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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개인화라는 개념은 영화를 볼 때 각자 취향에 맞는 장르를 선택하거나, 집에서 TV 채널을 돌려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나은 환경이라면 마이마이(Mymy)라 불리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것이 개인화의 최첨단이었죠. 개인용 컴퓨터를 가진 친구들은 손꼽혔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회사에서 랩톱을 지급받으면 꽤나 앞서가는 느낌이 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다릅니다. 단순한 개인화를 넘어선 초개인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발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삶의 방향성과 목표, 지향점,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죠. 특히 학습 방식의 변화는 더욱 극적입니다. 학습은 더 이상 일률적인 목표 아래 진행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선호와 가치관에 따라 완전히 개인화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시대, 협업의 방식도 바뀌다
초개인화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협업 방식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하나의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업무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협업하며 일하는 것이 하나도 생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한 회사는 물리적인 사무실도, 고정적인 회의실도 없습니다. 직원들은 자신의 집 거실, 혹은 Home office라는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합니다. 리더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그 Task를 완료해 반송하면 그날의 일과가 끝나는 식 입니다. 획일적인 공간, 고정적인 업무시간의 개념은 사라졌고, 자기만의 최적화된 환경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시대가 열린 것이죠.
예를 들어 한 광고회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훌륭한 광고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문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카피라이터, 사진작가, 프로젝트 메니저, 감독, 섭외담당자 등등.. 그런데 이분들이 광고에 관여하는 부분은 각각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자신의 업무가 끝나면 사실 그 광고에선 손을 떼게 됩니다. 카피라이터라 한다면 딱 한줄의 광고 카피를 만들고는 손 놓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광고 카피라이터가 하나의 광고 카피를 완성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업무를 연장해 나가기 위해, 그리고 또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기위해 특정 회사에 소속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능한 카피라이터는 전 세계 다양한 광고회사와 협업하며, 자신의 거실에 느긋히 앉아서, 혹은 여행지의 풍광을 감상하며 짬짬이 창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초고속 인터넷과 고성능 장비만 있다면 어디든 나만의 사무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단 카피라이터뿐 아니지요. 사진작가, 섭외담당 등등 거의 모든 참여인원들이 개인적인 공간과 환경속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시간에 업무를 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사회적인 생산의 단위는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일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으며 동시에 개인의 능력이 사회성, 배경, 인맥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화된 삶, 개인화된 학습
이러한 사회상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한 국가의 교육시스템과 학생들의 학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한 전체주의적인 관점에서 특정 목표를 향해 학생들을 일정한 틀 안에서 길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사회가 영위되기 위해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선별하여 각 개인에게 적절한 수준의 역할을 맞기는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학생들은 크게 크게 나뉘어진 구획에 따라 이과와 문과, 공학과 생리학, 화학공학과 기계공학.. 과 같이 자신의 전공과 Specialty를 결정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개별적인 학습 계획을 세웁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대학 전공조차 막연하게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을 미리 경험하며,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막연하게 공대가 아닙니다. 막연하게 의료계통이 아니고 막연하게 법대가 아닙니다. 컬리지 고학년에 올라가게 되면 많은 학생들이 최소한 미래의 직업정도는 계획을 하고 그것을 오늘의 학습에 적용하기 윈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거에는 단순히 ‘건축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건축에도 여러 세부 분야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친환경 주택 설계를 꿈꾸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철거 공학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 둘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선택해야 할 학습 내용은 같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둘 다 공대입학의 필수요건인 수학과 물리를 선택하고 적절한 성적을 받아야 하겠지만, 주택 설계를 희망하는 학생은 색채와 심리학, 인간 친화적 디자인에 집중해야 하고, 철거 공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은 물리학과 구조역학에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같은 물리 수업을 듣더라도 한 학생은 전자기학을, 다른 학생은 구조역학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초개인화된 학습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어른들의 역할,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야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어릴 때부터 자기 진로를 정확히 결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는 올해 Y13인데도 아직 지원할 전공도 모르겠다는데요”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합니다.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학생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어른들의 역할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멘토들은 학생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 ‘올바른 선택’은 진학하고자 하는 전공부터 당장 오늘밤에 숙제를 하는데 참고할 문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단순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는 것은 방임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정보 중에서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인기 있는 것에 휩쓸리거나 단기적인 만족감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에도 유망했던 전공이나 직업이 시대 변화에 따라 급격히 사라지는 사례는 많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전에는 베트남어학과가 유망한 전공이었지만, 전쟁 이후 그 가치가 급격히 감소했던 것처럼요.
하지만 어른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학생들의 성향과 강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건축을 전공한다고 해도 디자인이 더 맞는 학생이 있고, 구조공학이 더 적합한 학생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조언해 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단순한 공교육 시스템을 넘어, 초개인화된 학습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국가 차원의 교육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지만, 개인의 학습은 이제 더욱 세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이 자기 삶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초개인화 시대, 더 이상 획일적인 목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학습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초개인화된 학습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목표 설정과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화가 또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전에는 산업 디자이너, 순수 미술 작가, 애니메이터 등 어떤 종류의 아티스트가 될 것인가가 핵심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 방법으로 작업을 할 것인가, 즉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세상에 알리고,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인가도 동일하게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표현과 소통의 채널이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아트워크를 오프라인 전시회에서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SNS를 활용해 대중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과 협업하기도 합니다. 혹은 다양한 예술 장르와 융합해 순수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했을 때, 이제는 그 결심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의사의 길에 진입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은 진입 경로가 비교적 명확한 특수한 분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진로에서는 다양한 접근 방법이 존재하며, 그 중 나에게 적합한 경로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개인 맞춤형 학습 채널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운영합니다. 저희 아내도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 홍보를 위한 채널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죠.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된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익명의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이죠. 그러나 어릴 때부터 대중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예인을 동경하며 살아온 아이들은 다릅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상이나 작업을 SNS에 올리고,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고 홍보하는 데 여러 채널이 필요한 것처럼, 학습에서도 다양한 채널이 필요합니다. 어떤 학생은 유튜브 선생님과 공부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한 권의 책에 몰입하기도 하며, 또 어떤 학생은 특정 웹사이트의 자료를 신뢰하고 활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학습 채널 중에는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채널을 선별하고, 지속적으로 연결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텍스트, 학습 자료, 과외 선생님 등을 잘 선택해, 자료를 축적하고 반복 학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학습 구조와 패턴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 되겠습니다.
세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초개인주의 사회에서의 학습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앞서 제가 평소에 강조해왔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라’는 주장과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경쟁 구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거기서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비교하지 않음’은 성취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한 비교를 피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해운회사 과장, 전자회사 과장, 교육업체 과장이 있다고 했을 때, ‘누가 더 높은 직급에 있느냐’는 성과의 문제로서 비교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건축 분야로 예를 들어본다면, 내가 철거공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든, 주거 디자인을 중심으로 공부하든, 이는 취향과 철학의 문제이지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즉, 자신이 선택한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회의 업무와 역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분화될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영역 자체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실성, 성취도, 삶의 태도는 비교할 수 있습니다.
“쟤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저 사람은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고, 운동도 하고, 남도 돕네. 나는 뭘 하고 있지…”
이러한 비교는 대개의 경우 자극이 되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내린 삶의 선택이나 가치를 타인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내 가족 구성원을 타인의 가족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된 좋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내린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증명하는 삶을 살아라.’
그렇습니다. 개인화된 사회와 환경속에서는 한 사람의 가치가 그 사람이 속한 단체에 의해 규정될수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가치는 자신의 능력과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과 열정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초개인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학생들은, 학원 수업조차 여럿이 함께 듣는 클래스보다는 개별화된 1:1 수업을 선호합니다. 이는 공동체 속에서 나의 역할을 찾는 구조가 아니라, 나로부터 출발해 전체가 구성된다는 개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보편화된 결과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달라진 사회 환경 속에서 학생으로서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지금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부디 현명한 학부모님의 지도 아래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 사회의 든든한 일원으로 자라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이 글을 마지막으로 지난 9년간 이어온 연재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저 역시 질문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고, 독자 여러분 덕분에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주제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나눈 시간들은 제 삶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함께 생각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정을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