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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를 낳고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가출했었던 그 날이 엊그제 같다. 30의 나이에 결혼하여 시집살이를 하다가 2년도 채 안 돼서 달랑 기저귀 가방 하나 들러 메고 젖먹이 딸을 안고 집을 나와 버렸다.
시부모님의 통장으로 남편의 급여가 완전히 다 들어 가버리는 생활을 했었으니,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다. 남편이라고 특별히 자신의 주머니를 찰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함께 새살림을 차렸지만, 두 사람의 신접살림이 얼마나 고난스러웠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진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어렵사리 아파트 한 채라도 장만했었을 땐, 내 마음은 이미 태평양 건너 뉴질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무조건 세 딸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날아왔다.
남편과 10년 정도 떨어져서 살 요량으로 왔는데, 2년 만에 시부모님의 동의하에 남편이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러기 아빠로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남편 역시 달랑 20Kg가방 하나만 들고 뉴질랜드 땅을 밟았다. 우리 나이 46세 때의 일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융자 낀 집 한 채 뿐이었고, 혹독한 IMF를 겪고 난 후라서 퇴직금마저도 없는데다 2년 동안 뉴질랜드 영주권 없이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집 살림을 해야 했기에, 전 재산인 집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빚으로 시작한 우리 부부는 아직도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30여년의 기간 동안 낸 이자를 생각하면 아깝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그 이자를 물어가면서도 세 아이들을 다 키워내지 않았는가? 고맙기 그지없다. 이자마저도 고맙기만 하다.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마다 눈물이 아닌 희망을 부여잡았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남이야 어떻게 보든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이 셋씩이나 있는데, 무너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견뎌낸 거 같다. 무조건 견디면서 살았을 뿐이다.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하고 자존심이 센 내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을 낳은 엄마였기에 가능했었던 일이다.
벼랑 끝에 설 때마다 내 심장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심부전증이 온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월이 좋아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솔로몬의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란 명언이 없었다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다 버텨낼 수 있었을까? 한 현인의 말씀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있음을 나는 내 삶을 통해 증언할 수 있다.
벼랑 끝에서 내게 가장 큰 힘을 주었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 명언 중의 명언이 바로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였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고 내일 역시 그러하리라.
어제 큰 애가 나에게 임창정의 ‘소확행’이란 노래를 소개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된 뮤직 비디오였는데,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해버렸다.
노랫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마음에 드는지....... 화면 속의 애니메이션 역시 음악과 더불어 상큼한 행복에 휩싸이게 했다. 큰애는 이 노래가 크게 히트를 쳤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나 역시 같은 마음이 되었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기에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더 행복했겠지만,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노래가 전하는 행복에 흠뻑 빠질 거 같다.
자칫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는 복잡하고 답답한 도시생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줄 수 있는 매우 영성적인 노래이다.
나폴레옹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했는데, 현대사회에 있어서 음악과 그림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들의 힘이 펜과 더불어 얼마나 강한지 몸소 느낄 수 있다.
살아오는 내내 나에게 힘을 준 것은 예술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예술이 나에게 준 행복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고달팠던 서울과 지난한 뉴질랜드 삶 속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예술을 즐기고 나누는 작은 행복이 없었다면 그 힘들고 긴 세월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지금 나는 임창정의 ‘소확행’을 들으면서, 산전수전 공중전의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행복에 젖어 있다.
지향아 그동안 애 많이 썼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토닥토닥.......
<소확행>
내가 꿈 찾아 행복 찾아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만나버린 괴로웠던 순간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퇴근길에 편의점 네 개에 만원인 캔 맥주.
원플원 과자 두 봉 기다릴 울 냥이 통조림 간식 하나.
세상 편한 차림으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최신 업댓 영상 본다. 눈 호강에 입 속 가득 찬 단짝의 조화.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즐길 수 있을 거야, 너는.
좁은 방에 매트 깔고 생전 처음 해 본 요가.
체중계에 올라서서 어제와 같은 몸무게에 안도하며
배달 앱에 단골 식당 요리조리 찾아보고 또 조리요리 찾아보고.
이런 맛에 살지. 내일도 일하러 간다.
내가 꿈 찾아 행복 찾아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만나버린 괴로웠던 순간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즐길 수 있을 거야, 너는.
인생이 별건가요? 똑 같아요. 열 받고 힘들면 한잔하고 꿀잠 자고 그러다 웃고.
내가 꿈 찾아 행복 찾아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만나버린 괴로웠던 순간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즐길 수 있을 거야,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