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 장 기오
젊었을 때 나는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한 달에 20일 이상을 보따리를 싸들고 이 도시, 저 항구로 배회했다. 내가 그렇게 떠돌면서 느낀 절경(絶景)이란 마음에 있지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망의 기억이 생생한 어느 공원, 떠나 버린 애인의 뒷모습이 생각나는 어느 해변의 쓸쓸한 일몰, 어머니의 꽃상여가 나가던 봄꽃의 동산, 그 허무한 낙화, 이렇듯 마음에 있는 곳에 정감이 담긴다.
천하의 절경일지라도 내 추억이, 내 가슴이 담기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또 의미가 있는 곳은 기존의 의미로 인해 가슴에 닿는다.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고 노래했기에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격스러워한다. 난정(蘭亭)도 우군(右軍, 왕휘지)이 없었다면 무성한 숲, 긴 대나무 밭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어느 해 봄, 목포 근방 항구였던가?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조그마한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벚꽃은 꽃비로 흩어져 내리고 햇볕은 따뜻해 나는 꿈을 꾸듯 몽롱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평화롭고 아름답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누구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시(詩)라도 쓰고 싶었다. 아니 누구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그때 나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부둣가에 앉아 따뜻한 햇볕에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거기가 어딘지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데쟈뷰(deja-vu)다. 가끔 꿈속에서 그런 풍경들이 보인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분명 가 보았던 기억이 나던 곳인데 말이다.
나는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잊지 못할 장소가 몇 군데 있다. 채석강의 석양이 그렇다. 지금은 방파제가 생기고 그 주변으로 포장마차들이 들어서 많이 망가졌지만 그 옛날의 채석강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채석강에는 바다로 향해 많은 동굴들이 나 있다. 대패로 깍은 듯한 바위를 겹겹이 쌓아 형성된 절벽의 기이함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동굴에서 지는 해를 보면 가히 절경이라 할만하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줌렌즈로 당겨 석양을 찍을라치면 동굴 입구를 꽉 채운 해가 이글거리며 바다 위로 ‘첨벙’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들고 나는 물길로 인해 조금만 물때를 놓쳐도 물길에 갇히고 말기 때문에 익사할 위험도 많다. 지금은 동굴 속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망을 쳐 놓아 그 비경을 감상할 수가 없지만 <산곡의 백합> 이라는 작품을 촬영할 때 나는 그 석양에 반해 시간을 놓쳐 익사할 뻔한 일이 있어 기억이 새로운 장소다.
일출이 아름다운 곳은 동해 추암이 단연 으뜸이다. 추암의 일출은 그냥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다. 추암은 바다 가운데 바위군(群)이 있다. 이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태양과는 다른 장엄미가 있다.
이 봄에는 섬진강가로 갈 일이다. 매화마을에 들러 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서 술이라도 한잔 마셔 보라. 세상 근심은 다 사라지고 신선이 될 것이다. 수십만 평에 조성된 매화나무 어디에 앉아도 흥취는 그만 그만일 것이다. 연인과 함께한다면 더욱 좋으리라.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시라도 한 수 읊어 본다면 시인이 따로 있을 소냐. 그대들이 시인일 것이다.
고즈넉한 절로는 주왕산의 주왕암이 으뜸이고 그 위로 자리잡은 학소대도 절경이다. 그러나 나만 알고 남들이 모르는 절경이 하나 있다. 두타산의 두타산성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늦여름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을 때였다.
비안개가 산허리를 감돌아 산 전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지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기암 절벽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절벽 위로는 겹겹의 바위들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이 전신을 훑으면서 머리끝이 곤두섰다.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이처럼 우뚝한 산은 많지 않다. 물론 금강산이나 설악산 같은 유명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서 이런 절경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산은 드물다. 그러나 올라가는 코스는 난코스다. 로프를 잡고 한 시간은 올라가야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동진강의 갯벌, 만경강변의 갈대숲, 소쇄원의 바람 소리와 대나무 향기에 잠시 사색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에 가서는 부족한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을 채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절경들이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닭볶음탕 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어떤 여행가가 추천을 하면 금세 사람들이 몰려 술판과 노래판이 벌어지는 등 단숨에 세속화되어 버린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심각한 회의가 생겼을 때나 삶이 고통스럽고 생이 지루하고 하루하루가 권태로울 때도 사람들은 바람처럼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서 어떤 희망을 찾고 구원을 얻는다.
신혼여행도 그렇다.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고 어떤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행은 삶의 구원행위다. 그 장소가 비록 하찮은 장소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어떤 구원을 얻었다면 그곳은 그의 인생에서 절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이 닿지 않으면 절경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 없는 곳의 풍경은 그냥 스쳐 간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절은 절, 경치는 경치, 도토리묵에 술판이나 벌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마음 있는 곳에 추억이 생기고 뜻이 생길 것이다. 여행은 좋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곳을 마음에 담는 행위다. 그래야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