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대학 등록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온다.
나이 삼십을 바라보며 직장생활 잘하던 손녀의 새로운 결심이었다. 현장 경험에서 직접 깨달은 스스로의 미래 해결책인듯 싶어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늦긴 했지만 원하는 공부에 도전장을 내민 손녀에게 열심히 해 보라는 응원밖에는...
망설임없이 인생항로를 결정해 나가는 과감함이 요즘 젊은 세대의 패기일까? 일과 병행하면서 힘들어할텐데 버티어낼지가 의문이었다.
필요에 의해서 찾은 방법인줄 생각했는데 재미있어 하는 걸 보면서 적성에 맞는걸 선택한 것같아 다행스러웠다.
새파란 후배들과 어울려 다시 학창으로 돌아간 앳되고 명랑한 표정이 너무 보기에 좋았다.
처음에 긴가민가 했던 내 노파심 의구심이 한방에 날아갔다.
고령자인 내게 가장 자유로운건 이제 시간뿐인 것 같다. 그러나 속절없이 흘러가니 시간은 안타까움 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시간을 귀하게 써야하는 이유가 그래서일 것이다.
친구들끼리 따뜻한 온기를 교감하며 살았던 때가 아득하다. 혼자인듯 갇혀사는 외로움이 코로나에 버금가게 두렵다.
맑고 밝게 살려는 영혼조차 찌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인생 막바지에 선물로 주어진 시간을 지루해서 몸 비틀며 보낸다는 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락다운 때 이미 여러권의 컬러링 북에 색을 채우며 지내왔다. 이제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지가 않으니 문제였다.
무슨 어린애같은 변덕인지 모르겠다. 재미에 푹빠져 열심히 했는데 의욕을 잃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가슴 답답한 현실 까맣게 잊고 다시 몰두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우울증이 달겨들까봐 고심을 했다.
불평과 부정으로 나이만 먹는 노후는 그냥 늙은이란다. 존경받는 어르신으로 늙으려면 건전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공식같은 지침도 있다. 우아한 품위의 어르신이 되고자 고민하는 비통한 절규라고 생각했다.
절간처럼 고요로운 세상에 떼지어 날으는 새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을까? 혼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마저 괜스레 짜증이 났다.
이미 경험한바 있으니 전념할 수 있는 일만 찾아내면 잘 견딜 자신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어느 날 마스크를 눌러쓰고 가까운 쇼핑몰에 나가보았다. 입구를 테이블로 가로막고 한 사람씩 주문하는 물건을 찾아다 주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불쑥 입에서‘스케치 북’소리가 나와 버렸다. 주인이 여러가지를 들고 나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무작정 사 가지고 왔다.
하얀 백지로 묶인 두툼한 책을 들고 하염없이 들여다 보고만 있었다.
전에 그림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손이 떨려 글씨도 바르게 안되는 지금 무모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스케치 북을 사 오다니... 그러나 과제가 생겼으니 해 내야 했다.
화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다. 손장난 정도로 건전하게 시간을 쓰고 싶은 욕구였다. 하다가 안되면 그만인 것을....
영상으로 기법을 조금 들여다 봤다. 독학으로 남의 것을 배운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뜻 달려들 자신이 없었다.
사과도 그려 보았다. 이것 저것 쉬지않고 연필을 굴렸다. 연필가루로 손바닥이 시커멓게 되도록 온종일을 몰입했다.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성격이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 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어지간히 형체가 되어가는게 보였다. 조금씩 재미가 붙어가는 걸 느꼈다.
정성을 쏟은만큼 나무면 나무, 사과면 사과가 왕초보 눈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니 부족해도 즐거우면 되었다. 잡념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한장의 손실도 없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작품(?)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 될때마다 뿌듯한 보람으로 하루해가 정신없이 달아났다. 직선이 지렁이처럼 구불거릴 땐 어이없어 혼자서 콧노래를 불렀다. 야~ 야야 내 나이가 얼만데... 흥얼거리며 지우고 또 그 렸다.
궁금한 사람들 챙길 시간도 없어 거의 연락을 잊고 살았다.
알량한 솜씨로 크리스마스 카드도 그려 친구들에게 띄웠다. 젊은이가 보면 치기였지만 노인에겐 오기같은 용기였다.
머리가 맑아지고 부티나는 영혼을 깨달을 때 내 인생은 축복 그 자체여서 행복해진다.
흐려오는 눈을 부릅뜨고 아픈 허리를 고추세우며 하얀 여백에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는 팔십대 늙은이.
새로운 것을 배워 알아가는 도전의 가치가 이토록 대단하다니 놀랄뿐이다.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배우며 살아가는 학생이었으면 좋겠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얼마나 멋진 삶인가.
호랑이 해가 다섯바퀴를 돌아 다시 임인년을 맞았다. 범띠인 그가 어느새 회갑의 나이를 맞은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거북했다. 엄마에겐 아직도 철없는 아이로만 보이는데 육십이 넘었다니 믿고 싶지도 않았다.
배운학문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세월을 보낸 여인이었다. 그도 어김없이 자아를 잃고 살아온 그 나이때 여자들만의 정체성에 대해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인생 전반은 그에게 별로인 운이었다. 후반의 설계도 뚜렷한게 없으니 불안이 더더욱 그를 괴롭혔다. 모녀가 마주 하면 인생 선후배로 답 이 없는 대화를 참 많이 하곤 했다.
잘못 건드렸다간 금방 깨질것 같은 유리 그릇처럼 늘 조심스러웠다.
예순둘 늦은 나이에 문단에 등단을 했던 나였다. 먼저 경험했던 엄마이지만 서로 성향이 틀리고 가치관이 다르니 무어라 조언을 해 주기도 어려웠다. 막연히 더 기다려보자는 말로 달래주곤 했었다.
드디어 기회가 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소식인가.
무슨 일인데?.. 말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너무 재미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산다고 했다. 평소의 그답지않게 흥분에 들떠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밝고 가벼운 목소리. 그 소리만 듣고도 어미의 기분은 곧바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꿈에도 생각 해 본적없는 생소한 건축 계통의 공부가 적성에 맞더라는 사실에 본인도 놀랐단다.
어느분의 제안을 받고 마지못해 시작을 해 봤는데 그 나이에도 머리에 쏙쏙 박히더라는 것 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진도가 빨리나가 칭찬도 들으며 벌써 영상을 찍었다며 보여주었다.
풍선에 매달린 것처럼 붕 뜨는 묘한 기분에 휩쌓이며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안도의 긴 호흡이 새어 나왔다. 감사합니다.
딸과 나란히 곁에서 부족한 컴퓨터 기술도 익히며 모녀가 그렇게 시간을 채워 간단다. 엄마는? ㅎㅎ.... 안부가 너무 늦다.
나도 그림 공부에 열심이라고 맞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림 한장을 사진찍어 멋지게 보내 주었다.
우리집 여인네 삼대는 지금 열공으로 빠알갛게 불이 붙었다. 푸른 신호등이 켜진 아름다운 소확행으로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