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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0 개 1,161 오소영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처럼 눈이 많이 내린 날 은 처음이었다.


지금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멀고 먼 76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동짓달 열 이튿날.


아침에 눈을 비비면서 방 문을 여니 온 세상이 하얗다. 너무도 눈부시게 황홀했다. 밤새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마루와 맞닿게 쌓여있었다. 마당끝으로 내려다 보이는 것 은 은백색 보료위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굴뚝들 뿐이었다.


저만치서 상체만 보이는 아버지는 눈을 치우는게 아니었다. 가늘게 통로를 내느라 열심히 삽질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퇴방에 벗어놓았던 신발들이 마루끝에 어수선 했다.


왠일인지 부엌에서 아침준비를 하고 있을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혼자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 언니의 표정도 다른 날과 달라 보였다. 편하게 앉지를 않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나를 보시자 아버지가 얼른 나오라는 듯 손짓으로 불렀다. 길게 하품을 하며 나오던 오빠도 함께 라며 소리치셨다. 얼결에 신발을 찾아 신었는데 안에 눈이 그대로 남아있었는지 발이 젖어왔다. 언니가 잽싸게 부엌에서 쓰는 수수 빗자루와 부삽을 들고나와 우리들 손에 쥐어주었다.


단걸음에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느다란 눈길속으로 뛰어들었다. 만화에서 보았던 얼음동굴에 들어간 것같아 야릇한 재미가 느껴졌다.


장난끼 한창인 오빠와 나는 빗자루에 묻은 눈을 서로의 앞 에 흩뿌리며 낄낄 거리기에 더 신이났다. 아버지는 장난 그만두고 어서 거들라고 다그치셨다. 분위기가 보통때와 다른게 너무 이상했다.


그 아침에 엄마의 산끼가 급했다는걸 우리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서둘러 외할머니를 모셔와야 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발짝도 나설 수가 없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외가는 한 동네 멀지않은 이웃이었지만 한시가 급했다. 쌓여있는 눈더미와 벌이는 전쟁이었다. 아버지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윗옷을 다 벗어 던졌어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참으로 긴 시간이 흘러갔다.


눈 온 다음 날은 거지가 빨래를 해 입는다던가. 햇살은 살가웠고 더할나위 없이 포근한 날씨였다.


할머니가 오시기도 전에 엄마는 기어이 혼자서 해산을 하고 말았다. 기진해 쓰러져 있는 산모를 보고 황망해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날 처음으로 세상구경을 하게 된 아기가 나보다 열살 아래인 남동생이었다. 부모님의 다섯번째 자녀로 아들로는 셋째였다.


세상에 더렵혀진 속진을 깊이 묻어버리고 너무도 깨끗한 천지. 특별하게 정결한 세상에서 태어나 그랬을까? 동생은 누구보다 유순하고 착한 성품을 천성으로 타고났다. 계집애처럼 얼굴 또한 곱상하게 생겼는데 이름조차 ㅇ영인 여자 이름이었다. 피난살이 고달플 때 젖먹이 재롱으로 식구들을 웃기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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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생 때는 바쁜 부모님 대신 내가 학부형 노릇을 거의 맡았다. 남매인데도 우리 둘이는 많이 닮아있어서 인사도 하기 전에 선생님이 먼저 알아보곤 했다. 그래서일까 육남매 중에 유독 가깝게 지낸게 그 동생이었다.


굴곡없이 성인이 되었고 공군에 자원 입대한게 평생 직업이 되었다.


결혼할 때도 세상의 편견과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보단 나의 의견을 더 존중해 따라 주었다. 어찌 그리도 고맙던지. 그 마음이 변함없이 지금까지도 한결같았다.


그는 가장으로서도 빈틈이 없었지만 사회봉사 또한 열심히 했다. 언제 가 봐도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로 웃음 꽃이 가득한 그의 가정은 진정으로 사람사는 냄새를 풍겼다. 모진 세파에 휘둘려 파도타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럽게 했다.


집안일을 우선순위로 두고 동기간들을 챙기는 것도 늘 그 였다.


사형제 아들을 둔 어머니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아들도 물론 그 동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 집안은 뿌리깊은 불교 집안이었다. 가톨릭으로 서서히 개종을 하게 된 것도 동생 때문이었다. 군복무때부터 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부모님께 짓는 죄를 늘 기도로써 빌었다고 했다. 동생이 불효했던 것은 아마 그 일뿐 이었을 것 이다.


사월 초파일 칠월 칠석에 절에 가시는 어머니가 은연 중 아들을 따라 성당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세례도 받고 세례명까지 받으신 이유는 아들의 진심한 마음과 삶의 태도를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여럿이라도 유독 정 끌리고 맘 편한 집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의 발길은 늘 그 집으로 향했고 거기 머물기를 좋아 하셨다. 어머니 말년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절에 갔을 때 다라니도 사 놓았는데 저 세상 갈때 그걸 입고 갈런지 모르겠다”


“내가 셋째내서 죽으면 가톨릭 장례를 할텐데...”영세까지 받았으니 그걸 은근히 바라는 것처럼 들렸다.


동생은 누구에게 성당에 가자는 소리한번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사람씩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맏이인 언니의 변화였다. 시할머니부터 층층 시하에서 시집살이를 칠십 넘어까지 했던 언니였다. 다소곳했던 복종의 긴 세월에서 벗어나듯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주일 미사를 보고 돌아오면 형부는 목탁을 두드리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고 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먼저 어머니 편이 되어 주었다. 형부 혼자서 끝까지 버텼으나 결국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는 대세를 받고 떠나셨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부활절에 선종하셨다.


오빠는 정년퇴직 후 지방에 내려가 살려고 새 집을 짓던 때였다. 셋째내 집에 계시다가 마침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임시로 다른 집에 잠시 옮겨 지내던 참이었다.


팔십중반에 천수를 다 하신 것 같아 누구에게 원망같은건 없었다. 연령회 봉사를 하던 동생이 시신을 제 집으로 모셔온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성당 교우들의 기도속에 입관 하셨을 때의 그 곱던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하고 부르면 살포시 눈 뜰 것 같던 편안한 얼굴. 어머니는 그렇게 가톨릭 묘지에 묻히셨다.


오빠가 동생의 효심과 믿음을 존중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오빠 또한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어머님 산소에 성묘 왔다고 사진찍어 보내는 동생에게 이 누나는 멀리서 늘 죄스러운 딸 일뿐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님 가신지가 얼마인데 아직도 보고싶어 왔다며 무덤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찌 그리도 갑자기 서둘러 떠났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슬하에 아들 딸 잘 키워놓고 이제 즐겨야 할 노후의 삶만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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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아침. 청천벽력같은 동생의 부음을 들었다. 가슴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불과 몇개월 전에 바로 아래 동생을 보냈다. 애통해 하면서 형님 장례식 소식을 소상히도 알려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한 것 같았다. 그 가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었다.


누님 건강 잘 챙기라는 간절한 부탁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서 맴돌고 있다. 끔직이도 자상하게 챙겨주던 동생이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보다 열살이나 아래인 한참이나 더 살아야 할 나이가 아닌가.


누님과 함께 골프치는 꿈을 그리며 기대해 본다고 했다. 따뜻하고 살가운 정이 담뿍 묻어오던 목소리.


내 나이를 잊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코로나의 세상에 밀려나나 했더니 이젠 영영 끝이났다.


근간에는 글쓰는 누님이 부러웠다며 수줍게 고백을 해 왔다. 서툴지만 흉내내듯 써 봤다며 작품을 보내 오기도 했었다. 충분한 가능성이 보여서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 주었다. 가깝다보면 닮아지는게 맞는가 보다.


지금도‘메세지 왔어요’하고 카톡이 오면 제일 먼저 동생의 안부같아 가슴이 흔들린다. 금방 마른 눈에 눈물이 고여 참을 수가 없다. 한바탕씩 눈물을 쏟아내고야 만다.


이 누나에게 늘상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던 동생아 그렇게 먼저 떠나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그토록 하얗게 빛나던 날에 왔다가 한 점 부끄럼없이 정갈하게 살다간 동생의 일생. 그 아름다운 넋을 오래오래 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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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역에서 피어난 꽃을 영전에 바칩니다


높은 하늘에 둥실 떠가는 저 구름속에 동생의 혼이 실려있을까?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며 동생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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