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성혈사 나한전 · 예천 용문사 윤장대 ·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꽃살문
꽃송이 하나하나가
부처님이고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공경하는
마음이다.
꽃살문의 창호를 통해
새어 나오는
화엄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니,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처음 꽃을 본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꽃은 우주의 기적이다. 식물 세계에서 꽃의 탄생은 인류의 진화처럼 혁명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꽃으로 상징되곤 한다. 아름다움은 진선미 중에서 가장 상위의 가치를 지녔다고도 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꽃으로 표현되고, 꽃은 빛의 결정체이다.
문살에 꽃을 조각한 마음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시각화한 것이기도 하고,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공양의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자비와 헌신, 지혜와 환희를 꽃으로 묘사하는 것은 우주의 연대기에서 태초부터 인류의 세포 속에 유전되어 흐르는 감성의 자연스러운 발화가 아닐까.
다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왜 작고, 여리고, 가볍고, 부족하고, 부러지기 쉽고, 상처받은 혹은 상처받기 쉬운 것들에 눈길이 자꾸 가는 것일까? 이 감수성이 참 딱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 보이거나, 그렇다고 비슷한 이들끼리 연대하기도 어려운 습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곧 체념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심정으로 다시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고 쓴다.
언제나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어주는 사진가를 따라서 영주 성혈사로 갔다. 성혈사는 소백산 자락에 있는 소담한 사찰이었는데,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바쁜 걸음의 노스님이 대웅전 뒤쪽의 소나무들을 보라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이리저리 꼬부라진 소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 아래 흔치 않게 툇마루가 있는 성혈사 대웅전은 무척이나 친근한 모습이다. 눈길을 거두고 곧장 위쪽의 나한전을 찾았다.
이렇게나 작고 아담한 나한전이라니! 거기에 여섯 개의 문에는 꽃살문이 장식되어 있고, 그 앞으로 두 개의 석등이 놓여 있어 그 자체로 완벽에 가까운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웃는 얼굴의 거북이 등에 두 마리 용이 감아 올라가 상부를 받치고 있고, 맨 위에는 여의주와 연꽃으로 보이는 좌우가 섬세하게 다른 모습의 석등만 촘촘히 감상하는 데에도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나한전을 호위하고 있는 듯 위엄 있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묘하게 희극적이다.
영주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
꽃살문은 두 개씩 짝을 이뤄서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가운데 두 개의 문에는 물고기, 게, 동자승, 연꽃, 새, 개구리 등이 소박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 끝의 솟을꽃살문에는 통판으로 모란이 장식되어 있다.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면서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움에 이르는 불교 예술의 한 장르를 압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한전 안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기능만을 남겨둔 성혈사 나한전은 오백나한은 생략하고, 부처님을 주불로 아라한에 이른 열여섯 분의 제자만을 모셔두고 있다. 꽃살문의 창호지에 스며들어 오는 빛이 은은하게 형태를 실루엣으로 비쳐 보여주었고, 나방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앉았다 날았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길게 들어와 바닥에 빛의 선을 드리우고 있는 곳에서 한없이 낮게 몸을 접어 절을 올렸다.
나한전 밖으로 나왔을 때도 사진가는 꽃살문 촬영 삼매경에 빠져있다. 한동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인적이 없는 더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며칠 전에 내린 큰비로 계곡물은 요동치듯 내뿜고 있었고 숲은 습기와 이끼로 온통 녹색 빛을 띠고 있었는데, 풀 속에 숨은 듯이 있는 작은 부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온몸에 이끼를 두르고 담쟁이 넝쿨이 붙어 자라고 있다. 그 뒤의 굵은 소나무 한 그루와 어울려 은밀한 아름다움을 선물해준다.
천천히 대웅전으로 내려와서 툇마루에 벌러덩 누웠다.
감은 눈에도 환하던 빛이 점점 작아지더니 잠깐 꺼졌다가 촬영을 마친 사진가의 돌아가자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2019년에 국보로 승격되어 지정된 예천 용문사 대장전을 찾았으나 마침 공사 중이라 윤장대의 실물을 보지는 못했다. 얼마 전에 닥친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예천 지역 전체가 시달린 모습이 역력했고, 어렵사리 당도한 용문사 경내에도 곳곳에 물고랑이 파헤쳐져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대장전 내부에는 두 윤장대가 널빤지로 둘러싸여 있고 그 널빤지 위에 실물 크기의 윤장대 사진을 붙여놓았다. 그 모습이 더욱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윤장대는 경전을 보관하는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회전하는 책장인 셈이다. 글자를 몰라 경전을 읽을 수 없는 민중이 한 바퀴 돌리는 것만으로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하는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티베트에서는 ‘마니차’라고 이름 붙여 손에 들고 돌릴 수 있도록 휴대용으로 만든 것도 있다.
용문사 윤장대는 8각형으로 구성되어 아름다운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고 보수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꼭 다시 와서 보고 싶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기도 했다. 화려한 대장전 내부의 장식도 아름답고 특히 삼존불의 후불을 탱화가 아니라 목각으로 조각하였는데 장엄함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그 앞에 좌우 대칭으로 윤장대를 들여놓은 용문사 대장전은 희소성만으로도 그 예술적 가치가 짜릿하게 전해진다.
성혈사 대웅전의 툇마루와 윤장대를 만든 이의 마음이 참 곱고 고맙다.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꽃살문
정면 다섯 칸의 기림사 대적광전은 마치 꽃살문을 달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부처 하나를 모셨고 공경심을 담았다. 눈을 찡그려서 희미해지게 해서 보면 마치 부처님이 처음 빛으로 설법하셨다던 화엄의 세계를 연출한 것도 같다.
바깥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기림사 대적광전 꽃살문은 안에서 보는 것도 좋다. 예불 시간에 맞춰 참배하는 것을 추천한다. 달을 머금은 절이라는 뜻의 함월산 자락에 불국사 다음으로 규모가 큰 사찰인 기림사는 인도에서 싹튼 정토신앙이 바닷길을 따라 이어져 온 것이다. 옛 신라인의 이상향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염원이 깃든 도량이다.
여러 사찰에서 꽃살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다 보니 꽃살문 자체만으로도 미적 가치가 뛰어나지만 자연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이란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교 예술은 특히나 관계와 조화 속에서 빛이 난다. 석탑과 가람의 배치가 주는 공간감, 긴장과 느슨함, 주불과 후불탱화의 조화로움, 꽃무늬 하나하나로 인드라망을 표현한 꽃살문과 빛의 아름다운 투과….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산에서 내려와 세상 속으로 걸어갔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