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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와서 초창기에 ‘오클랜드 내춰럴 히스토리 클럽(Auckland Natural History Club)’ 이라는 자연 탐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주말을 이용하여 역사성이 있는 자연을 탐사하는 단체로 설립한지 100년이 가까워지는 조직이다. 연휴가 있는 때는 2박3일 지방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주로 오클랜드 주변 산을 트램핑(Tramping)하며 그 지역의 역사적인 내력을 해설해주어 이민자한데는 특히 유용한 기회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때 와이우쿠(Waiuku) 반도를 답사했는데 사우스헤드(South Head)라고 불리는 반도의 끝에서 마누카우 하버(Manukau Harbour)를 내려다보면서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맞은 편 노스헤드(North Head)는 피하비치(Piha Beach)의 남쪽 끝에 해당되는데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고 타스만(Tasman) 바다가 그 사이를 뚫고 들어와 마누카우 하버가 전개된다. 양쪽 헤드 사이를 흔들다리로 연결해보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해 본 것이다. 다리를 건널 때 스릴(Thrill)을 느끼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짜릿한 경험을 만끽하리라는 상상이다. 물론 관광 상품으로도 힛트(Hit)할 거란 생각이었다.
‘흔들다리 효과(Suspension Bridge Effect)’는 위기 상황에서 함께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심리 현상이라고 발표되고 있다. 긴장 상태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그 긴장 상태를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를 학술적으로는 ‘흥분-전이’ 과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부정적 감정인 공포나 불안이 긍정적 감정인 호감이나 애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교감신경의 흥분 상태에서 활발하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때문이라고 한다. 긴장 상태이든 사랑을 느끼는 상태이든 아드레날린은 분비되므로 활동성 높은 운동을 해서 숨이 가빠른 상태이거나 단순이 숨이 가빠지기만 해도 흔들다리 효과가 유도 된다고 보는 것이다. 유원지에서 과격한 놀이기구를 타거나 혹은 귀신의 집에서 좋은 감정을 높이고 관람차를 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 다음 현실 세계로 복귀하는 순서는 계획된 코스이다. 흔들다리는 산의 계곡이나 깊은 호수에 설치되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숨이 가빠질 수밖에 없는데 연인들 사이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계기가 되기 십상이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는 친했던 사람이 아닌,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도 유대감을 나타낸다. 한국에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중간에서 멈춘 적이 있었는데 문이 열리지도 않고 좁은 공간 안에서 10여명이 갇혀 있으니 공포감이 엄습했다. 갇힌 일행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생사를 같이할 동료들 같이 느껴졌다. 이런 때 연인 사이라면 더욱 가까워질게 뻔한 이치이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는 낯선 사람이었는데 위기에 닥치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다행이 작동이 다시 되어 풀려 나올 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일행들에게 전우애 같은 끈끈한 정을 나누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은 모순 덩어리이다. 무서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와 긴장 상태를 일부러 즐기고 싶어 한다. 사람은 공포, 불안, 혐오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치안 유지가 잘 되는 곳에서 살기 위해 돈을 벌고 나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건강관리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데 반대로 일부러 공포를 경험하려고 폐가를 찾거나 귀신의 집, 흔들다리 또는 롤러코스터 같은 어트랙션(Attraction)을 즐기기도 한다. 이 같은 사람의 모순된 감정과 행동이 왜 일어나는가? 어트랙션을 경험한 후 보다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보인다고 한다. 특히 어트랙션 전에 스트레스, 피로, 지루함 등을 많이 느꼈던 사림일수록 긍정적인 변화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의 ‘재정비(再整備)’와 관련이 있다. 무섭고 두려운 경험을 하고 나면 괴롭고 지겹다고 느꼈던 일상의 수고가 가볍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재정비가 일어나면서 기분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체 감각들이 재정비되는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실내에서 춥다고 느껴질 때 얇은 옷차림으로 차가운 바깥바람을 쐬다 들어오면 집안이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일상을 힘들게 느꼈던 사람이 무서운 경험을 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덜 힘든 것으로 느끼게 된다는 이치이다. “오늘 같은 강풍과 추위에 어떻게 바다에 나가 맨발로 물속에서 걸을 수 있느냐?”고 지인들이 물어본다. 나는 그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갔다 온 사실을 확인 시켜준다. 같은 조건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보면 걷는 건 약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위를 이기는 것이고 외출할 때도 가볍게 차려입으니 편리하고 집안이 덥게 느껴져 경제적이다. 춥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몸은 더 춥게 느껴지고 몸은 더 약해 질 것이다.
뉴질랜드 생활이 평안하고 사건 사고가 적어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번잡하고 세상일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편이다. 기후도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긴장 속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광복 후 5년 만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비참한 처지로 내몰렸고 그 후 70년 동안 수차례의 정치 변혁을 거치면서 그래도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미미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은 신나는 지옥이고 뉴질랜드는 심심한 천국이다’라는 말이 통용되는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흔들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좀 더 짜릿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경험을 맛보이기 위해 가장 높은 또는 가장 긴 출렁다리를 자랑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721m의 출렁다리도 한국에서 개통되었다.
너무 안전하고 편안하거나 변화가 없고 일상적인 일이 계속되면 삶이 지루하고 무기력해지기 쉽다. 뉴질랜드 생활에도 좀 더 자극적인 변화를 가미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