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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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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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1천킬로미터 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선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양쪽 군인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푸틴과 트럼프 사이의 통화 등 미국-러시아 사이 일련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으로 봐서는, 이 전쟁 역시 이제 그 종언을 향해 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속단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러 협상의 내용은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영토 약 20%의 강탈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석탄 매장량의 60% 이상이 위치하는 동부 지역을 힘으로 빼앗았다. 이를 추인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정치인 누구에게나 정치적 자살이므로, 우크라이나가 미-러 사이의 협의 사항을 따르지 않고 당분간 ‘속전’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이 없는 속전 역시 가망이 없는 만큼, 올해 내로 모종의 휴전이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이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 미리 분석해봐도 좋을 것이다.


첫째, 침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입장이다. 러시아의 무장간섭이 시작된 2014년 이전까지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서서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다변적 균형 외교를 펼쳐왔다. 한편으로는 이미 2002년부터 우크라이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장기적 목표로 설정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하는 등 친서방적 자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는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남아 있었고, 친러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직에 포진되어 있었다. 2013년 10월에는 징병제를 폐지했을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대한 위기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친서방 지향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공존이 가능했다. 2014년 이전까지의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친서방 지향을 겸비하는 대만·싱가포르와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2013~2014년의 유로마이단 사태와 그 직후에 등장한 강경 친서방 정부는 이 균형을 엎어버렸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영토를 강탈하고 돈바스에서 친러 민병대들을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 군사공업의 중심지를 사실상 떼갔다. 그 뒤에 또 다른 모습의 균형을 전제로 맺어진 민스크 협정 역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24일부터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을 맞아 그때까지 강탈당한 영토뿐만 아니라 서방으로 떠나 난민이 되어버린 600만명이 넘는 인구까지 잃었다. 사실 전문 인력의 상당 부분을 잃은 것인데, 종전이 되어도 이들은 초토화된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상자들의 수는, 미 정보기관들의 추측에 따르면 50만명 정도다. 사람과 땅, 공업과 자원의 상당 부분을 잃은 우크라이나에 이 모든 일은 망국에 버금가는 역대급 대재앙이다.


러시아의 침공은 푸틴 정권의 국가적 범죄 행각 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점이 하나 있다. 대국은 이런 중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되는 일이 결코 없다. 반대로 인접 대국의 이해관계에 저촉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일방향·불균형 외교 노선을 취한 중소 국가는, 결국 대국 본위의 약육강식 국제질서에서 대재앙을 맞을 수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이제 정글이 되어버린 이 세계의 법칙 아닌 법칙이다.


둘째, 이 전쟁에 사실상 간접적으로 참전해온 서방이다. 3800억달러라는 구미권의 천문학적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완패만큼은 막아주었다. 하지만 불경기 속에서 지속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비 지출은 궁극적으로 구미권에서 트럼프와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더 많은 표를 안겨주었다. 2022년 이후부터 구미권 전체에서 극우들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동시에 전쟁은 서방의 군사적 약점도 드러냈다. 러시아는 1년에 300만개의 포탄을 생산하고 있지만, 구미권의 전체 포탄 생산량은 올해만 보아도 200만개가 채 안 된다. 이 상황에서 구미권 각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전례가 없었던 군비 확장을 지금 실행한다. 세계적으로 작년만 해도 군비는 7.2%나 껑충 뛰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한 위기 상황에서 구미권 국가들은 이제 우향우를 거듭하여 경찰·안보 본위의,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다소 퇴행적인 정책을 곳곳에서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영토 확장의 야욕을 드러내는 트럼프 2기의 미국만큼 퇴행하는 사회도 없을 것이다.


이미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서 여태까지 지원한 무기에 대한 대가로 희토류 광산을 가져가겠다는 극단적 중상주의 정객 트럼프에게는,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패권은 무역 질서 유지 등을 함의하는 것인데, 트럼프의 정책은 오히려 기존의 교역 질서를 파괴한다. 결국 트럼프 치하 미국의 정책에 피해를 보는 중소국들은 하나둘씩 개방 무역을 여전히 고집하는 대국들, 그중에서도 일차적으로 중국을 찾게 될 것이다. 구미권의 극우화와 무장 강화, 신보호주의와 중상주의 주류화, 그리고 중국의 국제 역할 강화와 미국 등 구미권의 국제적 위치 약화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하나의 결과다.


셋째, 러시아의 영토 확장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는 이 전쟁은 러시아의 초강경 권위주의 정권을 더욱더 강화시켰다. 게다가 전쟁 특수가 사실상 경제 부양책의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크게 작용했다. 미국은 이제서야 보호 관세를 도입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서방의 제재가 수입 가격을 올림으로써 사실상 거의 3년간 보호 관세와 같은 효과를 발휘해왔다. 결국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침략국 러시아도 그 영향력이 쇠퇴해가는 미국도, 서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보호주의와 신권위주의를 향해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가면서 퇴행적으로 바뀌어간다.


이 퇴행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국경을 초월하는 시민사회와 진보운동 이외에는 없다. 전쟁이 끝나가는 국면을 이용하여 ‘반전’과 ‘반권위주의’, ‘반민족주의’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는 서방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등은 같이 손잡고 전세계적 퇴행에 국제적인 연대로 맞서야 한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 역시 이 운동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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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노자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주식회사 대한민국』『비굴의 시대』『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전환의 시대』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거꾸로 보는 고대사』『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우승열패의 신화』『러시아 혁명사 강의』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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