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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기존 주제에서 잠깐 벗어나, 현재 ‘뜨거운 감자’가 된 계엄령 관련 칼럼을 적어볼까 합니다.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소식은 교민분들께서 모두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 마지막 계엄령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박정희 –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으므로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역사책에서나 접해봤을, 혹은 ‘서울의 봄’같은 영화에서나 접해봤을 낯선 단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2024년에, 전시 혹은 내란상황도 아니었으며 여느 화요일과 다름 없던 그런 평온한 밤 10시 반에 선포가 되었으니 일반 시민들에게는 너무도 황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나마도 새벽 5시 이전에 해제가 되었으니 일찍 잠을 청하신 분들께서는 (그리고 대다수 뉴질랜드 교민분들께서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황당하셨을 것도 같습니다.
그 비상계엄령이 절차적, 실체적으로 헌법 위반이었다라는 기사도 읽어보셨을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모든 법률 위에 헌법이 성문법으로 존재하고 그게 국가의 기반이 되는데, 삼권분립 원칙에 기반하여 헌법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시에도 국회활동은 방해할 수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포고령 1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적어놨고, 실제로도 곧바로 군대를 움직여 국회위원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국회에서는 비상계엄령 해제를 결의하였고, 다행히 대통령은 유혈사태 없이 결의를 인정하여 비상계염령을 해제했습니다. 그 이후 국회에서는 대통령의 위헌 행위를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진행중이고, 그게 통과되면 추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진행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원칙인 삼권분립에 따르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각각은 절대적인 권한을 쥐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솥발같이 국가를 떠받들고 운영을 해나가는 형태를 취하는 것인데, 이번 사태는 한국의 삼권분립, 나아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확인 절차가 되었다는 의견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뉴질랜드는 어떨까요? 우선 뉴질랜드에는 하나로 정리되어 성문화 된 헌법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국가의 제일 기반이 되는 원칙은 두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영국에서 중세시대 Magna Carta 이후로 대두되고 명예혁명 이후로 확립된 ‘Parliamentary Supremacy’ 입니다. 국가의 내치, 국방, 외교에 관한 모든 실질적 권한은 의회가 가지고, 행정부의 수반 (영국의 왕이나 뉴질랜드 총독)은 명목적인 위치만 차지하며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두번째는 최소한 고등법원 (High Court)이 존재하며 의회가 만든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 민형사 문제들을 심판하며 법의 원칙 (rule of law)를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원칙들은 특별한 법률로 성문화된게 아니라 그냥 관습법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 1840년에 사인된 와이탕이조약 및 뉴질랜드 권리장전법 등이 헌법에 준하는 역할을 한다고 법원에서 해석하고 있지만 의회에서 그걸 적극적으로 동의해서 (혹은 반대해서) 성문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Parliamentary Supremacy 원칙 때문에 뉴질랜드는 삼권분립도 제대로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뉴질랜드 선거는 MMP 제도를 통해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제1정당, 혹은 과반이 없으면 여러당의 연정을 통해 과반수가 된 쪽에서 리더를 Prime Minister 즉 수상으로 추대하고 행정부를 구성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의회 (과반수)와 행정부가 항상 같은편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장점은 정부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쉬운 편이라는 것인데요, 행정부에서 구상하는 정책이 있으면 의회 과반수가 이미 확정되어있기 때문에 법률 통과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5년마다 선출하고 국회의원은 4년마다 선출하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에서의 다수정당이 달라지는 (소위 “여소야대”)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그럴 때에는 국회의 견제가 심해서 행정부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내기 힘들 것입니다.
이걸 반대로 보면 단점이 되는데, 뉴질랜드에서는 다수당의 독재를 견제하기가 비교적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3년씩 치뤄서 국민이 정부를 심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제1정당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한게 아니라면 연정을 해야 하는데 연정 내에서 다른 당의 눈치를 봐야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상은 직접선거를 통해 뽑힌다기 보다는 간접선거를 통해 제1당에서 추대를 한 것이므로, 만약에 수상이 독재의 행태를 보이거나 그 외에 신임이 가지 않을 때에는 선거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제1당에서 ‘no confidence’를 선포하며 당의 리더 (즉 수상)을 교체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위 두번째 법원 원칙도 첫번째 Parliamentary Supremacy 원칙 하위에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 법원에는 헌법재판소라는 것도 따로 없고 일반 법원 (대법원 포함)에서는 의회가 만든 법률에 대한 심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건 법률을 최대한 법의 원칙에 따라, 혹은 헌법에 준한다고 해석되는 법률들에 따라 해석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의회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던 소위 ‘행위시법주의’ (행위 후 법이 바뀌어 없던 처벌 규정이 생기거나 처벌이 무거워지더라도 행위 시의 법률에 따라 처벌받는 원칙)에 반하는 법률을 내놓더라도, 법원에서는 최대한 행위시법주의에 맞게 법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마오리 권리를 소멸시키는 법률을 만들더라도 최대한 와이탕이 조약 원칙 (그리고 마오리 법률인 Tikanga)에 따라 해석하려고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위와 같이 3년마다 잦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그 법률을 심판하고 새 정부가 법을 없애거나 바꾸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한국과 뉴질랜드의 국가 기반의 법률 및 운영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역사, 문화, 지리, 인구, 외교관계 등이 너무 다르다보니 어느쪽이 특별히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고 서로 맞는 방식을 택한 것일겁니다. 다행히 뉴질랜드에서는, 최소한 최근 수십년간은 특별히 헌정위기라고 볼 수 있는 사태는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번 건을 포함하면 최근 20년간 총 3번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가 진행되는 것이고 만약 성공된다면 2명의 현직대통령의 탄핵이 있게 되는건데, 그것도 헌정위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굴곡은 좀 있었지만 옳은 방향의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