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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옥
밴트가 목에 깁스를 하고 베리와 이야기 중이었다. 우리 집과 베리 집과 밴트 집의 뒷마당 경계점은 앵무새 키아 Kea 한 쌍이 사는 포후투카와 나무와 푸리리 나무 한 그루가 있을 뿐 담장도 없이 확 트여 있는 잔디밭이었다. 우리는 종종 포후투카와 나무 아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인생사를 나누며 삶의 자극거리가 되는 이야기에 빠지곤 했다. 고루한 화두에도 귀를 모으고 참견도 했다. 주로 올블랙스 럭비팀의 리그전 후담이라든가 해외 여행 중 경험한 유별난 이야기, 동네에 새로 생긴 펍의 맥주 맛 따위로 시간을 때웠지만, 복권 같은 행운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양념을 쳐 가며 쩝쩝거리기도 했다.
밴트가 목에 깁스를 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시간 남짓 노닥거릴 수 있는 화젯거리였다. 밴트의 여자 친구 마샤는 통나무 앉은뱅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베리의 쇤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도 살가운 마샤는 시집을 안 간 처녀 같았다. 금발머리가 자르르하고 살빛은 백옥 같았으며 허벅지까지 쌍둥 자른 청바지 밖으로 곱게 뻗은 다리는 과연 신이 빚은 예술품이었다. 베리가 나를 보더니 미간을 치키며 자네도 와서 들어 봐, 하는 표정으로 멈췄던 말을 이었다.
“밴트, 자네는 일의 경중을 어겨서 그래. 육체를 기계로 생각해서 그런다고. 육체의 마디마디는 버티는 시간과 내구력이 다 달라. 골절과 내장이 견뎌내는 힘을 잘 조절해서 써야 돼.”
베리가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밴트가 목 디스크에 걸린 까닭에 대해서 자신의 인생 경험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밴트는 예전에 나에게 일렉트리시안이라는 직업에 만족하지만 고개를 젖히고 천장의 전선 공사를 할 때가 가장 힘들다는 말을 종종 했다.
“목 디스크는 물렁해서 아차 하면 재발을 해. 그러니 목을 꺾어 젖히고 천장 작업을 할 땐 쉬엄쉬엄 하라고. 육체에 리듬을 주란 말이야.”
베리는 애정이 듬뿍 담긴 말투로 연민의 눈빛을 보이며 마치 자기 아들을 타이르듯 밴트의 등 언저리를 토닥토닥했다. 그러면서 그런 남자를 이해하는 내조가 너의 임무라는 듯 마샤에게 교훈적인 턱짓을 했다. 마샤는 물론입죠, 하는 자세를 취하며 다리를 옮겨 꼬았다. 그녀의 맑고 하얀 다리가 더 미끈해 보였다. 마샤는 깍지 낀 두 손을 무릎에 걸치고 밴트를 올려다보며 눈을 찌긋했다.
마샤는 화가였다.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데 곧 전시회를 가질 거라 했다. 요즘엔 늦깎이 학생으로 심리치료학을 공부한단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심리를 치료 중이다. 마샤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우크라이나가 유럽과 러시아에 낀 채 정치적 혼란의 분수령에 있을 때 망명을 하듯 고국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마샤의 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면 서른이라 하지 않고 스물 넷 더하기 여섯이라 했다. 스물 넷의 인생과 여섯의 인생을 따로 세었다. 나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마샤는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할 무렵에 태어났다. 어렸을 적엔 굶주림에 시달렸고 아버지는 보드카에 절어 지냈다. 가정은 고아원처럼 냉랭했다. 그녀는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꽤 진보적 성향에 있었다. 당시 정부가 EU 가입을 거부하고 친 러시아 노선을 표방하자 서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감정은 하늘을 찔렀다. 키예프에서는 시민투쟁이 발발하였고 급기야 대규모 시민들이 반정부 항쟁을 벌였다. 그 전면에 마샤도 끼어 있었다. 무력충돌까지 이어지면서 그 와중에 마샤는 진압 경찰에 의해 팔이 부러지고 심한 내상을 입었다. 마침내 사태는 유야무야 수습되었지만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휘하에 들어갔다. 마샤는 꽤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생활의 질서가 무너지고 한동안 진압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민족이 스탈린에 의해 수백만 명이 숙청 당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샤는 민족주의자도 아니었고 역사적 분풀이에 동참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깨어날 때라는 것을 앞장서서 부르짖었다. 고국을 떠나면서 마샤는 스물 넷의 인생을 꼭꼭 접어 땅에 묻기로 했다. 그녀는 드넓은 상록의 초원을 볼 때마다 지평선에 이르도록 아름답고 장대한 우크라이나의 밀밭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녀가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까닭은 어쩌면 향수의 아픔 때문인지도 몰랐다.
밴트는 마샤를 바라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여자라 했다. 마샤는 진짜 남자를 만났다. 돈과 명예로 사랑을 낚아채려는 사내가 아니었다. 여자를 떠받드는 국가의 관습에 밴트는 예외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마샤 앞에서는 시종처럼 굴었다. 밴트는 사랑에 굶주린 강아지마냥 마샤를 여신처럼 모셨고 마샤가 자신을 잡아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
우리는 발갛게 익어가는 푸리리 나무 열매를 감상하며 뒤뜰을 거닐었다. 울타리를 감싸 우거진 풀숲에는 타카헤takahe 한 마리가 머리를 끄덕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먼동이 틀 무렵 구슬피 짝을 부르는 소리로 나의 잠을 깨우는 뜸부기였다. 밴트는 말수보다 웃음이 더 많았다.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배출하려는 잠재적 습관이었다. 그의 웃음 뒤엔 눌어 붙은 슬픔의 잔해들이 어른거렸다.
“나는 네이피어에 살았어요. 아버지는 나룻배나 요트를 수리하는 일을 했어요. 어머니는 근처 양 목장에서 젖을 짜거나 양모를 고르는 허드렛일을 했지요. 알코올 중독으로 아버지를 힘들게 했어요. 날씨가 흉흉한 날이었지요. 비바람이 휘돌고 파도가 거세었는데 바다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새로 수리한 요트를 시험 항해하러 나갔던 게지요. 다른 한 사람은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백사장에 떠밀려 온 아버지는 영영 눈을 뜨지 못했어요.”
밴트는 씨익 한 번 웃더니 푸리리 나무 열매 하나를 따서 허공으로 던졌다.
“미안하네.”
나는 정말 미안하고 참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밴트의 다음 이야기에서는 내내 입을 닫아야 했다. 밴트는 기억을 건너뛰려는 듯 공연히 허리를 굽혀 퉁퉁한 맨종아리를 들어 찰싹 한 번 갈겼다. 그가 편 손바닥에는 모기 같은 날것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밴트는 손을 털며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이웃 할아버지한테 전해 들었는데 호주에서 온 뜨내기의 꾐수에 빠져 호주로 떠나 버렸다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난리가 났지요. 포스터 홈을 전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눈치에 얼어붙어야 했고, 음식과 사랑을 얻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잡일을 도맡아 했지요. 몇 번이나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타우랑가의 아보카도 농장 주인을 만나 안정을 찾았지요. 그분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전기 공부를 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나의 아들이, 나의 딸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헤맸다면 어떠했을까? 갈기갈기 억장만 무너지겠는가? 삶은 산술적으로 따져야 하는 건가? 도덕의 의무와 양심의 책임은 어떤 잣대로 기준을 재야 하는가?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버린다면, 그것도 자신의 핏줄을 코 풀듯이 버린다면, 그 저변엔 무한한 인간의 이기심이 퇴적되어 있다는 사실 말고 무엇으로 인간 본성을 형용하겠는가? 욕망에 매몰된 인간의 이기심은 그토록 무섭고 잔인한 것이었다.
“밴트, 나는 그런 슬픔을 경험 적이 없었다네.”
나는 그를 위로하기보다 잠시 세상을 경멸했다.
“짐승도 새끼를 뗄 때는 마지막 한 방울 젖까지 다 물린다 하잖아요.”
알량한 긍휼의 음식과 적선과도 같은 사회보장제도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던 밴트는 자신의 핏덩이를 팽개친 어머니를 더없이 원망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 듯했다.
*
베리가 바구니에서 흑백 결혼사진을 꺼내 밴트에게 보여주었다.
“밴트, 여자는 웨딩드레스로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는 거야. 알아들어?”
밴트는 씁쓸한 웃음으로 속내를 감추었다. 어쩌면 그는 다이아몬드 반지라든가, 신혼여행 비용이라든가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이 여의치 않은 상황, 혹은 사랑의 영속을 위한 훈련 등을 머릿속에 그리는지도 몰랐다. 키아 한 쌍이 저만큼에서 파닥거리며 애정을 뽐내는 듯 푸리리 나무에 날아올라 붉은 열매를 쪼고 있었다.
“그런데 밴트, 자네 아이들은 언제 여행에서 돌아오나?”
“네? 무슨 말씀이에요? 아이들이라뇨, 여행이라뇨? 우린 아이가 없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라네.”
“네?”
“사랑하는 사이에는 아이가 있어야 해. 그만한 사랑의 증거가 어디 있겠나? 아이가 없으면 어떤 사랑의 행복도 허전한 거라고.”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어요.”
“음? 나는 자네들을 고매한 성직자로 보지는 않았는데?”
“우리는 무구한 새 생명을 험난한 세상에 내보내지 말자 했어요. 아이에게 세상의 고통으로 부모의 행복에 기여하라 할 염치가 우리에겐 없어요. 아이가 무슨 죄예요? 태어나면서부터 울어야 하잖아요. 어차피 종족 번식은 우량종들의 몫 아녜요?”
나는 밴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베리는 밴트가 고아로 살아온 지난날을 모르는 눈치였다. 밴트가 베리에게 물었다.
“집 팔렸어요? 세일 간판이 없던데요?”
나도 궁금했었다.
“팔리긴 팔렸지. 그런데 빼앗겼어.”
“빼앗기다니, 그건 무슨 말이에요?”
“큰아들이 비렁뱅이가 되어 시드니에서 돌아왔어. 며느리한테 탈탈 털리고 쫓겨났대. 녀석이 할부로 집을 살 테니 막무가내로 내놓으라는 거야.”
베리는 자식을 향한 지긋지긋한 사랑의 의무에 막바지까지 시달리고 있었다. 졸린듯한 그의 눈꺼풀이 더 움쭉 들어가고 눈빛은 아련한 상념에 젖는 듯했다. 아마도 먼저 간 아내 헤즐러를 그리지 않나 싶었다. 오른쪽 이웃 마틴 집에서 여자의 울부짖는 괴성이 들려왔기에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나는 고양이 소리로 오인할 뻔했다.
“맙소사! 이 대낮에.”
마샤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다. 우리는 멀거니 선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