 극으로 치달아 있다. 여성의 인권은 증진돼야 하지만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잘못된 게,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남자는 안 된다, 여자만 할 수 있다는 얘기만 한다”며 “남성을 차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ㅎ(25)씨도 “20대 남성들 사이에선 반페미니즘이 디폴트값이어서, 나처럼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좀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 실제 25살 여성 직장인 ㅇ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너 페미야?’라는 말은 ‘너 일베야?’라는 말과 똑같이 굴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여자가 항상 우선시돼야 한다면서 방구석에서 혼자 앉아서 남자들 얘기에 열폭(열등감 폭발)하는 애들, 여자 키보드 워리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그래서 남성성, 남자다움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을 억압하지 말자는 게 페미니즘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공부하고 동의한 페미니즘은 그런 거였는데,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계기로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 편 가르기, 혐오 대 혐오의 전쟁으로 느껴졌다. 그런 급진주의 페미니즘도 페미니즘의 한 종류인데, 이건 페미니즘이고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페미니즘에 조건부로 반대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메갈리아 같은 사이트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며 “그들의 주장엔 확대해석과 피해의식이 많다. 남자든 여자든 불평등한 부분이 있고 그런 건 서로 타협해 나가야 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일단 선을 그어놓고 ‘그런 발언은 하면 안돼!’라고 나오니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또 다른 주요한 이유는 “차별은 또래 여성이 아니라 우리가 당했다”는 생각이다. ㅈ씨는 “우리 세대는 집에선 여자든 남자등 동등하게 사랑 많이 받고 자랐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남자가 더 살기 힘든 것 같다”며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하는 게 제일 문제다. 한창 배우고 성장할 시기의 군대 2년은 너무 심하다”고 했다. ㅅ씨는 “20대 남성은 사회에서 책임은 많이 지우지만, 가장 차별받고 하대받는 ‘최하층 시민’”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거의 대부분의 내 또래 남성들이 알고 있고,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 겪는다는 차별은 잘 모르겠다. 내 주변에선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남성성을 강요받은 건 우리다. 어렸을 때 할머니나 고모들이 ‘고추 한번 보자’고 하는 것도 페미니스트식으로 보면 성추행이지만,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남자들은 그냥 다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직장인 ㄷ(25)씨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면서 지나가다 남자가 쳐다보면 ‘훑어본다’고 오해하고, 힘쓸 일이 생길 땐 남자를 부른다. 이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군 가산점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군인에 대한 대우,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남성의 추락한 귄위랄까, 자존감이랄까,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 대학생 김도환(26)씨는 “예전과 다르게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오히려 여성이 더 뛰어난 학업 능력을 갖춘 세대에게 여성 할당제가 꼭 필요한 제도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학원생 ㅂ(27)씨는 “군 가산점제가 폐지됐는데도 할당제는 남아 있어, 남자들끼리의 경쟁만 더 심해지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든다.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라고 말했다.
- “소외계층이 박탈감 때문에 약자 혐오가 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산이 많을수록 더 심하다. 중상층 청년 남성의 반페미니즘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은 이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반박할 증거와 논리를 제시한다며 프레임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과 달리 중상층 청년 여성의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건, 이념을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활동이 물질적 이해관계 충족과 고등교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직장인 ㅇ씨는 “페미니즘이 뭔지는 잘 모른다. 그냥, 인터넷에 ‘왜 이렇게 사냐’고 비난하는 ‘짤’(사진)에 페미라고 적혀 있으니,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만을 페미니즘의 전부로 여기거나 차별이 자기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페미니즘을 몰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홍찬숙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강사는 최근 발표한 ‘청년의 무엇이 성평등 프레임에서 젠더 갈등과 공정성 프레임으로 변화한 것인가?’라는 논문에서 “청년 남성들의 감수성을 표현할 언어적 자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거시 담론을 지배하는 기성세대, 페미니즘이라는 도구를 획득한 20대 여성과 달리, 20대 남성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언어를 찾지 못했고 그 억울함이 반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 출처 : 오길영 교수(충남대학교 영문학과) 페이스북
■ 오 길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