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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하늘부터 반겨 준 웰링턴 여행길. 그날은 무척 행복했다. 대선 투표를 마치고 한인 마트에 들려서 파미에서 살 수 없는 물품들을 사고, 해변 가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연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큰애 커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는 길에 레빈의 채소 가게를 들려 잘생기고 큰 배추 두 포기를 사서 배추 된장국도 끓이고, 김치도 담갔다. 정말 아름다운 하루였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무기력증이 온 몸을 덮쳤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얼마 남지 않은 선거일만 기다리게 되었다.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동안 대선으로 스트레스가 무척 많이 쌓여 있었나 보다. 평소 내가 했었던 모든 일들은 올 스톱이 된 채 한국의 선거 날만을 손꼽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병이 나버리고 말았다. 오미크론과 흡사한 독감에 걸려서 혼이 나갈 정도로 아팠다. 자가 테스트 결과는 계속 음성이 나왔지만, 믿기가 어려워서 여러 번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봉이 코 안 깊숙이 들어갈 땐, 재채기가 계속 나왔고, 목에 넣으면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음성으로 나와서 안심을 했다. 사실, 이번에 걸린 독감은 오미크론보다 더 독하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몸을 추슬러서 몇 자 적는 걸 보면 참 오랫동안 독감 바이러스가 내 안을 휘젓고 다녔던 거 같다.
독감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3월 10일 아침, 현관에 비친 햇살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먹먹한 슬픔이 앞을 가려 눈물이 나왔다. 이번 대선에 내가 너무 기대가 컸었나 보다.
제 20회 대통령 선거는 내 의식에 불꽃을 던졌다. 강한 위기와 희망이 엇갈린 마음으로 제대로 편히 잠을 이룬 적이 없다. 그래도 선거 막판에 촛불의 위력이 되살아나서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뒤늦게 정치교체의 의미에 눈을 뜬 시민들이 정치교체를 위한 선거 유세에서 촛불을 들었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하기만 했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20대의 젊은이들이 촛불과 함께 깨어나 정치에 관심을 갖고 관여를 하려 하니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
공영방송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 나로서는 오마이 TV, 공감뉴스, 뉴스타파, 김어준의 뉴스공장, 딴지 방송, 서울의 소리, 빨간 아재, 신상철 TV, 이상호의 고발뉴스, 새날...등의 풀뿌리 언론 방송들을 유튜브를 통해 본다. 이 방송들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진실에 눈 뜨게 해준다.
오마이 TV [이연호가 묻다]에서 선거에 대한 백낙청 교수님의 대담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았다. 선거 전인 2월 19일과 선거 후인 3월 16일에 각각 한 시간 반 동안 한 대담들인데, 안 본 사람들에겐 권유하고 싶은 동영상들이다.
백낙청 교수님은 만 84세의 연세로 일본 통치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역사의 산 증인이시다. 편집가,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 영문학자이며, 민족문학론을 펼쳤다. 계간 문예지 <창작과 비평>의 창간주역으로 오랫동안 편집인을 맡기도 했다.
지금 나는 백낙청 교수님의 흔적을 검색을 통해 추적해가고 있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찾아다니면서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들을 것 같다. 내가 영성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할 때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던 것처럼, 그분의 말씀 또한 듣고 또 들어야겠다.
아무튼 이번 선거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각성과 통찰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한국에 어떤 고난이 전개가 될지 잘 모르겠으나, 이 또한 성장을 위해 거쳐야할 관문으로 여기면서 늘 지켜보고 응원하기로 했다.
그래.
괜찮아.
다 괜찮아.
조금 돌아간다고 고지로 못 갈 일은 없어.
가는 길이 험해도 즐기면서 가면 돼.
촛불이 갈 길을 알려줄 거야.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다함께 재미있게 웃으면서 가자.
우리 함께 촛불을 켜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