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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델 타운은 템즈에서 불과 50km 떨어진 곳인 데도 완전 변방이다.
바다건너 오클랜드가 멀찍이 보여 지척인 데도 가는 길이 돌고 돌아 200km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래된 작은 건물들로 채워진 중심부는 간단하여 길지 않은 일직선 상에 놓여있다.
도예가나 조각가 등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곳이어 선지, 수 공예점들은 눈에 띄게 세월을 곁들여 치장하고 있다.
반바지 차림의 여행객들은 여기저기 모여 수군거리고,
공예점 처마에 달린 흔들리는 윈드차임(서양식 풍경)소리는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를 높여주고 있다.
이런 외진 도시가 골드러시로 들끓었던 곳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1852년 코로만델 반도에서 최초로 금이 발견된 곳이 이곳에서 채 10km도 안 되는 곳이라는 데,
그 시절이면 한국은 조선시대여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이 곳까지 왔을까를 상상해보면 생각은 여러 가지로 복잡해 진다.
때문에 작은 도시에서부터 큰 도시 어디에나 있는 지역 박물관들을 유심히 살펴볼 일인데,
시대를 거슬러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는 것부터 뉴질랜드 여행은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가 끝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부두 초입은 오래된 도로를 감싸 안은 굵은 나무기둥들과,
여기저기 파도가 깎아낸 나무 선착장은 나이테가 여실히 드러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기둥에 옭매인 굵은 밧줄들은 작지만 육중해 보이는 어선 몇을 한가로이 거느리고 있다.
푸른 초원으로 형성된 작은 섬들은 운치를 더하고,
잔잔한 바다에는 요트들이 바람에 잘 부풀려진 눈부신 햇살로 달아나며 물길을 남기고 있다.
육지가 저만치 내민 바닷가 언덕 기슭엔 숲이 가린 지붕들이 점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산 중턱을 따라 드문드문 이어진 주택들은,
억지로 만들어낸 도로 위 낮은 절벽을 제외하고는 도시 뒤 산맥 초입까지 드문드문 이어져 있다.
햇살에 어울린 주택들의 색조는 페인트 공들의 내공을 대변하듯 간혹 붉은 색들과 어울려 은은하다.
저만치 막힌 도로 귀퉁이엔 100년도 넘었음 직한 어눌한 주택이 단아하여 결코 촌스럽지 않은 지혜 풍부한 노인처럼 말끔하다.
어린시절 윤곽이 그대로 살아있는 벽체에 머문 세월은 분 칠로 고와,
맑은 창가는 그를 다듬은 목수의 혼이 아직도 서려 있는 듯한데,
다만 현관이 노인의 틀니처럼 젊어 보여 자세히 보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갖가지 꽃들이 들어선 정원에서 분위기는 상쇄되어,
한 편에서 그림속의 주인공처럼 정원을 손질하는 할머니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싶다.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고,
어린 소녀가 양팔 벌려 몇 바퀴 돌면 꽉 차는 안마당처럼 코로만델은 이제 그만 만원일 시간이어서,
예약 없이 들어온 여행객들은 서둘러 숙소를 찾아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다.
25번 도로는 동해를 향해 넘어가고,
보다 더 곤고함을 경험하고자 나선 느낌은 반도 끝 어딘가를 향해 지도를 펼쳐 가는데,
도시를 채 벗어나지 못한 도로 옆 작은 좌판에 빙긋이 웃고 있는 탠저린(귤의 일종)들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과일을 만난다는 건 일종의 행운일 정도로 당도가 뛰어난데,
계절의 어느 귀퉁이 쯤을 잘 가늠하면 그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가 있다.
수년 전 참돔 등 대어 여럿을 낚아 돌아오던 중,
비린내로 역력한 손에 귤껍질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궁여지책 속에서 그들을 만났었다.
구멍 숭숭 뚫린 자루 안에 웅크린 채 낯선 이를 기다리는 못생긴 자세에서,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다는 것을 대충 엿볼 수 있었는데,
당도가 그만인 그들을 맛보면서 겉치레가 삼엄한자들이 대부분 빈 깡통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코로만델,
반도 중심부에 위치하며,
바람도 숨을 죽이는 대 산림 속에서,
문명과 멀어져 살아가고자 하는 기인들에게 속세의 기운을 전하는 조그마한 도시,
여행자가 발길을 돌린다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편한 일인데 그날,
뉘엿뉘엿 등에 해를 지고서야 도시를 뒤로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후일 내 삶을 감싸줄 몇 안 되는 후보지중의 하나가 인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노을과 함께 천천히 해변을 물들이며 숙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곤 몇 번의 고개를 연이어 넘었다.
때 마다 나타나는 노을 머금은 해변은 한 두 개의 목장들이 고작 소유하는 아담하고 천연덕스러으움 바로 그것이었다.
저녁이면 서둘러 일을 추스르고 그들은 해변을 거닐 것이다.
때로는 노을 빛이 검 어질 때까지 바다를 향해 드리운 낚싯줄을 응시하며,
그래서 포옹은 서로가 신선할 텐데,
기대인 그들에게 쏟아지는 별빛은 오늘도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이루어 내고자 하는 진실인 것을,
기어코 사라져간 오래전 향수는 기억의 저편에 있고,
꿈은 온통 붉음으로 남아 가슴에 가득한데,
이국의 오지를 여행하는 현실은 어스름 대지 위 넉넉한 장소에서 시선이 멈춰 선다.
거기쯤에 조그만 움막집이 하나 있어,
그 곳을 깃점으로 정처없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이면 몸만 피할 수 있어도 좋은
조그만 움막집/
그래도 천장은 높고 창문이 있어 고개 내밀어 밤하늘의 별을 셀 수 있는
조그만 움막집/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쓸 수 있고,
피곤에 지쳐 누운 밤이면 발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아주 조그만 움막집/
물이 없어 며칠 발을 못 씻어도 발을 놓을 곳이 없어 향기를 보존할 수 있는
조그만 움막집/
그런 조그만 움막집에 누워 양팔 뻗고 머리 뻗고 싶다/
별 헤는 밤이면 거북같이 네 귀퉁이 구멍이 뚫려,
머리는 뒷벽 바깥,
팔은 양쪽 바깥,
발은 대문 밖에서 밤이슬을 머금을 수 있는
조그만 움막집/
밤하늘의 별을 따서 천장에 붙여 놓고,
양팔 벌려 기지개 펴면 양손 그득 별이 한 움큼,
새벽이면 별똥별 얼굴에 내려 고양이 세수로도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조그만 움막집/
그 곳에서 있고 싶다/
그리움이 서쪽 하늘 맑은 별 닷 내리고 쉬는 산중턱에 집을 짓고,
한 바가지 이슬 퍼서 가슴을 적시고 싶은 별 헤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