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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현숙
내 방 벽에는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이사를 해도 같은 위치에서 눈을 맞추는 사십 년 지기 룸메이트다. 검정 바탕에 배와 목덜미로 하얀 털빛이 조화로운 강아지 한 마리. 오래 보아도 볼수록 정이 가는 작품이다.
나는 녀석을 바둑이라 부른다. 그림을 본 순간 최순우 선생이 쓴 수필의 주인공이 연상되어 붙여준 이름이다. 낭독을 듣는 반 학생들을 감동으로 글썽이게 한 아름다운 글 ‘바둑이’. 그것은 한국전쟁 중 선생이 경복궁 사저에 두고 간 강아지와 다시 만난 반가움을 쓴 수필의 제목이다. 잘 익어 고개 숙인 조 이삭 아래 순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은 강아지가 내 눈에는 꼭 글 속의 주인공처럼 보인 것이다.
바둑이를 만난 것은 H중학교에 근무하던 1980년대 초. 2학년을 담임한 그해, 아이는 부반장이었다. 천방지축인 또래들과 달리 눈에 띄게 풀죽은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가끔 지각하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짠한 마음에 따끔하게 나무랄 수가 없었고 아이도 늦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어디가 얼마나 아프신지 물을 수가 없었다. 한창 민감할 나이 아닌가. 그러구러 학년이 끝나고 지각을 제외하면 부족할 것 없는 모범생으로 아이는 졸업반이 되었다.
학기 초 새 담임이 아이의 신상을 물어왔다. 부모상담 여부를 묻는 연륜 높은 선배의 말투에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인데 자녀교육에 이렇게 관심이 없으니 이유를 알아서 도움을 주는 것이 책임 있는 교사라는 질책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아이 환경에 맞는 생활지도를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은 풋내기였다. 아픈 엄마 얘기를 술술 풀어내고 싶도록 믿음을 주는 담임이 되지 못한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카시아 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토요일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는데 사환아이가 손님을 모시고 왔다. 반백의 머리에 어딘가 품위가 느껴지는 손님은 자신이 내가 2학년 때 담임했던 아무개 아버지라고 했다. 학교생활을 입 밖에 내지 않던 아이가 가끔 선생님 얘기를 하더라고, 덕분에 아이가 안정을 찾은 것 같아 꼭 한번 뵙고 싶었다고 했다. 때늦은 상담자리가 거북했던 나에게 아들을 잘 보살펴 줘서 감사하다며 두고 간 액자가 저 그림이다. 그분이 중등학교 교재에 삽화를 담당하는 화가라는 것을 손님이 다녀간 뒤에 들었다. 부인이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계시다는 것도.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이후로 바둑이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심심할 때면 바둑이와 눈을 맞춘다. 기쁠 때는 기쁨으로 우울할 때는 위로의 눈빛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 저 오랜 친구가 내 눈에는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수필 속 바둑이를 닮았다. 어쩌면 교재에 실렸던 글 ‘바둑이’의 삽화와 나의 바둑이는 같은 작가가 그린 형제가 아닐까. 그래서 그림을 보는 순간 그 글의 제목이 생각났던 게 아닐까. 망설임 없이 바둑이라 이름 지은 까닭이 우연은 아니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두 녀석이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요즘 들어 바둑이와 부쩍 친해졌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바깥나들이가 줄어든 만큼 만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림 속 주인공 너머로 스치는, 수줍게 움츠린 아이와 적막한 아버지의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 구석 짠하게 자리 잡은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분신인 그림을 선뜻 내어준 아버지의 마음. 그것이 그림에 문외한인 나와 저 바둑이를 사십 년 지기 친구로 만들어준 고리가 아닐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물며 마음에 눈에 남아있는 인연임에랴. 나에게 저 바둑이는 세상 누구의 그림도 넘보지 못할 명작이다. 그것은 거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스며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최 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