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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부터 <중용>은 초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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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절인들 유교 경전에 탁월한 선비가 없었겠는가마는 특히 융성한 때가 따로 있었다. 조선 전기를 통틀어 전성기를 손꼽으라면 단연 세종의 치세가 최고였다. 내 좁은 소견이 아니라, 성종 때 조정 대신들의 공론이 그러했다.


1476년(성종 7) 10월 8일, 경연에서 여러 신하들이 당대의 학풍을 평가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중용』과 『대학』같은 성리학 서적은 오랫동안 깊이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감히 거론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코 쉬운 책이 아니란 말이었다.


동부승지 홍귀달의 진술에 따르면, 세종 때에는 인재를 선발할 때 경전에 대한 지식을 기준으로 삼았다. 누구나 조정에 진출하려면 경학에 힘써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 결과 이극배李克培와 같은 훌륭한 전문가가 배출되었다.


그런데 문종 때부터는 문장력(製述) 위주로 인재를 선발해 『대학』이나 『중용』에 능통한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조선왕조실록』 9책, 384쪽).


성종도 뛰어난 학자를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478년(성종 9) 홍문관의 제도를 완비하여 최고의 학술 및 언론기관으로 키웠다. 이에 점필재  畢齋 김종직金宗直 등 성리학에 정통한 신진사류가 홍문관을 중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올랐다. 김종직의 후예들은 이른바 사림파로서 당시 기득권층(훈구세력)과 대립하며 조선 사회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경학이 발달함에 따라 세종 때는 『중용』의 정신으로 국정 현안을 처리하자는 견해가 등장했다. 정확히 말해, 1440년(세종 22) 1월 14일의 일이었다.


예조에서는 재혼의 도덕성을 판단하기 위해 여러 경전을 참고했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다름 아닌『중용혹문집석 中庸或問輯釋』에서 발견했다. 이 책의 주석에서 남전여씨藍田呂氏는 주장하기를, 무릇 남편 된 이는 아내와 사별했을 경우 반드시 3년이 지난 다음에 재혼하는 것이 법도라고 못 박았다.


당시에는 아내를 잃고 겨우 100일도 지나지 않아 재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앞으로는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하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예조의 견해였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가령 부모의 명령으로 부득이 재혼하게 된 경우라든가,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슬하에 자녀가 없을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했다. 그 경우에는 배우자를 잃은 지 1년 뒤에도 재혼할 수도 있게 하자고 했다. 세종은 예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조선왕조실록』4책, 262쪽).


출처: 백승종,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사우, 2019); 세종 우수 교양도서 선정



사족: 세종의 유능한 아들 세조(수양대군)를 아실 것입니다. 그를 정치판에서 키운 이가 다름 아닌 부왕 세종이었어요. 세종은 재위 기간에 수양대군에게 조세(공법)와 한글 등 실로 막중한 국정과제를 맡겼고, 이를 통해서 수양대군은 국정 전반을 장악할 능력을 얻습니다. 


수양대군은 부왕의 개혁 정치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이해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집현전이었어요. 나중에 왕이 된 세조는 집현전과의 싸움을 벌입니다. 사육신 사건을 빌미로 아예 집현전을 완전히 없애버렸지요.


바로 그 세조가 <중용>을 좋아했고, 깊이 이해하였다고 합니다. 학문을 좋아하는 부왕 덕분에 세조의 교양 수준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유교는 물론 불교 경전에도 해박하였다지요. 우리가 세조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너무 편협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육신이 틀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념에 충실한 보기 드문 인재들이었어요. 그러나 세조가 반드시 잘못된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념적 편향성은 나라를 망칠 수도 있지요. 세종 말년부터 집현전이 보인 행태는 좋게 만 보기는 어려웠어요. 이미 기득권의 핵심이 된 그들은 세종의 크고 작은 개혁을 무력화하였고, 왕을 비웃었습니다. 대개는 잘 모르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의 제도와 이념은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며, 보탬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공수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초대 공수처장 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분들의 면면을 바라보면, ‘이러려고 공수처를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 하나를 자리에 집어 넣고 빼는 것으로, 어느 기관 하나를 부수고 일으키고 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맹신은 금물입니다. 역사에서 배운, 부족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백 승 종 교수 /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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