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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이었다. 견딜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보려는 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계절 바뀌면 포근하게 입으라고 바지 몇개를 준비해 평소처럼 우체국으로 갔더란다. 그런데 전 같지가 않아 보내지 못했다고 딸 애가 서운해 했다. 이유를 알려달라 했더니 귀찮다는듯 내밀었다는 쪽지엔 뉴질랜드 나라 이름위에 빨간 동그라미가 돌려쳐져 있었다. 코로나 세상에 비정상적인게 어디 그 뿐이겠냐며 아쉬워하는 딸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치과에 예약이 되어있는 3월 어느 날 이었다. 집에서 멀지않아 필요할 때 마다 찾아가는 단골이었다.
언제 보아도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주는 접수대에 젊은 여인이 그 날도 여전히 반겨주었다.
사무적인 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런 친절에 늘 마음이 따뜻해 지고 편안해 졌다.
겁쟁이인 내가 불안을 덜고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그녀 민경씨의 친밀함 때문에 늘 수월했다.
문득 그의 테이블 앞에 받아놓은 소포 꾸러미가 내 눈에 들어왔다. 눈여겨 보니 발신지가 한국이었다.
순간 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개인적인 문의가 불쑥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앗차! 싶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나서 머쓱해 하는 내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소상히 알려주었다. 일반소포는 안되더라고 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3월 말께였다. 그 정보를 전해받은 딸애가 소포를 무사히 보냈노라고 홀가분한 듯 전해왔다.
코로나 형세가 여기보다 훨씬 안좋은 한국의 상황을 알기에 딸 애의 수고가 애틋해 잘 입겠다고 미리 치하까지 해 두었다.
요즘 늑장부리는 우체국 사정을 고려해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어림잡아 도착 때가 됐을 때 쯤이었다. 단번에 받지못하면 찾으러 오라는 번거로움이 귀찮아서 약속도 미루며 외출을 삼가고 기다렸다. 하루 이틀... 열흘.... 지치도록 기다렸지만 헛 일이었다.
4월 한 달이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 버렸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달이 바뀌고도 한참이 지난 뒤 였다.
어느 날 딸 애가 옷이 맘에 들더냐며 물어왔다.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미안했다.(혹시 다녀 간 것은 아닐까?)
그 쪽에선 별 문제없이 통관이 되었다고 알려왔다. 여기서 다시 알아 보라며 확인 쪽지까지 보내왔다.
쉽게 물어볼 수도 없는 형편이니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그냥 막연하게 더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오겠지. 밖에서 낯 선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신경을 곤두 세웠다. 보통 때 토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던 것을 생각해 내면서 그 날은 잠도 일찍부터 깨어나곤 했다. 그러나 분실이 되었는지 문제가 생긴게 틀림 없다는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단한게 아닐지라도 그냥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잘못된 과정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도움 요청도 번거롭고 구차스러웠다.
아무래도 분실된 것 같다고 딸애에게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잊어버리자고 했지만 내 맘은 편치않았다. 딸애가 위로했지만 나보다 그 애에게 손실을 끼친게 너무 미안했다.
숙제 하나를 풀지 못한 찝찝함이 마음 한귀퉁이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외출에서 귀가 할때면 무언가가 현관앞에 놓여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습관처럼 잊지 않고 살았다.
누구는 3개월만에 받기도 했다는 둥 그런 사고가 종종 있다고 말 하기도 했다. 내 경우에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그동안 계절도 바뀌었다. “요즘 입기에는 좀 두터워요”했던 딸의 말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바지가 아쉽게 생각났다.
7월. 다시 치과에 갔을때 민경씨가 소포 받았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잊어가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왈칵 화가 치밀었다. 혼자서 참았던 속풀이었을까?. 인연이 없어 어디론가 증발 해버린 것 같다고 폭발하듯 말해 버렸다.
그녀가 한국에서 보내온 확인쪽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미련없이 지워 없앤 줄 알았는데 찾으니 용케 남아 있었다.
그는 대뜸 전화를 걸었다. 자기 일도 바쁜 사람인데 통화가 길어지는걸 보면서 소용없는 일에 시간 낭비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이제 희망적인 생각보다는 분실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오니 민경씨가 밝은 표정으로 반겼다. 주소가 잘못 되어 그리 되었다고 했다.(아이가 그런 실수를 했단 말인가 그럴리가?) 의아해 했지만 실낱같은 기대가 생긴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포기했던걸 다시 찾게된 것 같아 딸애에게 먼저 전했다. 미안했던 마음을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또 하루 이틀, 닷새.... 기다림을 무색하게 그냥 지나가 버렸다.
당연히 받았으리라 알고있는 민경씨에게서 어찌 되었느냐며 연락이 왔다. 아직..이라는 대답을 하는 내 쪽이 민망했다.
민경씨 또 자기 일 제쳐 놓고 그들과 다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집 앞에 갖다 놓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민경씨가 나를 달랬다. 만일 약속이 안 지켜지면 다시 알려달라고 단단히 부탁까지 했다.
그 조용한 성품속에 어디 저런 결기가 숨어있었나 새삼스레 놀라웠다. 사적인 남의 일에 지칠법도 한데 끝을 보려드는 민경씨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했다. 그들의 다급한 거짓말에 놀아나는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헛된 약속만을 거듭하는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사정이 숨어있는지...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도 있는 법이다. 차라리 이해를 하도록 사실을 말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공무란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니 쉽지 않을 것은 뻔했다. 슬며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민경씨가 계속해서 밀어 붙이고 있었다. 금방 보내 줄 것처럼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서야 창고를 뒤집고 찾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직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얼렁뚱땅 대답으로 일관해 왔음을 짐작케 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찾으면 나오긴 할른지?희한한 일에 휘말린 것이 무엇에 홀린 느낌이었다.
어디에 꽁꽁 숨겨져 있는 걸 찾는지 없어진 걸 찾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보내주겠다는 여러차례의 답도 지켜질리 없었다. 생각대로 없어진 것을 민경씨가 괜한 수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쯤해서 그만 두자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민경씨의 수고를 보면서 차마 말이 안 나왔다.
다음 날 다시 온 소식은 반가웠다. 물건을 드디어 찾아낸 모양같다고 하는 민경씨의 밝은 목소리가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이번에는 정말 같으니까 이 삼 일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안도 하는 듯한 민경씨의 목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도 100%의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민경씨의 애써주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젠 충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바로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뛰쳐나가 열어보니 생각보다 큼직한 소포박스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세상에... 4개월만에 받아 든 소포였다.(그동안 못 오고 어디 있었니?)
무엇이 잘못되었나 하고 살펴보았다. 주소가 잘못 되었다는건 핑계였다. 어떤 착오였는지 뒤로 밀려 처박혀 있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민경씨의 끈질긴 싸움(?)이 아니었다면 영영 내게 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기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도와주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민경씨의 겸손, 앞으로 또 다시 도울일이 생기면 도와주겠다고 나보다 더 기뻐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따뜻하고 고결한 마음의 소유자라야만 가능한 특별함이었다.
새 바지를 입을 기대보다 민경씨처럼 아름다운 마음씨의 젊은 내 편이 한사람 더 늘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냥 늙는것도 서러운데 문제가 생기면 반벙어리 신세가 암울하고 참으로 서러웠다.
내 주위에 젊은 친구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고 축복인가. 더불어 삶의 진리를 일찌감치 터득해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보다 어여쁜 민경씨 다시한번 고마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