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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칼대신 붓을 들었다. 반성이 된다 ㅎㅎ 글쓰기를 넘 게을리했다 싶어진다.
ANABADA 회원 중 한분이 오늘 드린 아침인사에 언급한 boiling frog 현상이 뭐냐고 물으신다. Boiling Frog Syndrome 의 유래는 이렇다.
실제로 미국 코넬대학교의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로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비이커에 넣었다.
비이커 밑에는 분젠등을 놓고 1초에 화씨 0.017도씩 물이 데워지도록 불꽃을 아주 작게 해 놓았고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뛰어 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개구리는 천하태평만만세 모드로 한마디로 뜨듯한 스파를 즐기듯이 비이커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온도는 0.017씩 올라가는데 개구리는 여전히 비이커 속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개구리는 당연지사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서 죽어 있었다. 언제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푹 삶아진 것이다.
위의 실험에서 처럼 어쩌면 우리도 지금 이 Boiling Frog 증후군을 앓고 있진 않을까?
어느 순간 개구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갑자기 몸의 동작을 빠르게 하면서 비커를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죽고만것처럼.
변화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규모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변화는 거의 모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매우 서서히 다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커 안의 개구리처럼 변화가 일 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화는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 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실체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사람은, 삶아진 개구리처럼 안타까운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원리는 개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곳곳에 만연하는 늘 해오던 대로 하는 사회적 관습에도 적용이 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시도하는 것에도 이해와 준비와 점검의 시간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고 추진하는 계획성이 필요하다.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문화속에서 도퇴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배추 절이다 상념에 빠진 코끼리 J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