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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여러 겹의 노끈으로 손잡이를 만든 백화수복을 들고 고향에 내려 올려다본 밤하늘엔 별들이 빼곡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건강과 행복을 비는 의미가 담긴 전통청주 백화수복은 맑은 술을 사용해야 하는 차례나 제사 때 시골에선 없어서는 안될 귀한 필수품이었다.
청주(淸酒)는 일본 사케(Sake)를 말하고 정종(正宗)은 한국의 맑은 곡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사케의 원조는 한국이다. 맑은 술이라는 의미의 청주는 한국의 전통 주다. 청주는 막걸리(濁酒, 탁주)와 비교되는 의미의 술로 쌀의 속살로만 빚는다. 그러면서도 발효공정을 거친 양조주 중에서 알코올 도수가 16%로 가장 높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청주를 마셨고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에도 백제의 인번(人番)이라는 사람이 쌀 술(米酒)을 빚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 부산에 최초로 세워진 청주공장의 상표인 마사무네(正宗, 정종)가 한국청주의 대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는 일반대중들 사이에서 워낙 오랫동안 굳어져서 국어사전에도 정종을 청주로 인정하고 있고 사케에 심취한 사람들 중에는 전통청주를 맛이 달고 생선회와 맞지 않는다고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사케(Sake)는 일본어로 술(酒)자를 훈독하여 읽은 것으로 일본에서는 보통 니혼슈(日本酒) 또는 세이슈(淸酒)라고 부르고 위스키나 와인등과 구별해서 일본 술이라는 의미로 서양권에서도 그 자체로 고유명사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미 설명했듯이 일본의 사케는 우리 청주와 무관한 사이가 아니다. 그러나 재료와 제조 공정이 달라 그 맛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술(Sake)과 우리나라 술(淸酒)맛이 다른 이유는 원료인 쌀과 누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일반미와 별도로 술을 만들기 위한 쌀을 따로 재배한다. 전분함량이 많고 입자가 큰 품종의 쌀을 도정해서 상당부분을 깎아내고 순수한 전분질 만을 남겨 술을 빚는다. 좋은 술은 쌀을 얼마나 깎아내느냐에 달려있다.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맛은 깨끗하고 순수해지기 때문이다. 정미 비율이 35%라는 말은 65%를 깎아내고 35%만 남겨서 술을 빚는다는 의미다. 많이 깎아낼 수록 좋은 술이 된다.
우리 술 청주가 본래의 이름도 잃어버리고 잊혀져 가는 사이 현재 일본에는 5천여 가지가 넘는 사케가 있다고 한다. 청주나 사케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요리의 일부로서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하며 음식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술이다. 청주나 사케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히 생산지의 쌀과 물이다. 좋은 물이 있는 곳에 좋은 술이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물은 아주 중요한 원재료로 간주된다. 쓰이는 물의 종류에 따라 술의 맛도 천차만별로 바뀐다. 연수를 사용하면 달콤하며 여성적인 맛이 나고 경수를 사용하면 감칠맛이 도드라진다. 탄산수를 사용하면 상쾌한 느낌의 사케를 만들 수 있다.
청주와 사케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하는 몇 안 되는 술 중에 하나다. 물론 얼음과 함께 차게 마시거나 체온보다 조금 더 따듯할 정도로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고급 청주를 마실 때는 오히려 약간 차갑거나 상온에서 마시는 게 진정한 향과 맛을 음미하기에 좋다. 청주는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酒煎子)에 담아 따라 마시지만 사케는 독구리라는 앙증맞게 작은 술병에 담아 따른다. 현재는 물을 끓이는 용도로 쓰이게 된 주전자가 사실은 글자의 뜻 그대로 술을 데우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청주나 사케는 데우는 동안 고유한 향과 맛이 사라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밀폐 형의 도자기에 담아 중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데워 마시면 독성 성분인 푸젤오일(Fusel Oil)의 함유량이 줄어들어 숙취가 덜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전통청주는 약주(藥酒)로 불리고 일본의 하쿠쓰루(白鶴)나 겟케이칸(月桂冠)이 청주를 대표해 온 역사 뒤엔 아직도 뿌리 깊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자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자리하고 있다. ‘민족’이란 의미가 모호해지고 국가간의 경계도 허물어져 섞이고 섞인 게 민족이고 국가인 현재에 와서 나누고 다투고 증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세계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해져 가는 지금 우리 것만을 따지고 고집하는 옹졸한 태도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없이는 전통을 지키고 계승 발전시킬 수 없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며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다가 청아한 별을 띄운 하늘을 보니 따뜻하게 데운 청주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살아오는 동안 참으로 많은 꿈을 꾸었네. 꿈 길에서도 언제나 길을 찾았네. (중략)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다시 길을 찾는 나는 누구일까? 별을 바로 곁에 두고도 다시 별을 찾는 나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