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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사찰음식체험관에서 듣는 중제 스님의 사찰음식 이야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온기와 습기의 공간.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미생물들이 한 공간에서 숨을 쉰다. 자칫 서로의 호흡이 어긋난다면 모든 것이 폐기되고 말 절체절명의 시간.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기적은 일어나고, 저마다의 몫을 한 요소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스스로를 새롭고, 신성한 존재로 탈바꿈 시킨다.
‘발효(醱酵)’의 태동이란 이토록 신비한 것. 손맛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사찰음식 전문가 중제 스님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찰음식 배우는 날
대구 팔공산의 울창한 숲 자락, 그 안에 오붓이 자리한 동화사 사찰음식체험관은 인근에 대구 중심가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도심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고요하고, 아늑하다. 사찰음식 교육이 열리는 주말, 삼삼오오 모여든 수강생들 또한 그 아늑함에 푹 빠져든다.
“그냥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힐링이에요. 심지어 날씨가 좋지 않아도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너무 좋더라고요.”
“사찰음식을 배운다고 제 음식 솜씨가 한순간에 달라지진 않던 걸요(웃음). 하지만 음식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작은 재료 하나에도 감사한, 그런 마음이요.”
체험관 처마 아래로 쏟아지는 초겨울의 햇살, 그 따사로움 아래 해바라기를 하며 웃음 짓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곳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곳엔 언제나 다정한 에너지를 더하는 주인공, 중제 스님이 함께한다. 오늘은 동화사 사찰음식 정규강좌의 중급반 수업이 있는 날, 12주에 달하는 과정이 어느새 중반을 넘어가는 때다.
“벌써 수업이 반을 넘었네요. 아마도 우리가 서로 익숙해질 무렵 다시 헤어질 시간이 오겠지요. 조금 섭섭해도 그것이 인연이고, 순리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 봅시다. 오늘은 배워볼 메뉴가 세 개나 있어요!”
이야기와 함께 하는 수업
자그마한 체구에 꺼질 줄 모르는 웃음꽃,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트레이드마크인 중제 스님. 오늘의 메뉴는 얼큰된장수제비와 느타리버섯전, 도라지유자청생채다. 겨울철에 어울리는 뜨끈하고 구수한 국물과 담백하고 고소한 부침개, 상큼한 생채가 어우러진 한상차림.
하지만 이 조리법을 더욱 구성지게 하는 것은 스님의 이야기보따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식품 중 하나가 된장이지요. 사찰에 가면 김치광, 된장광, 소금광을 따로 두고 귀하게 여깁니다. 또 사찰음식하면 대표적인 것이 발효음식이거든요. 운문사는 농사짓는 모습이 참 대단합니다. 끝도 안 보이는 밭에 스님 이삼백 명이 죽 늘어서서 깻잎을 따는 거예요. 그 깻잎을 실로 묶어 염장해서 겨우내 먹지요. 요즘에는 흔한 매실 장아찌도 예전에는 매실나무가 있는 부잣집이나 산사에서만 먹을 수 있었어요.”
“공양주 보살님들은 밀가루 반죽을 봉지에 담아 지근지근 밟아요, 그리고 냉장고에 숙성시켜 놨다가 스님들이 오면 아주 맛있게 한 끼를 만들어줍니다. 절에서는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는데, 그것만으로는 영양소가 부족하니까 오늘처럼 튀김이나 전을 곁들이는 겁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스님의 일상, 산사의 공양간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면 어느새 낯선 사찰음식 조리법도 그리운 옛 고향의 추억처럼 친근해지기 마련이다. 두 시간여의 수업 시간 동안 내내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찰음식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끄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비기인 셈이다.
제 자리를 찾아서
“제 법명은 성철 스님께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중도의 삶을 걸으라는 뜻이 담겨있지요.”
환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법명을 소개하는 중제 스님의 모습 뒤로 초겨울의 햇살이 쏟아진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그간 걸어온 지난 여정은 이리저리 움직이다가도 끝내 균형과 중심의 추를 맞춰내는 저울의 그것과 같다.
출가 전, 중제 스님은 사회복지학과 식품영양학을 차례로 전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불교와 인연조차 없었던 과거의 어느 날, 꿈에서 본 고운사라는 사찰을 찾아 나섰던 순간이 시작이었을까. 연구를 위해 찾았던 전국 사찰의 공양간에서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 그리고 먼 길을 돌아 출가를 하고 끝내 사찰음식 전문가로 강의를 하게 된 지금까지 스님이 차곡차곡 쌓아온 경력은 마치 수행자가 된 이후의 삶을 대비한 것처럼 맞아 떨어진다. 출가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인요양원과 동국대 일산병원의 초대법사, 지역자활센터, 장애인복지센터 등에서 소임이 주어졌고, 또 속인 시절 공부했던 식품영양학은 사찰음식 강의를 하는 지금 더욱 큰 자산이 되어주고 있다.
“오랜 시간 맡아왔던 복지관 소임을 내려놓은 뒤 고민을 했어요. 이제 내가 행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복지관에 있을 때 직원들 간식을 만들어 주면 분위기가 달라졌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음식이라는 것이 나도 즐겁고, 남도 즐겁게 해주는 것이구나 싶어 사찰음식을 배워볼 결심을 했지요.”
사찰음식에 대한 경력을 쌓아가며 새로운 도전도 함께 시작했다. 오랜 시간 직장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대중을 만날 기회가 적었던 스님은 새로운 소통의 창구로 사찰음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일을 쉴 때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요. 사람들과 소통하며 불교를 이야기하고, 표현할 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뭘 할 줄 알아야지(웃음). 다른 스님들한테 도움도 구하고, 혼자 요리하면서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면서 부족하나마 점점 요령이 생겼지요.”
일주일에 하나씩, 꼬박 1년을 쉬지 않고 사찰음식 영상을 올려 사람들과 교감하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아쉽게도 그 서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년이 채 되기 전,
스님의 유튜브 강의를 눈여겨본 전국 사찰들과 서울의 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강연 요청이 이어진 탓이다.
마치 필연처럼 이번에는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시도한 도전이 결국 새로운 출발의 포문을 열어준 셈이었다.
날마다 새로워라
속가의 셈으로 하면 어느새 환갑의 나이,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이치는 새롭고, 수행자의 길은 배움으로 아득하다. 그런 스님에게 사찰음식은 수행의 방편이자, 그 여정의 이정표와 마찬가지이다.
“가끔 내가 이제 정말 스님이 되어가는구나, 할 때가 있어요. 다른 무엇보다 맛으로 깨닫게 되지요. 부모님 고향이 바닷가라서 김치도, 반찬도 양념 맛이 강했던 터라 절밥을 처음 먹었던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된장 한 점 넣지 않은 상추쌈의 맛이 너무나 깊고, 맛있게 느껴지는 겁니다.” 탁한 맛 속에선 결코 모를, 그래서 맛을 맑혀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림을 스님은 언제나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제가 스님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예요. 스님들이 울력을 하면 간식을 해드려야 되거든요. 그때 제가 신이 나서 ‘스님,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릴게요!’ 했다가 혼이 났어요. 공부에 정신을 쏟아야 할 수행자가 속가에서 조금 배운 재주로 아는 체를 하거나, 그리 들떠서 되겠냐고요. 우리 수행자들에게 음식은 그야말로 수행하는 몸을 집행하는 약으로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지요.” 그리고 그 날의 가르침은 이제 고스란히 중제 스님의 강의실에서 세상을 향해 전해져 간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사찰음식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지 물었는데, ‘수행과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야 한다’,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러운 귀한 것’이라는 학생들의 답변에 오히려 깊은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는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다시 고급반을 향해 가는 이들의 모습에 스님은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단순한 요리 강습이 아닌, 밥상으로 전하는 불가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품고 살길 바라는 뜻이다.
“저는 아직도 풋풋한 애호박을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예전에는 제철에만 파란 호박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또 끓는 육수에 콩가루를 살살 흩어 넣으면 꼭 달걀을 푼 것처럼 되는데, 처음 그걸 보고도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웃음).”
작은 것 하나도 새롭고, 그래서 감동할 일도 많다며 웃음 짓는, 이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겠노라 이런저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중제 스님.
오늘도 전진하는 스님의 삶에 허투루 일어나는 우연이란 없는 법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타이밍을 이루고 제 몫의 자리를 찾는 기적, 중제 스님의 시간은 오늘도 아름답게 발효 중이다.
재료 및 분량
밀가루 2컵, 생콩가루 1/2컵, 감자 2개, 애호박 1/2개, 청고추 1개, 홍고추 1개, 건표고 3개, 들기름 1큰술, 된장 2큰술, 고추장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소금 1/3작은술
만드는 방법
1. 밀가루, 생콩가루, 들기름, 물을 섞어 약간 무르게 반죽하여 면포에 싸서 30분 이상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2. 냄비에 물을 붓고, 불린 표고버섯을 크기에 따라 3~5 등분하여 넣은 후 팔팔 끓인다.
3.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 뒤 반으로 자르고 0.5cm 두께로 잘라준다. 애호박도 길게 반으로 갈라 같은 두께로 잘라준다.
4. 물이 끓으면 감자를 넣고,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체에 걸러 국물을 끓인다.
5. 청·홍고추는 0.5cm 두께로 어슷하게 썬다.
6. 끓는 국물에 반죽한 수제비를 얇고 납작하게 뜯어 넣고 끓어오르면 소금으로 간한다.
7. 마지막으로 어슷하게 썬 청·홍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준다.
재료 및 분량
느타리버섯 300g, 당근 1/2개, 애호박 1/2개, 미나리 70g, 식초 2큰술, 밀가루 2컵, 물 1+1/2컵, 소금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부침유(들기름 3큰술, 식용유 3작은술), 양념장(간장 2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참깻가루 1작은술)
만드는 방법
1. 느타리버섯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물기를 꼭 짠 다음 길게 찢어 소금, 참기름으로 양념한다.
2. 당근과 애호박은 깨끗이 씻어 4×0.3cm 크기로 채 썬다.
3. 미나리는 뿌리 쪽을 잡고 밑둥을 잘라준다. 큰 그릇에 물을 받아 미나리를 넣고, 식초를 2큰술 정도 넣어 잘 섞어준 뒤 10분 정도 담가두어 깨끗이 한 다음 흐르는 물에 2~3번 정도 씻어 4cm 길이로 자른다.
4. 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고 묽은 반죽을 만든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직경 6cm로 동그랗게 올린 뒤, 준비해 둔 채소와 느타리버섯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반죽으로 살짝 덮어 노릇하게 지진다.
6. 간장, 참깻가루, 고춧가루, 참기름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전에 곁들인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