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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 영민
노을이 붉다.
무엇에 대한 간곡한 답례인가.
둑방에 메인 염소 울음소리가 하늘 끝까지 들렸다.
배롱나무 가지엔 꽃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백일동안 붉게 핀다는 이꽃은 언제 처음 이 가지 끝에 달렸을까.
문간에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고
가늘게 눈을 찌부리며 꽃의 처음을 생각했다.
저 꽃은 자신의 진분홍이 내내 설랬을까.
아마도 잠들지 못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끝물의 꽃은 처연하면서 아름답다.
하지만 그 기억도 이젠 곧 희미해질 테지.
파밭 사이로 그때나 지금이나
지루한 몇채의 함석집이 놓여 있고
미루나무가 서 있고 둑방 너머의 갯벌 한쪽 염전에는
삐그덕, 수차를 돌리는 검은 씰루엣이 보일 뿐이다.
더 어두워지면 그도 저 둥근
쳇바퀴를 내려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에게도 오늘 이 하루
등뒤에 고스란히 남는 것은 흰 소금꽃 뿐
또 백일을 고스란히 살아버린 꽃이
저녁 바람 속에 한 숭어리로 진다.
그리고 풍경의 어떤 것도
그 떨어진 꽃을 다시 줍지는 않는다.
울음소리로 보아 멀리 논에서 놀던 오리들이
이젠 제집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