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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차(茶)는 일상생활에서 신체적인 유익함만을 가져다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을 수양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곧 차(茶)는 단순히 마시는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었으므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정성껏 기물(器物)을 준비하고, 손님에게 접대하는 예절과 공경의 마음을 익히고, 유익하고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바쁜 현대인, 차를 생활에 초대한다면?
차를 마시는 과정에는 나름대로 형식과 절차의 예법이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최대한 간편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차 생활을 반복적으로 계속하게 되면 이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내면의 인격을 형성하는 아름다운 요인이 된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내 앞에 있기까지 자연과 사람의 협업이 이루어진다. 토양, 햇살과 바람, 청정한 공기, 맑은 물, 찻잔을 만드는 흙, 그리고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 잘 해주어야 비로소 형성이 되는 이치가 있다. 자연의 정수와 사람의 정성이 만났기 때문일까? 차를 생활화 하다보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두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성숙한 내면의 세계를 열어가게 된다. 또한, 차는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과 내 주변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사고를 길러주고 건전한 대화를 나누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차를 마시는 일은 의식집중의 훈련을 일상에 결부시켜 스트레스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종의 마음 수련이다. 차 한 잔으로 자신의 존재와 몸, 생각, 마음, 우주의 일체감을 체득할 수 있다. 장소가 어디든 차 한 잔만 있으면 그 자리가 ‘찻자리’이고 쉼의 공간이 된다.
녹차부터 흑차까지 다채로운 차
차를 마실 때는 고요히 자리에 앉아 마음가짐을 따뜻하고 부드럽고 둥글게 가진다. 우주 속에 가득한 힘찬 기운을 내 안으로 천천히 모아 온다.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하고 정신이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움직임이 없어야 하고, 몸과 마음이 일치해서 차를 영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차(茶)를 준비한다. 좋은 차는 나오는 지역과 품종, 잎을 따는 시기, 발효 정도, 제조 방법에 따라 각각 맛과 향이 다르고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녹차(綠茶)는 발효가 안 된 차라는 뜻으로 비발효차(非醱酵茶) 또는 불발효차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10% 이내의 산화발효 허용치를 갖는 차를 뜻한다. 실제 대부분의 녹차 발효도는 약 5% 내외이다.
백차(白茶)는 살청(殺靑: 산화효소를 제거해 산화에 의한 갈변을 억제하는 것)이나 유념(찻잎을 비벼 찻잎 안의 내용물이 나오게 하는 것)의 공정이 없이, 위조(萎凋: 생잎의 수분 함량을 적당히 줄이는 것)와 건조의 2단계 공정 과정만을 거쳐 만들어지는 차로 긴 시간 시들기만으로 가볍게 발효시킨 후 건조하는 약발효차(微醱酵茶)이다.
황차(黃茶)는 찻잎의 색이 황색이고 찻물의 색도 황색이며 우린 차의 색 또한 황색을 띠고 있어 삼황(三黃)차라 한다. 황차는 녹차 1차 가공공정과 같으나 유념 전후에 민황(悶黃: 차를 완전히 건조시키지 않은 채 종이나 천으로 싸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가볍게 발효시키는 것)이라는 발효과정을 하나 더 거쳐 만든 경후발효차(輕醱酵茶)다.
청차(靑茶)는 발효과정을 통해 원하는 향과 맛이 나면, 살청을 하여 더 이상의 발효를 막아 품질을 고정시키고 유념과 건조로 마무리한 차이다.
홍차(紅茶)는 중국에서 개발되어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 교역, 소비가 최대량을 이루고 있는 강산화발효차다.
흑차(黑茶)는 중국 변방 민족들이 주로 음용하는 거친 생엽으로 가공하며 차마교역에 의해 발전되어온 특별한 차류이기 때문에 번차(番茶)라고 불리기도 한다. 각종 흑차로 만들어진 긴압차(緊壓茶)는 중국 변방지역 소수민족의 생활 필수품이 되고 있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바로 보고 느끼는 순간
차 한잔의 여유를 즐겨보자. 탕관에 불을 켠다. 전기 포트도 상관없다. 가만히 찻물이 익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이 끓는 소리의 시작을 송풍성(松風聲)이라고 한다. 이는 소나무에 바람이 지나는 소리와 같아서 내 마음이 청산에 들기도 하고, 물이 끓을 때는 파도를 닮아서 이때는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차 한 잔의 여유로 산도 강도 바다도 내 안으로 가져와 평온함을 가질 수 있다.
물이 다 익으면 다관에, 잔에 물을 따르면서 잔을 맑힘과 동시에 마음을 맑히고 잔을 따뜻하게 데우면서 나를 따뜻하게 한다. 이는 또한 세상이 따뜻해짐을 느끼는 과정이 된다.
다관에 싱그러운 차를 담고, 맑고 따뜻한 물을 붓는다. 찻잎에 물이 닿는 순간 처음 차가 나뭇가지에서 나오던 때의 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럴 때면 내 손에 있는 작은 찻잔하나도 우주처럼 넓어 보인다. 차를 따르고 찻잔을 잡았을 때의 따뜻한 온기는 언 마음도 정신도 녹게 한다. 차 한 잔이 내 앞에 오기까지 하늘과, 땅과,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 천지의 아름다운 기운들이 모여 찻잎을 틔운다. 사람의 향기가 더해진 차 한 모금을 입안으로 담는다.
찻잔 안의 세상은 내 마음의 자리이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바로 보고, 바로 느끼는 순간이 된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